손바닥 묵상

손바닥 묵상 3 - 사도행전 21장에서 28장 묵상

차작가 2024. 12. 11. 09:39

대제사장 아나니아와 장로들과 변호사 더둘로가 바울을 고발하자 바울이 총독에게 자신을 변호하는 장면이

참 멋지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변호라기 보다 간증이라고 말하는 게 더 맞는 표현이긴 하다.

그들의 고발은 입증할 수 없다고 말하며 자신은 회당이나 시중에서 무리를 소동하는 일을 하지 않았으며

그들이 고발하는 모든 일에 내 세울 것이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도 율법을 믿으며 그들이 기다리는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자신도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 앞에나 사람 앞에 양심에 거리낌도 없다고 말한다.

그들이 고발할 것이 있으면 마땅히 총독 앞에 와서 하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이 한마디로 멋졌다.

그러자 백부장을 명해 바울을 지키며 돌봐 주라고 명령을 한다.

바울이 이럴 수 있었던 건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나니아를 통해 하나님은 바울에게 소명을 주셨기 때문이다.

22장 14절에서 15절 말씀과 같이 22:14 그가 또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그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22:15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네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바울은 가이사에게 상소함으로 바울은 황제의 판결을 받도록 자신을 지켜 주실 것을 요청했다.

이처럼 아그립바 왕에게 변명할 때도 바울은 체험으로 만난 예수님이 있었기 때문에 물러서지 않았던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왜 다메섹에서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자신을 둘러 비췄는지 몸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26: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26: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26:19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

26:20 먼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

하나님이 자신을 택하신 것은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라고 고백한다.

자신의 눈을 뜨게 하시고 어둠에서 빛을 보게 하심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셨듯

모든 사람들도 자신처럼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백성들로 살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삶이 회개의 합당한 일이다.

회개의 합당한 일이 이렇게 명쾌할 수가 없다.

이렇게 간단하게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었던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회개의 열매는 전도다!라는 말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회개의 합당한 일이 전도라고 마지막으로 한 마리도 정리하는 바울을 보며 아.. 맞다...라는 생각을 했다.

회개의 열매라고 말하면 그동안 성화 찬양 경건한 삶 예배의 삶 이와 같이 전체적인 개념으로 생각했었는데

물론 틀린 건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걸 빼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원은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영적인 자기고백의 체험이 없다면 구원의 확신을 가지기 어렵다.

그러므로 바울의 담대함은 예수님을 체험함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이 한마디 회개의 합당한 일을 하기 위해 목숨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구원의 확신도 있고 바울과 같은 체험도 있다.

그러나 회개의 합당한 열매 안에 전도는 빠져있다는 생각에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이렇게 블로그를 통해 글로 전하는 열매에 갇혀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말씀 묵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