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2절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3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절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니이까
5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1. 니고데모는 누구인가?
1) 정통 바리새인이며 유대 지도자이다. 그리고 산헤드린 공회 의원 (유대인들의 최고 자치 의결기관으로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바리새파 사람들로 유대 지도자 등약 100명으로 구성. 국회의원, 상원 의원)이다.
2) 큰 부자였다.
2. 니고데모가 밤중에 온 이유는
1) 당시 정통 유대인들은 정규 랍비 학교 과정도 마치지 못한 예수님이 감히 성경과 신학을 지도하는 것에 대해 조롱과 의혹을 보냈다. 어떤 유대인들은 주님을 향해서 귀신 들린 사단의 수하에 불과하다고 폄하했다.
2) 니고데모는 이런 동료 의원들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늦은 밤을 주님과 만나는 시간으로 선택했다. 1세기 당시 산헤드린 공의회와 예수 그리스도는 상호 대적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남에게 드러나는 것은 공회 회원 직위해제에 해당됐다. 아직 신앙이 제대로 갖고 있지 않던 니고데모는 하나님보다는 사람의 눈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3)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통해서 나타난 이적을 직접 목격했을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이 땅에 오신 탁월한 선지자요, 선생으로 확신했다. 그래서 평소에 예수님이 그렇게 강조하시던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알고자 했다.
4)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것을 니고데모 자신도 그렇게 확신하고 가르쳤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방법(구원을 얻는 방법)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에 순종하고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이었는데 하나님 나라에 대한 그리고 영생, 구원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의 생각과 전혀 달라서 학자로서 지적 탐구에 대한 열정이 크게 발동됐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이 땅에 오신 탁월한 선지자요, 선생이라면 자신의 궁금점과 영적인 갈급(이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 백성으로서 사는 삶인가? 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가리켜 회칠한 무덤 같다고 하시고 외식하는 사람들이라고 하시는가? 진정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해야 들어갈 수 있을까?)을 분명히 해결해 주실 것을 기대하면서 예수님께 왔던 것이다.
3. 예수님의 말씀-거듭나지 않고서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구원을 받을 수 없다. (3절)
1) 예수님은 야밤에 자신을 찾아온 니고데모의 마음을 훤히 꿰뚫어보셨다. 아마도 이런 니고데모의 자세에 기뻤을 것이다. 다른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데 그래도 이 한 사람은 진리를 알고 싶어서 이런 밤중에도 오는 것이구나 하고 기뻐하셨을 것이다.
2)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거듭나다. Born again. 원문에는 '하늘로부터 나다'라는 뜻이다.
이 말씀은 곧 ‘
"니고데모야. 네가 가지고 있는 조건과 상황과 지식과 지혜가 아무리 뛰어나고 화려해도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경험할 수 없다. 구원 얻을 수 없다"라는 말씀이다. 니고데모가 지금까지 율법을 지킨다고 하는 그 모든 것과 네가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구원에 이르는 길은 우리가 조금 더 공부하고 노력하면 되는 것도 아니고 우리의 결심으로 가능한 것도 아니다. 구원의 주체이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거듭남을 받아야만 우리는 비로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네가 다시 창조되지 않으면 절대 가망이 없다는 말씀을 하고 계신 것이다.
4절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5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절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8절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4. '거듭남'에 대한 니고데모의 반응(4절)
1) 니고데모는 육신의 거듭남으로 이해했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라고 묻는다.
5. 거듭남에 대한 예수님의 설명 (5절)
1)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으로 다시 설명하신다.
2) 거듭나는 것은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이다.
이 표현은 구약 (에스겔서 36:22-26절)을 배경으로 한 말씀이다.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더럽혀진 이름 곧 너희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눈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여러 나라 사람이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돼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이스라엘이 타락하고 범죄 하여 소망이 없게 되자 하나님은 그들을 가나안에서 쫓아내신다. 이 구절은 그들이 얼마나 소망이 없는 자들인 것을 보여 주신다. 이처럼 소망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직접 물로 씻어서 그들의 더러움을 제하시고 하나님의 영을 그들의 마음에 새겨서 다시 창조하시지 않으면 절대 소망이 없음을 에스겔을 통해 계시하고 있는 부분이다.
성경에서 물은 정결케 하는 도구로 쓰인다. 노아 홍수 사건. 물로 정결하게 하셨다. 정결하게 한다는 것은 단순히 더러워진 것을 씻거나 고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죄를 죽여 버리는 것을 말한다.
성령은 구약에서 ‘르와흐’라는 말로 ‘바람’, ‘호흡’, 생기라는 말로 쓰인다.
에스겔 37장에서 마른 뼈에 생기를 불어 넣으니 뼈들이 살이 붙고 힘줄이 붙어 군대가 되는 것을 그리고 있는데, 말라빠진 뼈들이 가득 찬 골짜기에 성령의 바람이 부니 그 마른 뼈들이 살아나서 군대가 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죄에 대해서 죽고 성령에 의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말한다. 지금 예수님은 구원받기 전의 우리의 모습이 어떤 자 들인지를 알려 주시는 것이다.
그렇게 마른 뼈들과 같았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구원을 위해 무슨 노력을 할 수 있었을까? 이렇게 마른 뼈와 같았던 우리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시기 위해 성자 하나님께서 하셔야만 했던 일은 예수님 자신이 저주의 뱀이 되셔서 장대에 달리시는 것이었다.
놋 뱀이 장대에 매달린 것처럼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대신 매달리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살길이다. 내가 죽어야 하는데 예수님이 내 죄를 감당하시고 죽으신 것을 믿는 자만이 영생 곧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린 이미 죽어서 마른 뼈처럼 먼지가 풀풀 나는 사람들이다. 이처럼 마른 뼈들이 예수를 스스로 찾을 수 있을까? 성령께서 그분의 주권으로 우리를 향해 오시지 않으면 우리는 믿을 수 없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 보다 무엇이 더 나은 점들이 있다고 택함을 받을 수 있을까? 그것이 은혜라는 것이다.
8절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9절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10절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11절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마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12절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13절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14절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6. 바람과 성령의 비유 (8절)
1) " 바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 성령의 사역을 이해할 수 없고 신비하고 컨트롤할 수 없지만 거듭나는 것은 성령으로 되는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우리의 노력과 애씀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율법을 정확히 지킴으로 자신을 구원하고자 하는 사람에겐 경종의 메시지이다.
7. 우리 크리스천들이 누구인가? 바로 예수와 함께 죽어야 되고 죽었던 사람들이다. (마른 뼈에 불과 한 사람들) 그리고 죽었던 사람들이 성령에 의해 새롭게 탄생된 사람들이다.
8. 니고데모는 결국에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되었다. 증거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1)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사렛 예수가 구약 시대 유수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해 예언된 그리스도(메시아)라고 가르치며, 선언했다. 산헤드린 공의회 의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변호하고 다니는 니고데모를 나무라며 크게 핀잔했다(요 7:50-52).
2) 니고데모와 산헤드린 공의회 의원 아리마대 요셉이 함께 들어가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돌무덤에 매장했다(요 19:39).
3) 니고데모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깊은 사랑과 존경심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손수 매장했다는 사실이 산헤드린 공의회 당국자들의 귀에 들어가면 생업을 잃고, 이스라엘 통치부에서 쫓겨날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생명과 직업을 예수 그리스도와 바꿔도 전혀 손해가 없다고 생각했다.
4) 39절에 보면 몰약을 가져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몰약은 사람이 죽으면 시체의 악취를 없애기 위해 사용되었으며 아주 비싸서 일반인들이 잘 구입할 수 없었다. 그런데 니고데모가 이 몰약을 백 근을 가져왔다. 당시에 몰약 백근을 장례에 쓸 수 있었던 사람은 그 나라의 왕 한 사람뿐이었다. 이것은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40절에 보면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고 되어 있는데, 이 말은 예수님이 너무 소중해서 예수님과 함께 그 자신이 죽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과 함께 죽은 것이다. 그것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었다.
줄거리 요약:
니고데모는 정통 바리새인이며 유대 지도자이다. 그리고 산헤드린 공회 의원이기도 하다.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귀신들린 사단의 수하에 불과하다며 펌하하며 조롱했기에 한낮에 예수님을 찾아갈 순 없었다.
그래서 밤늦게 예수님을 찾아갔다.
왜냐면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통해서 나타난 이적을 직접 목격을 했고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이 땅에 오신 탁월한 선지자요 선생으로 확신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만나서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알길 원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를 아셨다. 그리고 그런 태도 기뻐하셨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시길 "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니고데모는 처음에는 그 말씀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라고 묻는다. 그런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 물과 성령으로 " 나는 것이라 말씀하신다.
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죄에 대해서 죽고 성령에 의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말한다. 결국 니고데모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되었다. 훗날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그 시신을 돌무덤에 매장했었고 예수님의 대한 깊은 존경심을 품고 자신의 생명과 직업을 바꾸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몰약을 준비하고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향품과 함께 세마포를 싸는 등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끝까지 함께하는 사람이 되었다.
전승에 따르면, 니고데모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그리스도에 대한 수난과 죽음에 대한 복음서를 남겼다고 한다. 학자 니고데모는 자신의 마지막 삶을 오직 대속주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전파하며, 전도자로 살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결론:
니고데모와 예수님의 대화를 통해서 다시 한번 거듭남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으면 한다. 거듭난다는 것은 하늘로부터 난다는 것이고 죄에 대해서는 예수님과 같이 죽고 성령으로 인하여 재창조된다는 것이다.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우리의 죄된 것들을 날마다 죽게 하시고 늘 성령으로 새롭게 되는 역사가 우리의 삶 가운데 일어나길 소망한다.
니고데모처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체험을 갖고 하나님과 예수님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 수 있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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