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애가 묵상
나의 경험이 나와 같은 과정을 겪는 사람을 위해 사용된다는 생각에 지금처럼 감사한 적이 없었다.
그 사람의 마음에 공감해 줄 수 있어 기쁘고 감사하고
한편으로는 힘들었던 지난 나에게도 지금 나와 같은 사람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 때가 있다.
예레미야 애가 3장 18절에서 절망을 말하는 예레미야를 보며 나도 그랬었지....
아무 소망도 없이 이젠 더 내려갈 곳도 없다는 생각에 절망에 절망했던 순간이 있었지.. 하며
나도 모르게 지금의 나에게 위로를 건네게 된다.
예레미야의 절망은 오히려 전환점이 되어 다시 소망을 품게 된다.
절망 속에서 소망으로 바뀌는 것은 하나님의 일으키심이었다.
고난의 쑥과 담즙이 소망으로 바뀌는 순간을 경험했기에
예레미야는 진정한 기도자로 살수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레미야는 평생을 유다의 선지자로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삶을 살았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느끼기에 가능한 일이다.
누군가를 위해 기도한다는 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느끼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3:48 딸 내 백성의 파멸로 말미암아 내 눈에는 눈물이 시내처럼 흐르도다
3:49 내 눈에 흐르는 눈물이 그치지 아니하고 쉬지 아니함이여
3:50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살피시고 돌아보실 때까지니라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셔서 심판하심을 알았기에 이스라엘의 멸망을 누구보다 힘들어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유다 백성을 보며 가슴 아파했다.
그들이 스스로 멸망의 길로 가려 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파멸을 보며 눈물이 그치지 않는 시내처럼 흘렸다.
눈물은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실 때까지 멈추지 않고 기도했다.
이런 예레미야의 감정이 나에게도 있길 소원한다.
내 마음에 아버지의 마음을 품고 힘든 지체를 위해 눈물을 흘릴 수 있길 소원한다.
지체를 사랑하는 마음이 지체를 세워주는 자로 사용되길 간절히 바란다.
그 지체가 회복될 때까지 멈추지 않는 눈물을 흘리길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