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묵상
갈라디아서처럼 믿음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고 명확하게 설명한 책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갈라디아서를 읽을 땐 한 절 한 절 마음속으로 "맞아! 그렇지! 아멘!" 하며 읽게 된다.
그리고 신학적인 부분을 많이 담고 있어 믿음에 대한 오해를 해소시켜 주기에,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믿음이 무엇인지, 또 믿음이 왜 선물인지 깨달을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좋은 방향을 제시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갈라디아 교회는 그리스도와 모세 율법을 더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종교적 체계를 만들어,
철저하게 율법을 준수할 것을 주장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완성된 구원의 충분성을 부정했다.
그런 그들에게 사도 바울은 도덕적 규칙이나 선한 행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십자가 외에 다른 것을 더하는 것은 기독교를 변질시키는 일임을 강조하며,
유대주의를 배척해야 함을 담은 책이 바로 갈라디아서이다.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할머니께서 예수님을 영접하신 후 가장 고민하신 부분은,
‘무언가를 더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기도한 뒤에도 할머니는 염주를 돌리며 기도하는 불교적 습관을 쉽게 버리지 못하셨다.
삼천배를 드리고, 아침저녁으로 정성을 다해 기도하던 삶에 익숙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께 염주와 불경을 버리시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불교에 익숙한 여러 습관을 내려놓고, 그 시간에
내가 적어드린 기도문을 읽으며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시라고 권해 드렸다.
그때 할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지금도 기억에 남았다.
“정아, 이렇게 쉬운 거였구나. 내가 몰라서 그동안 그렇게 살았네.”
노년에 예수님을 영접하셨고 병중에 계셔 성경을 읽지 못하신 것이 안타까웠지만,
손녀가 크게 적어 드린 기도문을 매일 읽으며 기도하셨다는 이야기를 오빠를 통해 전해 들었다.
할머니가 구원받으신 것은 오직 은혜였다.
그전에 몇 차례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드린 적이 있었지만 받아들이지 않으셨는데,
그 순간 예수님께서 직접 찾아와 주신 것이다.
그래서 믿음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다.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십자가에 행위(종교 의식)를 더하는 것은, 스스로 자유인에서 종의 신분으로 내려가는 것과 같다.
예수님께서는 율법 아래 죽으셨고, 하나님께 대하여 다시 살아나셨다.
율법을 폐하심으로써 율법을 완성하시고, 새 창조를 이루신 것이다.
만약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는 것이라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헛되이 여기는 것이다.
5: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5: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5: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것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스스로 은혜에서 떨어진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 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주실 의를 소망하며 기다리고 있다.
종교 의식은 아무런 효력이 없다.
오직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 중요하다.
참된 믿음은 말에 그치지 않는다.
참된 믿음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인도하시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삶 속에서 실천으로 드러나게 하신다.
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5: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5: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왜냐하면 믿음은 행위로 얻는 것이 아니지만, 믿음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사랑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그 안에 성령 하나님이 계시기에 그분의 뜻이 삶을 통해 드러나게 된다는 의미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는 이미 십자가에 우리의 죄와 탐욕, 탐심을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은 것이다.
그렇기에 이제 성령님께서 우리를 믿음의 자녀로 살아가도록 인도하신다.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시면, 성령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살도록 이끌어 가신다.
6:15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무할례나 할례와 같은 종교의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지음 받은 피조물이다.
우리 안에 새 창조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이 믿음이며, 믿음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이미 죽었다. 그리고 내 안에 새 창조를 이루어 주신 성령 하나님께서 내 삶을 온전히 인도하시길 기도드린다.
내가 죽었음을 잊지 않는 이 땅의 삶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율법의 단 한 조항도 지킬 수 없는 연약한 나를 붙드시고, 나를 율법으로부터 자유하게 하셔서
율법으로 얻지 못하는 영생을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 주심에 감사드린다.
그리고 참된 믿음의 삶으로 나를 이끄시며, 이 땅에서도 많은 선한 열매를 맺게 하시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