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말씀 묵상

디모데전서 묵상

차작가 2023. 10. 12. 10:54

목회서신이라 불리는 디모데 전서는 당시 에베소에서 사역하고 있었던 디모데를 향해 쓴 서신이다.

사도바울은 수제자라고 할 수 있는 디모데에게 가장 오랫동안 사역했던 에베소 교회를 맡겼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인간 디모데는 루스드라라는 곳에서 헬라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믿음이 있었던 어머니를 통해 어려서부터 성경을 잘 배운 사람이었다.

바울을 만나기 전에도 다른 믿는 자들로부터 칭찬받는 자였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디모데는 끝까지 변치 않고 바울의 제자로서 사역을 감당한 신실한 사람이라는 좋은 모델로 남아있다.

그가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에베소에는 로마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 중의 하나였다.

온갖 그리스 철학자들과 그 철학을 업고 등장하는 다양한 기독교 이단들이 서서히 싹트고 있었던 곳이기도 했다.

또 아데미라는 여신을 수호신으로 여기고 그녀를 위해 세운 거대한 신전을 도시의 자부심으로 여기는 곳이기도 했다.

사도행전 19장 34절에 기록된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라고 표현하는 것을 통해 당시의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현대의 관광객들도 남아 있는 에베소 유적지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정도이다.

그러므로 복음 사역을 펼치기에 결코 쉽지 않은 곳이었다.

바울은 그런 상황에 있는 디모데를 향하여 가르침에 "굳건히 서서 선한 싸움"을 싸울 것을 지시한다.

하나님의 가족들로 구성된 교회는 이 세상과 많은 면에서 구별되어야 한다.

감독이라고도 불리던 장로는 교회의 리더 역할을 감당하며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성숙함과 본이 되는 삶이 요구된다.

특히 가르치는 일을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신약이라는 정경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말로 전해지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염두에 둘 때

가르치는 자의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다.

교회를 함께 섬기는 집사들도 선택하는데 매우 신중을 요구한다.

성도 간에도 하나님의 집에 속한 가족이기에 서로를 존중하며 예의 있게 대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예배 또한 질서의 하나님의 모습을 담아내야 한다.

디모데 전서 2장에는 신약에서 가장 논쟁의 여지가 많은 부분이 나온다.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 지니라", "그런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등을 보면 남성 우월주의적이며 여성 비하적이라고 비난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 구절은 당시 역사적인 상황과 에베소라는 지역의 특성을 고려해서 해석해야 한다.

아데미라는 여신을 숭상하던 에베소에서는 여사제 또는 종교적 창녀가 많았었다.

그들은 제사 중에 신접함으로 일어나 말을 하고 또 제사 후에 성적 행위가 문란히 행해졌으며

여사제들이 신접해서 말할 때는 머리에 쓰고 있던 너울을 벗는 행위를 했으므로 그들과 의도적으로 구분하기 위해

유난히 여자들에게 외적인 단정함을 강조했던 것이다.

또한 히브리 문화나 헬라 문화에선 여자가 가르치는 일이 전혀 허락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아무리 여자와 남자가 하나님 앞에서 차별이 없다는 것을 가르치던 기독교라 하더라도 당시의 그 문화적 상황에서

너무 급하게 여자들이 리더의 위치에 올라가는 것은 결코 복음 전파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해산함이라는 부분은 정관사가 있기 때문에 단순한 해산이 아니라 원시 복음이라고 불리는

창세기 3장 15-16절과 연결하여 이해해야 하는데 메시아의 탄생을 의미한다.

하와에게 약속되었던 자손의 탄생을 의미하고 있다.

모든 목회서신에서는 예외 없이 한 가지가 강조되어 있다.

바로 복음 전파라는 큰 틀에서 모든 것을 보길 요구한다.

이런 큰 틀을 염두에 두고 디모데서를 포함한 빌레몬, 디도서 등 목회서신을 읽는다면 많은 부분이 더욱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당시 바울과 그의 제자들이 복음 전파를 위해 쏟은 애정과 열정이 우리에게 깊은 감명과 도전으로 다가올 것이다.

(성경 에센스 디모데전서 편 김윤희 교수 참조)

오늘 나누고 싶은 말씀은 3장 14절에서 16절에 나오는 말씀이다.

14절에서 보아 알 수 있듯이 바울은 디모데가 있는 에베소에 방문하고자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3:14 내가 속히 네게 가기를 바라나 이것을 네게 쓰는 것은

디모데전서 4장 13절에 보면 "내가 이를 때까지"라고 다른 구절에서도 여러 번 자신이 에베소 교회를 방문할 계획을 밝힌다.

에베소 교회는 바울이 가장 오랫동안 사역했던 교회였다.

그곳에서 바울이 함께 사역을 하다가 디모데를 후임 목회자로 세우고 바울이 떠난 상황이다.

그런데 바울이 왜 디모데와 함께 있을 때 다 가르쳐 주지 않고 또다시 방문할 계획을 알려줄까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후임 목회자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는 바울의 배려를 통해 나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우선 디도와 디모데 중에서 디모데를 선택하여 에베소에 남겨둔 것에서였다.

디모데는 개론에서 설명했듯이 유대인 어머니로부터 신앙 교육을 제대로 받았고 바울을 만나기 전부터 칭찬받았던 믿음의 성도였다.

그는 말씀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었다.

반면에 디도의 장점은 분쟁이 많았던 교회와 바울과의 사이를 잘 중재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탁월한 장점이 있었다.

무엇보다 인내심이 많은 성품의 소유자였다.

디모데는 말씀에 강함으로 아데미를 숭배하고 철학과 기독교기 혼합된 이단들이 생성하기 시작한 에베소 교회에게 적합했다.

바울이 에베소를 떠나기 전에 많은 가르침을 주었겠지만

바울은 디모데에게 계속해서 방문 계획과 사역에 대한 편지를 보낸 그 이유는

첫 번째는 미쳐 말하지 못했던 지침을 주기 위해서였고 두 번째는 디모데의 사역에 관한 점검이었다.

3:15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고린도후서 13장 10절에 보면 바울이 디모데를 자식처럼 아끼는 그 따뜻한 배려를 느낄 수 있다.

13:10 그러므로 내가 떠나 있을 때에 이렇게 쓰는 것은 대면할 때에 주께서 너희를 넘어뜨리려 하지 않고 세우려 하여 내게 주신 그 권한을 따라 엄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대면하기 전 디모데의 마음을 준비시키려는 의도였다.

편지를 통해서 미리 권면해서 에베소 교회가 준비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것이 바로 목회적 마음이다.

목회서신은 디모데서,디도서가 있는데 목양의 원리가 담겨진 서신서이다.

3: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14,15절에서 자신이 이 서신을 쓰는 이유는 디모데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해야 할지를 알리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여기서 "하나님의 집"은 교회이고 "행하다"라는 뜻은 헬라어로 "뒤집어엎다" 또는 "밭을 갈아엎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마치 우리의 마음 밭을 갈아엎어 하나님의 말씀의 씨가 잘 자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디모데에게 목회는 곧 마음의 밭을 일구는 일임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하나님의 집은 헬라어로 오이코스라고 하는데 즉 "교회는 집"이라는 것이다.

가족처럼 서로 사랑하는 것이 교회라는 뜻이다.

교회는 그리스도 위에 세워진 곳이다.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그리스도 진리의 터 위에 세워진 교회가 진리의 터인 것이다.

그곳에서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어야 한다.

주님이 거하시는 처소가 되길 바라며 경건의 비밀을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디모데를 아끼는 바울을 통해 예수님이 우리를 향한 그 사랑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런 곳이 바로 하나님의 집이며 주님이 거하시는 처소이다.

우리가 이런 개념으로 사람을 배려하고 목화적인 마인드로 서로를 아낄 때 복음이 더 굳건하게 전파된다고 생각한다.

바울이 디모데를 향한 배려를 보며 나도 그 배려가 내 몸에도 익숙해져서 이것이 예수님의 흔적이 되어야 함을 생각했다.

(cbs성서학당 디모데전서편 강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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