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절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 일 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23절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24절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보충 설명:
22~23절
사도 바울은 오직 그리스도만을 향해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라는 말을 했던 것이다.
사도 바울에게 세상은 단지 잠시 머물다가 떠나는 장막에 지나지 않았다.
잠시 머물다가 떠나는 나그네로 거하는 것이 곧 바울이 머무는 세상에 대한 인식이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에게 있어서 죽음은 나그네로 산 세상을 떠나서 다른 세상으로 옮기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영원한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이고 그리스도를 믿고 산다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24절
사도 바울에게는 사는 것도 자신이 의지와 뜻이 아니었다. 우리는 스스로 사는 것처럼 여기지만 사실 우리를 살게 하신 분이 따로 있다.
그러므로 바울은 육신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더욱 좋지만, 육신으로 살아가는 것 역시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 일하시므로 자신을 통해 하나님 뜻이 이루어 지길 원했다. 즉 자신이 육신으로 사는 것이 누구의 유익을 위해서인가를 분명히 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신자는 그리스도 때문에 새로운 생명을 얻은 사람이다. 우리의 생명은 내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심으로서 우리를 구원하셨다. 우리의 삶, 인생 모두가 그리스도의 것이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우리가 붙들렸고 지금 살아있는 이유도 모두 그것 때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기를 소원했던 그 마음은 그리스도로 살아가는 삶과 일치되어 증거 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신자답게 죽기를 원한다면, 그것이 진심이라면 우리에게서는 그리스도로 살아가는 삶의 흔적이 보여야 한다.
적용:
정말 바울은 멋지다. 죽는 게 더 좋지만 산다면 자신을 위해 ...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사는 게 아니고 빌립보 교인들을 위해 사는 것이고 이것이 복음에 유익하므로 사나 죽으나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죽는 것도 유익하나 산다면 내 이웃을 위해 유익하므로 산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데 바울의 경우는 그 고백을 빌립보 교인들이 동의하고 감사했겠지만 내 이웃은 내가 그렇게 고백한들 " 뭔 소리야! 웃기고 있네!" 할 것이다.
얼마나 인생을 떳떳하고 의롭게 살았으면 그런 고백을 할까!
사는 것이 누구의 유익을 위해서인가 분명히 해야 한다.
내 삶은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핏값으로 나를 사셨으므로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다. 그래서 내가 사는 이유도 예수님 때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직도 멀었지만...
앞으로의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흔적을 나를 통해 보여주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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