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절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26절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보충 설명:
25절
죽는 것이 유익한 이유가 그리스도 때문이었던 바울에게는 사는 이유도 그리스도에게 있었다.
바울은 육신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더욱 좋지만, 육신으로 살아가는 것 역시 하나님이 자신에게 향한 사명이었다.
우리가 살고 죽는 것은 모두 하나님에게 달린 문제이다. 우리가 육신으로 살고 있다면 우리를 이용해서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일이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신자는 그리스도 때문에 새로운 생명을 얻은 사람이다.
바울에게는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는 것이 천국이고 축복이었다.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기를 소원했던 그 마음은 그리스도로 살아가는 삶과 일치되어 증거 되었다.
26절
너희 자랑은 복음을 위해 헌신한 자랑을 말한다.
감옥에 갇힌 사도 바울로 인해 그 복음이 전파되고 더 확실하고 뚜렷한 열매를 가져올 것을 확신했다.
즉 바울이 감옥에서도 복음을 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자체가 빌립보 교인들에게 더 동기 부여가 되어 그들의 복음 전파 사역이 확신 가운데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으므로 바울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더 복음이 풍성해졌다.
적용:
우리가 살고 죽는 것은 모두 하나님에게 달려있다.
그리고 그 생명도 그리스도로 인해 받은 새로운 생명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즉 우리의 생명도 하나님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바울이 감옥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전하는 모습 자체가 빌립보 교인들에게 확신을 주었고 그들에게 큰 원동력이 되었다.
비록 어려운 처지에 놓인듯하나 그 어려움이 오히려 풍성한 열매로 돌아오는 삶을 바울은 살았다는 것이다.
나의 삶을 돌아보면 항상 어려움은 한꺼번에 태풍처럼 정신없이 몰아치듯 왔었다.
그러나 항상 그 태풍이 나에게 새로운 기회가 되었고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하게 했었고 결국 가장 좋은 기회를 잡게 돼 곤 했었다.
그래서 가장 나쁜 일 같으나 가장 좋은 일을 만나게 된 셈이었다.
바울의 고난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용기를 주고 복음이 반석 위에 서는 결과를 낳은 것과 같았다.
코로나로 교회가 어렵고 고난 가운데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 상황이 가장 복음으로 돌아가기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다시 평신도로 산지 2년이 되었다. 평신도로서 교회를 결정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여러 교회 설교를 듣고 교회의 분위를 보며 선 듯 정하지 못한 가장 결정적인 원인이 목사님의 설교 문제였다.
행사 위주 봉사 위주의 교회로 가다 보니 가장 중요한 설교에 등한시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교회는 복음을 전하는 곳인데......
목사님 들의 설교가 준비되지 않은 모습으로 강단에 서는 걸 보며 안타까웠다.
성경을 해석하는 부분도 의문이 생기는 부분도 더러 있었다.
요즘은 코로나로 설교를 온라인으로 듣는 형태로 예배를 드리게 되니 목사님의 설교가 가장 드러나게 되어 있다.
행사도 못하고 성가대도 못하고 주일학교도 못하니 보이는 것은 설교뿐이다. 이 기간 목사님들은 설교에 더 깊이 연구하는 시간을 배려해야 될 것이다. 왜냐면 교회는 복음 전파를 빼면 앙고 없는 찐빵이고 예수님 없는 교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도 마찬가지이다. 여러 모임에 행사에 시간을 보내는 게 열심 있는 성도라고 생각하고 올바른 신앙생활하는 거라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 더 중요가 아니라 전부라는 걸 생각해야 한다.
마치 이 시기가 위기라고 느낀다면 착각이라 생각한다.
이건 위기가 아니라 복음으로 돌아가는 기회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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