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빌립보서 1장 19~21절

차작가 2024. 4. 4. 11:26

19절 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20절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21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보충 설명:

19절

어떤 상황에서도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것으로 기뻐했던 사도 바울이 구원에 이른다는 미래에 대한 기쁨까지도 말하고 있다. 하지만 바울은 이 기쁨을 자신의 힘으로 이룰 것을 말하지 않았다. 오직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것으로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이 자신의 힘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도우심이었기 때문에 역시 계속되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빌립보의 성도들이 바울을 기도한다면 그것 역시 바울과 같은 마음, 즉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기도한 것이다.

20절

바울을 바울 되게 했던 그 능력에 대해서이다. 다시 말해서 참된 주의 능력이 우리를 어디로 이끌어 가는가를 제대로 알자는 것이다.

21절

바울은 이미 예수님으로 인해서 새롭게 된 사람이다. 예수님의 생각과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아가게 된 사람이다. 그가 한 말은 예수님의 생각과 일치하므로 바울의 말이 곧 예수님의 말이 되는 것이다.

‘오직 전과 같이’ 즉 옥에 갇히기 전에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리스도를 전파했던 것처럼 옥에 갇힌 현재에서도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자신의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기를 원했다. 그리고 현재의 어떤 상황에서도 담대함을 잃지 않고 자신의 일 또는 상황으로 인하여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길 원했다.

사도 바울이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라고 고백하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바울의 말과 생각은 옥에 갇힌 현실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담대하게 그리스도만을 말하는 것이다.

바울에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가 전파되고 자신의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 이것만이 바울의 삶의 의미였다.

적용:

바울의 삶은 자신을 통해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고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것이었다. 이것이 삶의 의미이고 목적이었다.

그래서 온 인생을 그리스도만을 위해 헌신하게 된 것이다.

나에게도 이와 비슷한 과거가 있었다. 이 말은 현제는 그렇게 살지 못한다는 이야기이다.

22살에 예수님을 믿고 엄마의 반대를 무릅쓰고 다녔기에 핍박이 심했다. 엄마는 학비를 끊었고 생활비 지원도 끊었었다. 이 상태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남편이 신학교에 가는 걸 보는 순간 그나마 통화하는 것마저도 끊어버렸었다. 엄마랑 통화를 하고 지낸 지 10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만큼 종교에 대해 핍박이 심했었다.

그 옛날 처녀 시절 나는 결혼을 하지 않으려 했다. 바울처럼 싱글로 복음을 위해 살리라~ 결심을 했었다.

지금 생각하니 우습고 참 별스럽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 당시는 참 순수했었다. 신학교에 다닌 적은 없지만 너무 열심히 교회를 섬기니 유치부 전도사처럼 설교를 맡아서 했었고.. 매주 토요일은 아이들 전도하러 다녔었고 선교한국이니 ... 선교훈련이니... 단기 선교니.. 하며 이 나라 저 나라를 다녀오고 캠프를 위해 이곳저곳을 다니며 훈련을 받고... 그러다가 남편도 만났었다.

아마도 그 당시 나의 순수함이 보험이 되어서 지금껏 보험을 타 먹고 사는 것 같다.

나의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길 원했었다. 나를 통해 복음이 전파되고 우리 가족 모두가 예수님을 믿고 헌신하길 원했었다. 이 복음을 위해 살기 소망했었다.

성경도 열심히 읽고 종교 서적도 열심히 읽고 .. 방언이며 통변이며 예언이며 수화 방언이며 방언 찬양이며 참... 신비로운 경험들도 많이 했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었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모든 것이 신앙의 최고 지점에 오르는 길인 줄 알았는데 신앙은 생활이었기 때문이다.

바울처럼 삶으로 그 믿음을 보여 주지 못하면 아무런 변화도 기적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이제 남은 생을 좀 더 바르게 살고 바르게 흔적을 남기고 싶다.

그것은 삶의 흔적이다. 나의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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