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빌립보서 4장 1~2절

차작가 2024. 4. 16. 11:02

1절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2절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안에서 같은 같은 마음을 품으라

보충 설명:

1절

주의 일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는 종교적인 행위로 집중된다. 기도하고 성경 보고 교회에 충성하고 봉사하고 구제하고 헌금하는 것 등등이 주와 연관된 것이고, 때문에 그러한 것들이 곧 주의 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것도 주의 일이다.

그러나 이 말씀에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주 안에 서라’는 말은 어떤 영역을 의미하는 말임을 알아야 한다. 즉 ‘주 안에서 산다’라고 할 때 이 말은 그 삶의 영역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뜻이 되는 것이다.

본문은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로 시작된다. 이것을 보면 이제 사도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말이 3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말한 것과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장에서 말한 것은 우리의 낮은 몸이 예수님의 영광의 몸과 같이 변케 되는 부활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바울은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으며 하늘로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린다는 말도 한다. 이것과 주 안에 서라는 말이 연관이 있음을 ‘그러므로’라는 말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다.

주 안에서 산다는 것은 삶의 영역이 주님이라고 했다. 주님이 삶의 영역이라는 것은, 주님이 하신 일과 주님으로 된 일 그리고 주님으로 될 일 위에서 산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자가 주님으로 된 일을 믿으며 주님으로 될 일을 소망하고 산다면 그것이 곧 주 안에 있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 안에 선다는 것은 막연한 것도 다만 신자 개인이 가지는 느낌도 아니다. 삶의 구체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다. 신자가 주님의 은혜로 살아가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고, 자신의 의를 자랑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터로 하여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터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우리를 향한 뜻이다.

2절

교회는 싸움이 있고 다툼이 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된다.

사실 우리들이 참고 노력함으로써 싸움이 없고 다툼이 없다면 그것은 싸움과 다툼을 숨기고 있을 뿐이다. 진심으로 같은 마음, 같은 생각으로 모이기 때문에 자연히 싸우지 않게 되고 다투지 않게 되는 건 아니다.

우리도 많이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교회 내에서 두 사람 사이에 다툼이 벌어지면 그것은 두 사람의 다툼으로만 끝나지 않는 것을 많이 본다. 두 사람이 다투게 되면 다른 사람들은 서로 자신이 동조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파벌이 형성되게 되고 그것이 결국 교회 전체의 불화로 번지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사도 바울도 비록 두 여인의 싸움이 있었지만 그것을 유오디아와 순두게 두 여인의 개인적인 문제로 보지 않고 교회의 문제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울은 책망이 아니라 싸움이 있을 때 그것을 어떤 방향으로 해결해 가는 것이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로서 바른 모습인가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2절에서 바울은 서로 다툰 두 여인에게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하고 있다. 단순히 같은 마음을 품으라는 것이 아니라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는 것이다.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주님에게 복종하라는 의미이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십자가의 피이다. 그 피는 곧 섬김과 희생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죽어야 하고 멸망에 처해야 할 우리를 살렸다. 따라서 하늘의 생명이 없는 자에게 생명이 주어지고 그것이 얼마나 귀한가를 아는 신자라면 자연히 생명이 주어지게 된 주님의 희생과 섬김을 높이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는 주님의 희생과 섬김 아래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주님의 희생과 섬김이 요구하는 것에 순종하게 될 것이다.

순종함으로 인해서 형제를 사랑하게 되고 형제를 배려하면서 양보하게 되고 나에게 유익되는 것보다는 주님에게 유익되는 길을 먼저 찾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주님이 다스리는 교회이며 주님의 다스림에 순종하는 교회이다.

교회에 싸움이 있다는 것은 교회에서 주님을 생각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적용:

교회에서 다툼이 있고 분파가 생긴다는 것은 주님의 마음을 품지 않은 것이며 주님을 생각하기 보다 자기 자신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주님의 말씀에 복종, 순종하는 것이다.

이것을 하지 않는 것은 죄이다.

결국 자신의 죄로 인해 교회를 나뉘게도 하기 때문이에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사역을 할 때 이런 일들을 아주 너무 많이 봐왔었다.

너무 많아 다소 충격이었다. 가장 최근에 사역했던 교회에서도 마음 아픈 일이 있었다. 부목사 시절에는 이런 일로 담임 목사님의 스트레스가 이렇게 클 줄을 몰랐었다.

이교회 저 교회 돌아다니다가 적당히 작은 교회에서 헌금 좀 하면 장로 직함을 준다. 장로 직함을 받으면 그런 사람은 문제를 일으키게 되어 있다. 결국 다툼을 만들고 목회자를 괴롭히고 결국은 자신과 맞지 않은 교인들을 내 보내든지 아니면 자신이 지면 자기가 나오든지 하는 일이 이민교회에서는 아주 흔한 일이다.

처음 사역지로 부임한 교회는 한 열 명 정도의 성도가 이래저래 나뉘고 갈라져서 남아 있는 교회였다. 4년을 하다 보니 30명 정도가 되었었다.

부흥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 등록하신 분들이 위에서 설명한 그런 교인들이었다. 이래저래 돌아다니가 가 싸워서 나오신 그런 분들이었다.

개 버릇 남 못 준다고 아니가 다를까 우리 교회에 와서도 같이 온 그분들끼리 다툼이 생겼었고 위에 바울과 같이 말씀으로 권면했지만 자신의 편을 들어 주지 않자 교회를 힘들게 하기 시작했다. 결국 힘이 약한 놈이 나가고 강자가 살아남아서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은 우리를 핍박하기 시작했다.

매일 전화해서 심지어 나는 플로리스트라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시간에도 전화를 해서 업무를 방해하는 등... 정말 스트레스였었다.

끝까지 중립에서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 말씀으로 권면했지만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이럴 땐 잘못이 있는 놈은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해선 루머를 만들고 그 사건의 희생양을 만들고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 대부분 목사에게 덮어 씌우게 되어 있다.

나중엔 싸움에서 져 나간 사람이 이상한 소문이 목회자에게 향하자 찾아와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기까지 했었다.

어떤 변명도 방어도 하지 않았었다. 그저 하나님께 맡겼었다.

주 안에서 산다는 것은 삶의 영역을 말한다.

그분들이 어느 영역에서 살고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예수님 믿지만 성경에 나오는 말씀을 듣지 않고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양을 삼는 것은 죄이다. 주 안에서 살지 않는 것은 자신만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그가 속한 단체에도 영향을 미치는 중한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우린 날마다 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나 자신을 위한 것인지... 주님을 위한 것인지 분별해야 한다. 나를 위할 땐 관계를 끊는 파괴밖에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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