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묵상

손바닥 묵상 3 - 에스겔 41장에서 48장 묵상

차작가 2024. 11. 8. 10:25

성전에서 나오는 물이 능히 사람이 건너지 못할 강이 되고 바다에 이르니 그 물로 인하여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게 된다.

이 강물이 흐르는 곳마다 번성해지고 모든 것이 살아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난다.

왜냐하면 그 물이 성소를 통해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내용이 땅의 경계선 땅의 배분이다.

나는 이곳에서 왜 하나님이 갑자기 땅, 기업의 이야기를 하시는지 곰곰이 생각하니 은혜가 되었다.

그리고 나를 위로해 주시는 말씀으로 다가왔다.

47:14 내가 옛적에 내 손을 들어 맹세하여 이 땅을 너희 조상들에게 주겠다고 하였나니

너희는 공평하게 나누어 기업을 삼으라 이 땅이 너희의 기업이 되리라

47:21 그런즉 너희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대로 이 땅을 나누어 차지하라

47:22 너희는 이 땅을 나누되 제비 뽑아 너희와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사는 타국인

곧 너희 가운데에서 자녀를 낳은 자의 기업이 되게 할지니

너희는 그 타국인을 본토에서 난 이스라엘 족속같이 여기고

그들도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너희와 함께 기업을 얻게 하되

47:23 타국인이 머물러 사는 그 지파에서 그 기업을 줄지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성소의 물이 흘러 강이 되고 바다로 흘러가 모든 것을 살리게 되는 일이

이스라엘 백성의 삶 가운데도 이루어 지길 원하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공평하게 각 지파대로 기업을 주시고 그 경계를 강이나 바다나 시내 등으로 동서남북으로 나뉘어

마치 성소에서 나오는 물같이 공평으로 흘러가게 하셨다.

이 공평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머물러 사는 타국인과 그 자녀들에게도 똑같이 흘러가게 하셨다.

이방인 타국인들도 이스라엘 지파같이 여기길 원하셨고 함께 기업도 나누길 원하신 것이다.

이것이 성소에서 흘러나오는 물과 같이 모든 것을 살리는 물이 되게 하신 것이다.

나에게 도전이 되는 말씀이기도 했고 위로가 되는 말씀이기도 했다.

위로로 다가온 건 전도사에서 목사로 섬기는 동안 우리는 늘 가난과 함께했다.

구약의 원칙대로라면 제사장이 분배 받은 땅의 소실은 나누지 못하게 하시고 다 제사장 이 먹게 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나눌 수밖에 없었다.

물론 기쁘게 나누었으나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천불 사례비를 받으면 아파트 렌트비도 안되는 돈이라 우리는 아르바이트하고 살아도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최대한 절약을 하기로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줄일 수 있는 것은 식비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잘 먹질 못했다.

목회할 때는 그나마 3천5백 불을 받았지만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으니 그게 그거였다.

그래도 십일조도 해야 했고 감사 헌금도 해야 했고 주일 헌금도 해야 했다.

한 번도 망설이거나 아깝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우리 가정에게 큰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카드로 살고 결국은 파산을 두 번이나 해서 차도 팔아보고 .. 참 고생을 많이 했었다.

그때도 나는 식비 밖에 줄일 수밖에 없었다.

목회를 그만두고 나니 그동안 한 번도 먹지 못했던 조기 한 마리를 나를 위해 구워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돌아보니 어떻게 살았나 .... 하는 생각에 눈물이 나지만

하나님이 만드신 원칙을 사람이 지키지 않으니 하나님을 원망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 은혜가 아니었으면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일하고 받는 건 당연한 것인데 왜 그렇게 인색하게 사역자를 대했을까.. 하는 서운함이 있다.

사실 가난한 사람은 십일조도 감사헌금도 하지 말고 생활비로 사용하는 게 옳다는 생각이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목사로서 당연하다고 생각했기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른 복을 주셨다.

그러나 이젠 내 생각이 달라졌다.

헌금도 나눔도 공평하게 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많이 받은 자는 적게 받은 자를 위해 나누는 것이 공평하고 빚을 내며까지 헌금하는 지체들에겐 그러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당신은 돌봄을 받아야 될 지체라고.... 이건 우리의 몫이라는 말을 해 주고 싶다.

이것이 성소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바다를 살리는 것과 다름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나는 이 땅에서 받은 눈에 보이는 기업은 없지만....

은혜도 흘려보내고 물질도 흘려보내는 삶이 나의 목표이다.

나는 헌금하고 나면 생활할 돈이 없는 목회자가 있다면 넣어 두고 쓰라고 말해 주고 싶다.

우리가 나누지 못해 월급 많이 주지 못하는 건 우리의 잘못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아이들에게 미안한 부모가 되었기에 올바른 흘려보냄이 우리의 삶에 장말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평신도도 자신은 하지 못하는 삶을 사역자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젠 목회를 그만두니 이런 말을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하나님이 나에게 꿈을 주셨다.

한 번도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데 이젠 물질을 주시면

마치 성소에서 물이 흘러 바다를 살리는 것처럼 사람을 살리는 곳에 사용하고 싶다.

이것이 나에게 주신 이 땅에서 마지막 사명이라는 생각으로 기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