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 9장의 기도문을 묵상하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좋은 모범 답안을 보는 것 같다.
그리고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의 기도가 주는 힘은 지금 나에게도 감동을 주고 도전을 주는 것처럼
그 기도의 역사하심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공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함이니이다"라고 드리는 기도문을 읽고
때로는 나의 기도는 나의 공의로 의지 하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도의 주체가 내가 되면 사실 그 기도는 진정한 기도가 아니다.
내가 하는 기도가 아니라 성령님이 하시는 기도로 해야만 기도가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긍휼이란 게 없기 때문이고 불가능한 일이다.
다니엘이 예레미야 말씀을 읽으며 자신의 민족들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범죄 했음을 알게 되었다.
이 부분도 다니엘의 지혜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신 마음이다.
다니엘은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자신의 민족의 죄를 대신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갔다.
이 모든 것은 다니엘이 날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온전히 하나님 앞에 서는 방향으로 정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진심에서 나온 기도는 자신도 살리고 남도 살길 바라는 기도로 이어진다.
9:16 주여 구하옵나니 주는 주의 공의를 따라 주의 분노를 주의 성 예루살렘, 주의 거룩한 산에서 떠나게 하옵소서 이는 우리의 죄와 우리 조상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과 주의 백성이 사면에 있는 자들에게
수치를 당함이니이다
9:17 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 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추시옵소서
9:18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공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니이다
다니엘은 유다 백성이 얼마나 큰 죄를 지은지를 깨닫고 하나님의 심판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애굽의 종살이할 때 부르짖었더니 자신의 민족을 돌아보시고
종의 신분에서 구원으로 인도하신 것처럼 다시 기회를 달라고 기도드린다.
주님의 분노를 주의 성 예루살렘에서 떠나게 해 달라고 기도드린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버린다는 건 하나님에게도 수치이고 자신들도 버림받은 백성의 수치를 당하기 때문에
주님의 눈을 돌려 황폐해진 민족들을 봐 달라고 간구 드린다.
사람의 법대로 하면 눈에는 눈이고 이에는 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는 긍휼이 감싸고 있기에 불쌍히 여겨 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니엘은 한 번도 보지 못한 조상의 죄까지도 대신 회개하는 걸 보며
진정 거듭난 사람의 기도는 이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기도는 나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힘으로 해야만 기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공의를 의지하는 것을 버리고 오로지 성령님이 이끄시는 기도만이 주님의 긍휼을 의지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는 없는 긍휼은 성령님만이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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