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배자

사무엘하 11장에서 15장 묵상

차작가 2025. 2. 6. 11:09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라는 백성들의 함성을 들은 다윗이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 광야로 도망을 가고 있다.

왕이 되기 전엔 사울에게 쫓겨 다녔고 불량배들을 모아 군대를 만든 사람이다.

산전 수전을 다 겪은 왕이었고 많은 전쟁으로 전쟁의 판을 보면 한눈에 꿰뚫을 수 있는 다윗 왕이

멘탈이 나가니 상황을 올바르게 판단하지 못하고 광야로 도망을 가고 있다.

압살롬을 따른 사람들은 왜 따르는지도 모르고 그저 따라가는 사람 200명이었다.

15:10 이에 압살롬이 정탐을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에 두루 보내 이르기를

너희는 나팔 소리를 듣거든 곧 말하기를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다 하라 하니라

15:11 그때 청함을 받은 이백 명이 압살롬과 함께 예루살렘에서부터 헤브론으로 내려갔으니

그들은 압살롬이 꾸민 그 모든 일을 알지 못하고 그저 따라가기만 한 사람들이라

아들이 반역을 하니 멘탈이 정상일 리가 없다.

밧세바 사건으로 다윗은 조금씩 판단력을 잃어갔다.

그런 다윗에게 하나님은 압살롬의 반역을 사용해 다시 광야로 보내셔서 하나님을 만나길 원하셨다.

다윗은 이백 명과 압살롬만 보고 다윗을 따르는 모든 백성들을 보지 못했다.

15:17 왕이 나가매 모든 백성이 다 따라서 벧메르학에 이르러 멈추어 서니

15:18 그의 모든 신하들이 그의 곁으로 지나가고 모든 그렛 사람과 모든 블렛 사람과 및

왕을 따라 가드에서 온 모든 가드 사람 육백 명이 왕 앞으로 행진하니라

15:19 그때에 왕이 가드 사람 잇대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도 우리와 함께 가느냐 너는 쫓겨난 나그네이니

돌아가서 왕과 함께 네 곳에 있으라

15:20 너는 어제 왔고 나는 정처 없이 가니 오늘 어찌 너를 우리와 함께 떠돌아다니게 하리요

너도 돌아가고 네 동포들도 데려가라 은혜와 진리가 너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15:21 잇대가 왕께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 내 주 왕의 살아 계심으로 맹세하옵나니

진실로 내 주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사나 죽으나 종도 그 곳에 있겠나이다 하니

15:22 다윗이 잇대에게 이르되 앞서 건너가라 하매 가드 사람 잇대와 그의 수행자들과

그와 함께 한 아이들이 다 건너가고

15:23 온 땅 사람이 큰 소리로 울며 모든 백성이 앞서 건너가매

왕도 기드론 시내를 건너가니 건너간 모든 백성이 광야 길로 향하니다.

말씀처럼 모든 백성이 다윗을 따라간다.

그리고 그들은 따르는 이유가 있었다.

다윗을 신뢰했고 다윗이 신뢰하는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이다.

그의 모든 신하들 모든 백성이 다윗의 곁으로 지나가는 것은 마치 하나님께서 "너 졸지 마라!" 하시는 것 같다.

그리고 모든 그렛 사람들 블레셋 사람과 가드 사람 600명이 왕 앞으로 행진한다.

반역으로 쫓겨 가는 왕의 행색이 아니라 마치 전쟁에서 승리한 왕의 행렬을 보는듯하다.

다윗이 가드 사람 잇대에 게 이 고생길을 왜 따라가느냐 쫓겨난 나그네와 같이 정처 없이 가는 길에 나를 왜 좆아 오느냐

돌아가라고 하지만 여호와의 살아계심과 내주 왕이 살아 계심으로 맹세하며 다윗이 가는 길 어디든지 따라간다고 말한다.

그곳이 광야 일지라도 말이다.

하나님은 아들의 반역에 쫓겨 가는 다윗에게 "너 쫓겨 가는 게 아니라 너를 다시 재정비 시키려고 광야로 보내는 거야!" 하시는 것 같다.

그리고 200명 보다 더 큰 모든 백성들을 보여주시는 것 같다.

그런데 다윗도 마음 한편으로는 이 사실을 느꼈을 것 같다.

옆에서 함께 걸어가는 모든 사람들을 보며 느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아들을 생각하며 이렇게 된 것은 것 자신의 탓도 있다는 생각을 했을 것 같다.

그래서 광야가 다윗에게 필요한 곳이었다.

나는 매일 재활을 하며 불가능에 도전하며 살아가고 있다.

항상 나는 불가능을 마주 대한다.

이것은 마치 압살롬에게 이스라엘의 민심이 다 돌아간 것처럼 느껴지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승패 없는 싸움 같아 도망가고 싶을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모든 백성들이 다윗 곁에서 행진을 하는 것처럼 말씀을 대하며

"그래 ... 이것이 다가 아니지 나에게는 하나님이 계시지.. " 하며

내 앞에 가로막혀 있는 것은 내가 만든 왜곡된 허상이라는 생각을 한다.

하나님이 나에게 병을 통해 광야를 걷게 하신 것은 가까이에서 교제하길 원하신다는 걸 안다.

다윗에게 모든 백성들을 곁으로 지나가게 하시므로 혼자가 아니다..

그리고 이것이 현실이라고 보여주신 것처럼 나와 동행해 주신다.

이것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이라는 걸 보여주시는 거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자주 혼돈한다.

커 보이는 것, 나를 위협해 흔들리게 만드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그래서 정작 옆에 있는 하나님은 아무런 힘이 없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래서 하나님을 광야로 인도하신 것이다.

봐야 할 것을 볼 수 있게 만드는 건 광야이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님이 나의 인생을 바로 보게 하시고 가장 중요한 것을 깨닫게 인도하신 광야를 사랑하고

광야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임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