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배자

사무엘하 16장에서 24장 묵상

차작가 2025. 2. 7. 14:17

누군가에게 저주의 말을 듣는다는 건 굉장한 충격일 수밖에 없다.

육체를 죽이는 것보다 마음을 죽이는 게 사실 더 아프고 오래 남는 것 같다.

마음이 한번 상처를 입으면 생각보다 회복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저주라고 하기엔 좀 다른 경우이긴 하지만 남으로부터 부정적인 말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가장 힘든 순간엔 용기를 북돋아 주는 말이 듣고 싶은 게 사람이다.

살면서 굵직 굵직한 사건들을 겪으며 누가 나의 참 이웃인지 알게 되는 순간이 있었다.

힘들 땐 조용히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 고맙고 그 사람 때문이라도 다시 일어서고자 하는 마음도 생겼었다.

오늘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겨 광야로 가는 길에 시므이가 쫓아오며 저주를 하는 장면이 있다.

16:11 또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16:12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

시므이는 베냐민 지파 사람이다.

사울왕이 베냐민 지파이므로 왕이 유다 지파로 넘어가서 다윗을 싫어했다.

그런 시므이가 다윗 왕이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 가는 신세가 되니 기뻤을 것이다.

그래서 쫓아오며 저주를 하는 것이다.

신하들이 시므이를 죽이려고 하자 저주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라며 그만두라고 다윗이 명령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고난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을 알고 고난마저 겸허히 받아들이는 다윗이다.

그리고 시므이가 다윗을 저주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므로

자신의 원통함을 감찰하시고 혹 시므이의 저주 때문이라도 하나님이 선으로 갚아 주실 것을 바라는 내용이다.

3년 전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낼 때 나는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 당시는 벼랑 끝에서 서 있는 나를 밀어 버리는 것 같은 말이었다.

그런데 그 당시 나의 마음 한편에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고난을 인정하는 마음이 있었다.

혹시 하나님이 나를 돌보셔서 그 사람의 말이 틀린 것을 증명해 주시겠다는 마음이 있어서

오히려 그 말 때문에 힘을 내고 지금 쓰는 묵상 글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나를 살려주셨다.

그 한마디의 말이 나를 말씀 앞에 나오게 하신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다윗의 승전가처럼 하나님은 나의 반석이여 요새시며 나를 건져 주셨다.

2:29 여호와여 주는 나의 등불이시니 여호와께서 나의 어둠을 밝히시리이다

22:30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진으로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넘나이다

22:31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진실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에게 방패시로다

3년 전 들은 저주 같은 말이 계기가 되어 말씀 앞에 나오게 인도하셨고.....

"다시 사는 삶" 카테고리로 시작한 묵상이 "매일의 말씀 묵상"으로 그리고 "손바닥 묵상 1편 2편 3편"으로

그리고 지금 쓰고 있는 "나는 예배자" 묵상으로 이어지게 하셨고 십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블로그를 방문하게 하셔서

나의 하나님을 나누게 역사해 주셨다.

이것은 한 사람을 사용해서 이루신 것이다.

나의 하나님은 나의 등불이 되어 주셔서 어둠을 밝혀 주셨고 주님을 의뢰하며 하나님께 달려가게 하셨고

그 하나님을 의지할 때 고난을 뛰어넘을 수 있게 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하시고 진실하시고 하나님은 자신에게 피하는 나에게 방패가 되어 주셨다.

다윗에게 하신 것처럼 나에게도 이루어 주셨다.

그 병실에서 마주한 것은 절망이었고 사람의 말은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았지만

나를 날개 위로 올려 높은 하늘을 날개 하신 분이 하나님이셨다.

그래서 나는 3년 전 그 시간을 감사드린다.

하나님이 시므이를 통해 다윗에게 선으로 갚아 주시리라는 일이 나에게 이루어 지심에 감사 찬송을 오려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