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출혈을 처음 겪었던 시간을 돌아보면 너무나 무섭고 혼란스러워 마치 꿈같아 현실이라는 생각이 안 들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자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혹 내가 죄를 지어서 벌을 받는 걸까?"라는 질문이었다.
죄 없는 사람이 없는데 다 거기에서 거기인데 만약 죄 때문이라고 하시면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다행히 첫 출혈에선 시야의 오른쪽 부분만 손실되고 다른 신체적인 장애는 없었지만
마지막 8번째 출혈로 오른쪽 편마비가 왔을 때는 절망하게 되고 우울증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었다.
하나님은 왜 나에게만 이렇게까지 가혹하신지 이유도 말씀해 주시지 않으신지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만 같았다.
그런데 감사한 건 성령님께서 내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잊지 않게 지켜주셨고
아픈 가운데 말씀 묵상에 깊이 들어가게 인도하셨다.
욥도 아마도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았던 것 같다.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친구들마저 자신을 위로해 주지 않는 데도 욥은 하나님을 만나길 간절히 원했다.
이것이 욥이 살렸다.
23: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23:11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23:12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
23:13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키랴 그의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23:14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
하나님은 자신의 말을 들으시는 하나님을 기억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자신은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아시고 결국은 이 고난을 통해
자신을 단련하신 후 순금같이 만드심을 깨달았다.
욥은 친구들에게 대답하면서 그동안 경험한 하나님을 입으로 시인하며
하나님을 기억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귀한 말씀을 생각하게 되었다.
마치 하나님이 욥의 입을 통하여 친구에게 말씀하기도 했지만 본인도 듣게 하신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랬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하나님....
나의 기도만 듣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보며 버려진 기분이었다.
그러나 매일같이 말씀 앞에 엎으려 묵상하고 기도를 놓지 않다 보니 이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다.
하나님은 나를 단련하시고 정금같이 만드셔서 참 자녀로 빗어가셨다.
그걸 깨닫는 순간 나는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바라보게 되었다.
우리는 세상의 것, 고난 걱정 모든 것들에게 집중되기 쉽다.
이것은 좌우로 치우치는 길을 걷는 것과 같다.
고통, 병, 자녀의 일 이런 것에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걷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걸 믿는 것이 믿음인데 이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에게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걸 원하셨다.
치우치지 않는 것은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욥의 고백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음식보다 귀함을 알고 그 말씀을 귀히 여길 때 가능하다.
이것은 치우치지 않는 믿음의 삶이고 어떠한 어려움에도 단련된 정금과 같이 하나님 앞에 서게 만든다.
하나님은 욥에게 이런 모습을 기대하시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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