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나는 무슨 일이 앞으로 벌어질지 알지만 제자들과 무리들은 모르는 말씀이라 마음이 무거웠다.
11장에서 나사로가 병이 들자 예수님은 4절에서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이틀이 지난 후에 11절처럼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다.
그리고 자신은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신다.
나사로를 살리시면서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 많은 목격자들 앞에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나사로가 살아난 것을 제자들과 많은 유대인들이 보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그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일을 바리새인들에게 알렸다.
11:45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그를 믿었으나
11:46 그 중에 어떤 자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알리니라
이 말을 들은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예수님에 대해서 어떻게 할 것인지 회의를 했다.
왜냐면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고 또 죽은자가 살아나는 것은 하나님외에는 할 수 없는 일이므로 그들이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로마인들이 와서 자신들이 가진 땅과 민족들을 빼앗아 갈거라고 말했다.
이 말은 틀린 것이다. 그럴싸하게 자신들의 위기감을 다른 말로 포장한것이다.
예를든다면, 과거 민주화 운동 때 군부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옳은 일을 하는 학생들을 잡아서 거짓말로 죄를 씌어서 고문과 핍박을 할 때 그 속내는 자신들의 권력을 잃지 않으려는 것이었지만 여론에는 그럴싸하게 북한에서 내려온 간첩 소행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 때에 하나님은 대 제사장 가야바를 사용하여서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하게 한신다.
11:50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11:51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의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11:52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가야바는 이 말을 하면서도 자신의 의지가 아니기에 뜻도 모르고 말을 한 것이다.
마치 발람이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러 갈 때 나귀가 가기를 거부하자 나귀를 채찍을 세 번치자
나귀가 사람의 말을 하게 하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그중에 많은 사람들은 가야바의 입을 열어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그러나 단 한명도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했다.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잡기 위해 예수님이 있는 곳을 알면 신고하라고 했다.
죽은 자가 살아나자 그곳에는 잔치가 열렸다.
다시 살아난 나사로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도 있었고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을 보기 위해 온 사람들도 있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 뿐만 아니라 죽은 사람이 살아났으니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확실한 증거인 나시로까지 죽이려고 했다.
그런데 그 때 마리아가 등장한다.
12장 9절에 보면
12:9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 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보기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 함이러라
여기서 큰 무리는 유월절을 지키러 온 순례자들을 일컫는다.
이런 무리 가운데에 마리아는 유일하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이해한 여인이었다.
제자들에게도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자는 죽어도 살갰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매번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대제사장 가야바를 통해서도 50절에서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라고 말씀하셨으며 나시로가 죽기를 기다렸다가 살리심으로 이것은 너희로 죽은자를 살리신 것을 믿게하려 하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단 한사람 마리아만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한 것이다.
그녀는 나드 즉 인도로 부터 수입되는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의 머리를 풀어 그 발을 닦아 드렸다.
잔치 자리에서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한 것이다.
여자가 머리르 푼다는 것은 마치 자기 옷을 찢어 슬픔을 나타내는 그런 행위이다.
예수님이 많은 기적을 베푸시고 유월절을 앞두고 모인 군중들 속에 있을 때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는지 예수님과 그 여인은 안 것이다.
그때 예수님의 그 마음이 어땠을까라고 생각하니 내 마음이 무거웠다.
군중들은 12장 13절과 같이
12: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승리의 상징인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호산나 하며 즉 "도와주소서 구원하소서"라고 찬송을 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에 그들을 로마 제국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하며 이해하는 것을 아셨다.
어린 나귀를 타신 예수님을 그들이 왕으로 자신을 구원해 줄 메시아로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귀는 왕이 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윗 왕도 솔로몬에게 기름 붓고 다윗의 나귀에 솔로몬을 태우고 행차하게 했던 것이다.
말은 전쟁을 상징하지만 어린 나귀는 평화를 상징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왕이 행차할 때는 어린 나귀를 탔던 것이다.
제자들은 이 모든 일들을 그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다.
12:16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
여기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즉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에야 자신들의 구원을 위해 예수님이 보내심을 받은 것으로 이해했다.
요한복음에서 나타난 "영광"의 의미는 보내심을 받은 예수님이 보내심을 받은 자의 명령을 완수하는 것을 뜻한다.
예수님의 죽음 자체가 영광인 것이다.
예수님이 죽지 않으시면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
이 모든 과정을 읽으면서 죽기 위해 오신 예수님, 아무도 자기가 온 이유를 깨닫지 못하는 그 가운데도
묵묵히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신 예수님.
이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마리아가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한 것처럼 예수님의 마음을 깨닫고 아는 이 한 여인의 섬김을 보며
나도 그런 제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예수님의 기적을 보며 군중 가운데에 바리새인들에게 그 일을 알리는 사람들,
예수님의 옳음을 보고도 자신의 욕심을 위해 나사로라는 증거까지 없애려고 하는 사람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진실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통해
나의 유익을 위해 옳고 그름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 있는가를 돌아 보게 했다.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많은 캐릭터를 보며 나도 모든 캐릭터들을 가지며 살아감을 뉘우쳤다.
정말 제대로 된 제자의 삶은 오직 예수님께만 집중하는 것임을 결단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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