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말씀 묵상

사도행전 1장에서 5장 묵상

차작가 2023. 10. 10. 12:05

사도행전의 저자는 누가복음의 저자인 누가이다,

사도행전은 인칭의 주의하여 읽다 보면 어느 부분에서 인칭이 변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3인칭으로 전개되다가 우리라는 1인칭 복수로 바뀌어 풀어가는 곳이 나오는데 이 부분들은 저자인 누가가 사도바울의 선교 여행에 직접 참여했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서 다른 곳과 구분하여 1인칭 복수인 우리라고 사용한 것이다.

이런 구절들이 사도행전 전체에서 97절이 나온다.

골로새서 4장 14절에 의사인 누가 와 동일한 인물로 알려져 있는 누가는

이 책의 저저일 뿐 아니라 사형집행을 앞둔 바울을 끝까지 지켜준 사람이었다.

사도행전은 누가가 누가복음에서 밝혔듯 자세히 미루어 살피는 노력을 통해 얻은 자료들과 자신의 선교 여행 기록을 더해 엮은 것이다.

무엇보다도 사도행전은 기독교의 중심인 예루살렘에서 이방인 세계의 중심인 로마로

성령의 주권적 역사와 인도하심이 이동함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기독교를 일종의 유대주의의 완성이라고 반복적으로 이야기 함으로 새로 시작하는 기독교의 합법성을 주장한다.

이를 통해 애당초 부당하게 처형당한 예수님이시기에 그분을 쫓는다는 이유로 박해받는다는 것은 정당치 않다는 것을 주장하는 의도가 들어있다.

또한 기독교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을 불식시키고 데오빌로와 같은 고위층 기독교 초신자나 구도자들로 하여금

기독교를 호의적으로 인식하도록 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또한 성장과 확산을 경험하고 있는 교회를 향한 메시지도 있다.

인간의 어떠한 핍박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계획은 무산될 수 없으며 이 땅의 시작된 교회는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을 확신하게 한다.

사도행전에 나타나 있는 자신감은 이것을 읽는 모두에게 미래를 향한 희망과 기대를 갖게 한다.

사도행전에서 제일 유명한 말씀은 1장 8 절이다.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사도행전의 핵심 구절이다.

어떤 상황에도 복음은 성공할 것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적으로 사도행전의 말씀 중에 여러 번 반복되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느니라"등이 반복해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사도행전에서는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을 대비하여 다룬다.

사도행전 13장을 기점으로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 전반부는 베드로가 후반부는 바울의 역할이 강조되어 있다.

유사한 사건이나 기적을 대비하여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것을 통해 이방인의 사도이자 교회를 확장한 사도 바울의 권위를 베드로의 권위와 대등함을 보여 주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

또 사도행전은 결론이 맺어지지 않은 상태로 급격히 끝난다는 특징이 있다.

바울이 2년 동안 로마 감옥에 갇힌 채 황제 가이사 앞에서 재판받기를 기다리는 모습이 마지막 장면이다.

누가는 사도바울이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설명하지 않고 있다.

신학적인 면에서 보면 이것은 당시 초대교회에서 시작된 세계 복음화를 후대 교회가 이어 완성시켜야 한다는 의도를 볼 수 있다.

즉 성령의 역사는 지속되며 그것을 믿는 사람들을 통해 사도행전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사도행전을 계속 이어 써 나가야 하는 것이다.

(성경 에센스 사도행전 편 김윤희 교수 참조)

누가가 누가복음을 쓴 이후 사도행전을 이어서 쓴 글로 보인다.

사도행전 1장 1절에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을 보면 유추할 수 있다,

그래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한 책으로 본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뒤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 주셨다.

그 성령은 구약에서 등장하는 성령과 다르게 잠시 머물다가 떠나가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믿는 우리에게 내주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은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일을 알게 하신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부분적으로 예수님을 알았지만 성령님을 통해 예수님에 대해 명확히 알게 되었다.

성령님의 역할 중의 하나는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보면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회개를 통해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빚고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통해 서로 성령 안에 교제하게 되고 기도에 힘쓰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47절과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

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그들이 자신이 가진 소유를 나누고 자신의 것을 자신의 것이 아님을 깨닫고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했다.

그 소문은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게 되었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 대해 좋은 소문이 나자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는 사람을 걷게 하자 그는 성전으로 뛰어 들어가서 하나님을 찬송했다.

모든 백성들이 그가 태어날 때부터 못 걷는 사람이었지만 예수의 이름으로 걷고 찬송하는 것을 보고 모두 놀랍게 여겼다.

그러자 베드로는 닭이 세 번 울기 전에 예수님을 부인한 그 모습은 사라지고 성령이 함께 하심으로 담대하게 3장 15-16절과 같이 말한다.

3: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3: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이 말을 듣는 청중들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준 사람들이다.

그들은 모르고 범죄 한 것이었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거부하고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쳤던 사람들이다.

즉 살인자인 것이다.

그들에게 그들이 저지른 일들을 베드로는 담대히 이야기하고 자신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님이 이 사람을 낫게 하였음을 선포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알지 못하여 범죄 하였을지라도 19-20절과 같이

3: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3:20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즉 그들이 회개하면 용서함을 받고 새롭게 되며 예수님이 너희를 위해 예정하신 성령님을 보내 주신다는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이 성령님의 역사하심이다.

베드로가 변한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자 성령님이 그들 안에 내주하시고 그들은 자신의 것을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고

또 하나님을 찬미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게 되었다.

이 모든 변화가 상령님이 하신 일이며 예수님이 단 한 번의 죽음으로 전 인류를 향한 구원의 계획이 완성된 것이다.

이 놀라운 사건들을 보며 이때는 되는 것이 왜 지금은 되지 않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왜 물질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지지 않는지 하나님을 찬양하면서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지 못하는 교회가 되었는지

왜 성전 미문에 앉은 앉은 뱅이의 손을 잡아 주지 못하는지에 마음이 아팠다.

진정한 회개의 삶은 물질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 것이고 도움이 필요한 자에게 손을 내미는 것인데

그런 변화가 없는 성령 충만함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받은 사람이라면 이런 표징이 나타나야 함을 말씀을 통해 생각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