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의 저자는 요한이라고 밝히지는 않지만 본서의 저자가 예수님의 제가 가운데 한 사람이고
최후의 만찬 때 예수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을 팔자가 누구냐고 질문한 자이며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로 자주 등장하는 그 자가 기록했다고 말하므로 사도 요한이 가장 유력한 저자임을 알려 준다.
초대 교회에 교부들도 세배대의 아들 사도 요한이 에베소에서 요한복음을 기록했다고 증거한다.
요한복음은 20장 30-31절에서
20:30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라고 쓴 목적을 분명히 말함으로써 다른 복음서와 차별이 된다.
즉,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믿고 우리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려고 기록한 복음서이다.
요한복음의 수신자는 유대인들이나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자들로 본다.
그렇게 보는 근거는 신약의 모든 책들 중에서 구약을 가장 폭넓게 가장 많이 암시하는 책이라는 점에서 볼 수 있다.
구약을 아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약의 의미를 새롭게 해 줌으로써 깨닫게 하고자 의도한 책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해석이다.
즉, 구약에 대한 지식이 많을 때 더 깊이 이해가 가능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이라고 부르는 다른 세 개의 복음서와는 여러모로 다르다.
공관복음에는 그분이 메시아라고 명확하게 표현하지 않았지만 요한복음은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서론부터 로고스라는 단어를 사용하여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며 창조자이시며
성육신하신 분이뎌 독생하신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신성에 대해서도 담대하고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등 거침없이 표현하는 예수님을 볼 수 있다.
특히 "내가 그 니라(who I am)"이라는 표현을 자주 볼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과 같은 동일한 표현이다.
이 표현은 당시 유대인들에게 굉장한 충격을 주었고 그들을 자극하는 표현이었다.
처음부터 예수그리스도가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심을 밝히고 그러한 관점에서 그분의 가르침을 이해하며
그분을 믿어 영생을 얻게 하려는 의도가 있다.
요한복음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1장에서 12장까지는 표적을 다루고 13장에서 21장까지는 영광의 책으로 구분한다.
요한복음은 보통 초심자들에게 읽기를 권한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그분을 믿고 영생을 얻기를 바라는 사도 요한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장에서 1-5절까지의 말씀은 마치 창세기 1장 1절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와 같은 말씀을 생각나게 한다.
1절에서 18절까지는 요한복음의 서론에 해당되는 말씀인데 1장만 읽어도 요한복음이 무엇을 말하려고 기록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처음부터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죄를 위해 빛으로 오신 분이심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1: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예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 우리에게 빛으로 오셨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 빛을 깨닫지 못했다.
이 말씀을 읽으며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 내가 아는 사람들이 생각이 나서 마음이 아팠다.
그가 세상에 오셨는데도 그것도 자신이 창조하신 세상에 오셨는데 사람들이 그를 영접하지 않았다.
12절에 보면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요한은 서론부터 강력하게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감사하게도 우리의 공로가 아니고 사람의 뜻으로도 아니며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라고 13절에 기록하고 있다.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이것은 바로 은혜이다.
1: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로라
나에게 이런 은혜를 허락하심에 감사를 드린다.
예수님은 그다음에 성전을 깨끗게 하셨다.
유대인들은 유월절이 되면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기 위해 번제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모였다.
유월절은 출애굽 당시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 죽음을 면하게 됨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흩어져 있던 많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먼 거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와야 했기 때문에 먼 길에서 양을 데리고 오는 것이 힘들어서
성전 주위에 있는 외부 경내에서 양을 구입해서 성전으로 데리고 왔다.
요한복음을 기록할 당시에는 헤롯 성전은 이미 파괴되고 없었다.
주후 70년경에 예루살렘이 로마군에게 함락되고 성전은 이미 불에 타고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요한이 요한복음을 기록한 시기는 주후 85년에서 90년 경에 기록한 것으로 추측하기 때문에 다른 복음서들 중에 가장 마지막으로 기록되었다.
성전이 파괴되고 그들은 회당에서 모였다.
즉, 성전에 제사장이 있다면 회당에서는 랍비가 그 기능을 대체했다.
요한이 이미 파괴되어 있던 성전을 이야기 속으로 가져온 의도는 예수님이 참된 성전이심을 알려 주기 위한 것이다.
성전 정화 사건을 통해 진정한 성전이 무엇인지를 보여 줌으로써 새로운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임을 명확하게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의도적으로 과거의 성전 정화 사건을 가져온 것이다.
그 당시 대제사장들은 성 전 외부에서 구입하던 번제 드릴 양들을 돈을 목적으로 성전으로 가져왔다.
성전에서 상행위를 가능하도록 만든 가야바, 성전에 자리를 내어 주고 자릿세를 받고 폭리를 취한 것뿐만 아니라 제사장들은 성전 세도 받았다.
1년 동안 성인 남자가 내야 할 성전세가 반세겔이었다.
그 시대에 통용되었던 화폐를 세겔로 바꾸어 성전세를 내야 했기 때문에 환전을 통한 수수료가 발생했으므로 그 수입은 어마어마했다.
가장 거룩해야 하는 곳이 가장 타락하게 변하게 된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거룩한 분노를 쏟아내셨다.
"내 아버지 집으로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 분노와 함께 예수심은 자신이 누구이신지를 말씀하신 것이다.
자신들의 잘못을 문제 삼는 예수님을 향해 그들도 분노했다.
그것을 목격한 니고데모는 예수님에 대해 궁금해했다.
그래서 바리새인 중에 지도자였던 그는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갔다.
그도 성전에서 행해지던 행위들이 옳지 않음을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니고데모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라고 고백한다.
그를 향해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하나님 나라는 거듭나야 볼 수 있는 것이고
또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곳이고
성령으로 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고 말씀하신다.
3: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바람이 불 때 소리는 듣지만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
성령도 그러하므로 본 것과 아는 것을 말하지만 성령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것을 깨닫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니고데모가 궁금했지만 하나님 나라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을 나는 이것이 무슨 말인지를 안다.
이것이 나에게는 표적이고 기적이다.
1장 5절에 보면
1: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빛이 어둠에 비추면 당연히 빛은 어둠을 밝히게 되어있다.
그런데 어둠이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는 말과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지 못하는 니고데모는 똑같은 것이다.
나는 오늘 말씀 가운데에게 내가 어둠에서 빛을 인지할 수 있다는 것도 기적이고 거듭남에 대해 이해를 한다는 것도 기적이고
성령에 대한 것을 이해하는 것도 기적이며 예수님의 증언을 받은 것도 기적임을 참으로 감사했다.
이것이 나에게 일어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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