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6장에서 20장까지 묵상했다.
그중에 16장에 나오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자 한다.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누가복음 15장에서 17장까지 하나의 스토리라는 개념으로 접근을 해야 한다.
즉, 하나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뜻이다.
15장에서 등장인물은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등장한다.
즉, 예수님 앞에 사람들이 모여오는데 그중에 모든 세리와 죄인들과 또 16장에 등장하는 바리새인들과 물론 제자들도 함께 있다.
즉, 예수님은 그의 말씀을 듣고자 모인 다양한 청중 앞에 서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16장 14절에 보면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비웃는 자들이다.
그리고 중요한 포인트는 16장에 나오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는
특히 그 자리 청중 가운데 앉아 있는 바리새인들을 향한 메시지임을 생각하며 읽어야 한다.
곧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의 대상은 바리새인들임을 바로 알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천국과 지옥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앞장의 청지기의 지혜를 보면 청지기는 자신이 해고당할 것을 알고 주인의 돈을 빌려 간 사람들에게 찾아가 주인의 동의 없이 빚을 탕감해 준다. 그 사실을 알고 주인은 청지기를 지혜롭다고 칭찬한다.
주인은 자기의 재산을 동의 없이 손해를 끼친 청지기를 칭찬한 것을 독자인 우리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그 시대로 돌아가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주인은 불의한 재물로 이익을 얻어 부유하게 되었다.
율법을 어기고 이자를 받고 그것도 고리대금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돈을 착취해서 부자가 되었다.
기름은 50%, 말은 25%의 이자를 받아냈다.
그것을 잘 아는 청지기는 주인의 돈을 손해 보지 않는 선에서 그 이자를 탕감해 준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주인을 싫어했지만 주인의 이름으로 청지기가 탕감을 해 주자 마을에서는 주인을 칭송하게 되었다.
그래서 주인은 청지기가 지혜롭다고 칭찬한 것이다.
청지기가 지혜롭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주인의 돈을 사용하여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삼아
주인의 집에서 해고된 후에 삶을 예비했기 때문이고 또 그 문제를 통하여 주인의 마음도 얻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은
예수님이 부자가 바리새인임을 빗대에 말씀하시는 의도적인 메시지임을 알 수 있다.
그 당시 바리새인들은 부자의 대명사였다.
부자는 사회적 약자인 가난한 사람들을 돌봐야 하는 사회적 책임이 있었지만 바리새인들은 그 책임을 회피했다.
지금도 기복 신앙에서 그러한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지만 부자라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고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부자가 되어야만 했다.
고리대금을 받아서라도 자신의 주머니를 챙겨야만 했고 가난한 사람들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더 가난해질 수밖에 없었다.
즉, 바리새인들은 부자가 되기 위해 돌봐야 할 가난한 사람들의 돈을 강탈했다.
옳지 않은 청지기의 비유를 듣고 비웃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예수님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다.
주 안에서 우리가 해야 될 일은 우리 주변에 있는 약한 자들을 돌봐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부자이다.
부자와 가난한 자는 물질로 판단되는 게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책임은 이 땅을 영적으로 부유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들은 율법을 가지고 오히려 더 많은 가난한 자들을 만들어냈다.
많은 것을 받았으나 하나님을 저버린 것이다.
고린도 후서 8장 9절에 보면
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써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스스로 가난하게 되셔서 우리를 부유하게 만드셨다.
이 구원의 진리는 율법에 이미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율법을 행하지 않으므로 영적 간음한 상태가 된 것이다.
16장 21절에 보면
16:21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한데를 핥더라
헌데 투성이로 된 나사로가 대문 앞에 버려진 채 있다.
부자의 상에서 떨어진 음식으로 배를 채울 수도 없었다.
개들은 그의 아픔을 알고 사랑으로 핥아 주는데 부자는 그런 자비함도 없었다.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들은 강아지가 핥아 주는 의미를 잘 알아서 강아지가 나사로를 괴롭히려는 게 아니라
측은히 여겨서 핥아 주는 것이다.
부자와 나사로는 죽어서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부자는 음부에서 서로를 바라본다.
이것은 비유로 설명한 것이므로 천국과 지옥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천국과 지옥은 서로 바라볼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즉, 부자로 표현되는 바리새인들을 향한 심판을 말씀하고 계신다.
심판을 당할 때에 후회하고 자신이 다시 돌아가 형제에게 이 일을 중언하게 해달라고 말하지만 예수님은 29절과 같이 말씀하신다.
16:29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여기에 "모세와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뜻한다.
이미 그들은 율법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그들을 비판하고 계신 것이다.
그들은 쟁취한 돈으로 자색 옷을 입고 권력을 누리고 권위를 가졌다.
그 권위로 사회적 약자인 나사로를 돌보지 않았을뿐더러 가난한 사람들의 헐세를 뜯어낸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런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는 것이다.
사람의 생명을 귀중히 여기는 것들이 그들에게는 없었다.
앞 장에서 말씀하신 불의한 청지기와 그들을 동일시하는 예수님을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을 향한 메시지임을 알았을 것이다.
14절에 보면
16:14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돈을 좋아하는 것은 바리새인들을 뜻한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우상이다. 이것이 바로 영적 간음인 것이다.
호세아 4장 12절에 보면
4:12 내 백성이 나무에 묻고 그 막대기는 그들에게 고하나니 이는 그들이 음란한 마음에 미혹되어 하나님을 버리고 음행하였음이니라
그들의 상태는 하나님을 버리고 음행한 상태이다.
그들은 잘못된 율법을 적용해서 그들의 주머니를 챙기고 그들은 율법을 어겼고 돈을 사랑함으로 하나님 앞에 음행하는 죄를 지었다.
자신의 정욕을 위해 율법 속에서 이혼의 구실을 만들어 아내를 버렸고 가장 돌봄이 필요한 가난한 자, 여성들도 돌보지 않았다.
그들은 스스로 옳다고 여겼고 높임 받기를 좋아했다.
그들을 향해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를 전하신 것이다.
그동안 항상 어려웠던 이 말씀이 오늘은 명쾌하게 이해가 되어서 너무 행복했다.
종일 이 말씀을 몇 번씩이나 반복해서 듣고 묵상하며 위로도 받고 한편으로는 나는 바리새인같이 율법을 이용하여
영적으로 간음하지는 않았는지를 돌아 보게 하셨다.
그리고 나에게 깨달을 수 있는 마음을 주시고 그들에게 율법을 주신 것처럼 나에게 말씀을 주셔서 늘 나의 영적 상태를 점검하게 하시는
그 놀라운 사랑에 감사드렸다.
무엇보다도 진정한 부자, 영적 부유함의 삶을 살기를 기도드린다.
(CBS 성서학당 누가복음 43편을 꼭 청강하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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