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 이에 빌라도가 채찍질하더라
2절 군인들이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3절 앞에 가서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손으로 때리더라
4절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
1. 1절 배경: 예수님이 예루살렘 입성 직전에 여리고 가셨을 때이다. 여리고를 들어가 지나가실 때 어떤 한 사람을 만나는데 삭개오라는 사람이었다.
2. 2절
1) 삭개오는 세리장이었다. 세리장이란 세리(마태 같은 사람)들을 고용해서 고용된 세리들로 하여금 세금을 거두도록 하는 사람이었다. 이런 위치로 보면 그가 고용한 세리들을 두고 있었기에 그가 직접 부정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 8절에 보면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라는 표현에 보면 짐작이 간다.
삭개오는 유대인이지만 유대를 식민지화해서 통치하는 로마에게 세금을 바치는 로마의 세관원이었기에 배신자로 낙인찍혀 유대인들로부터 미움받고 유대 사회로부터 따돌림을 받고 있는 사람이었다. (옛날 일제 시절 때 일본을 위해서 일하는 관리라고 생각해 보자. 배신자 취급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게다가 세금을 거둘 때 로마에 바치는 것보다 더 많이 징수했으므로 세리들은 동족 유대인들로부터 원망이 자자했던 사람들이었다. 요즘으로 보면 한국에서 영세 상인들을 착취해서 돈을 뜯어내는 조직폭력배와 비슷할 것이다.
3. 3절
1) 이렇게 따돌림받던 삭개오에게 들려오는 소식은 예수님이 여리고를 지나가신다는 것이었다.
2) 어떤 소식을 들었을까? 바로 앞장의 맹인이 치료함을 받았고 이런 치료함과 그의 가르침에 다한 소문이 여리고에 퍼졌을 것이다. 지금 이 시점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입성을 바로 앞둔 시점이므로 삭개오는 지난 3년간 예수님에 대한 많은 소문을 들었을 것이다. 진정 예수님이 오실 메시아이며 죄인을 구원하실 구주이신지를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고자 했을 것이고 삭개오 자신도 예수님이 과연 어떤 분이신가를 보고자 하는 마음이 컸던 것으로 짐작된다.
3) 그런데 예수님을 보고자 하는데 2가지의 장애물이 있었다. 하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어떻게 가까이 가서 볼 수 없었고 또 사람들 틈을 비집고 가려면 사람들과 부딪혀야 하고 다들 알아보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키가 작은 것이었다. 예수님 당시의 키 기준으로 보면 아마도 5피트 이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4) 삭개오는 부자지만 아마 자존감이 많이 낮은 사람이었다. 같은 동족끼리도 어울리지 못하고 키도 작고. 돈은 있지만 친구도 없고 아마도 삶 자체가 공허했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라는 분은 오히려 자기와 같은 사람들과 잘 어울린다는 소식을 들었으며 세리 마태를 부르신 것을 알고서는 어떻게 해서든 예수님을 만나려고 했을 것이다. 이젠 삭개오에겐 예수님이 유일한 희망이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5) 그래서 예수님을 어떻게든지 보고자 하는 삭개오에겐 사람이 많은 것과 키가 작은 것은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다른 방법을 찾았는데 그것은 주위에 있는 돌 무화과나무에 올라가는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먼저 구원은 예수님을 갈망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4. 4절:
1) 삭개오는 미리 예수님보다 앞서 달려가서 돌 무화과나무에 올라가서 기다렸다.
2) 돌 무화과나무(올라가기 쉬었음)에 올라가는 삭개오의 행동은 마치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을 생각나게 한다. 체면이고 뭐고 생각하지 않았다. 얼마나 예수님을 보고 싶었으면 그랬을까 생각된다.
3) 나무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마침 예수님이 그 나무 근처로 지나가시는 것이었다. 지형을 잘 모르지만 예수님이 비켜 갈 수도 있는데 마침 그 나무 곁으로 지나가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5. 5절:
1) 예수님이 삭개오가 있는 나무 가까이 오셔서는 다른 사람도 아닌 삭개오를 쳐다보시고 ‘삭개오야’하고 이름을 부르시는 것이었다.
2) 예수님은 이미 삭개오의 이름을 알고 계셨다. 삭개오 자신이 그렇게 만나보고 싶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알아주는 것만 해도 정말 기뻤을 것이다. 많은 부분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의 생각이 나 마음을 이미 알고 계셨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3) 그 많은 사람 중에 왜 삭개오를 불렀을까? 삭개오는 간절히 예수님을 찾았기 때문이다. 나무 위로 올라가면 누구인지 알려질게 뻔한데도 오직 예수님을 보기 위한 열정이 그로 하여금 주위 사람들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무 위에 올라가도록 만들었다.
4) 예수님은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라고 하셨다.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는 말은 너를 죄인 취급하지 않고 친구처럼 같은 테이블에서 먹겠다는 의미이다.
삭개오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죄인으로 취급하면서 ‘삭개오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질책을 하셔도 할 말이 없을 텐데 예수님은 절대 그런 질책을 하시지 않고 너와 같이 친구처럼 밥 먹고 싶구나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야고보는 야고보서 1장 5절에서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우리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셔서 죄를 미워하시지만 우리를 꾸짖지는 아니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언제나 품어 주시고 용서해 주시는 분!
그분이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시다.
4절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 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 이러라
5절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자 쳐다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절 뭇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절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 등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6. 6절:
이런 예수님의 요청을 받고 삭개오는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예수님을 영접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구원은 두 번째 단계는 예수님이 먼저 부르시고 그 초청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7. 7절
1) 예수님의 행동에 사람들은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하며 수군거렸다.
2) 이런 수근 거림에 대한 답변은
(누가복음 5: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에서 찾을 수 있다.
8. 8절
삭개오가 나무에서 내려와서 말한 내용이 8 절이다
1) ‘서서’ 주께 여짜오되 라는 의미는 즉시, 집에 들어와서 테이블에 앉기 전에 바로 말했다는 뜻이다.
2 ) 그러면서 삭개오는 예수님께 공개적으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라고 말한다.
3) 과거의 자신의 삶에 대해 회개하며 그 회개의 표시로 물질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쓰겠다는 선포를 했다.
4) 사실 이 말은 자신의 재산을 다 포기하겠다는 말이다. 일단 절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그 나머지 절반은 속여서 빼앗은 것에 대해 배상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5) 얼마나 의지가 있는가 살펴보면 율법에서 요구하는 것보다 훨씬 배상의 폭을 많이 잡았기 때문이다.
6) 예를 들어,
1) 출 22:4 도둑질한 것이 살아 그의 손에 있으면 소나 나귀나 양을 막론하고 갑절을 배상할지니라.
2) 레 6:4 그 훔친 것이나 착취한 것이나 맡은 것이나 잃은 물건을 주운 것이나 6:5 그 거짓 맹세한 모든 물건을 돌려보내되 곧 그 본래 물건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 돌려보낼 것이니
3) 민 5:7 그 지은 죄를 자복하고 그 죗값을 온전히 갚되 오분의 일을 더하여 그가 죄를 지었던 그 사람에게 돌려줄 것이요
4) 출 22:1 사람이 소나 양을 도둑질하여 잡거나 팔면 그는 소 한 마리에 소 다섯 마리로 갚고 양 한 마리에 양 네 마리로 갚을지니라.
삭개오는 마치 소나 양도둑으로 생각하고 배상을 하려고 했다.
7) 결국 이 결단은 자신의 재산을 다 포기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8) 삭개오의 이런 결단은 앞서 살펴 본 부자 청년과 같은 부자였지만 너무도 다른 반응을 보임을 볼 수 있다. 부자 청년은 영생을 얻기 위해 전 재산을 다 팔으라는 예수님의 권면에 근심하면서 돌아갔는데 삭개오는 예수님이 어떠한 요청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진심으로 회개하는 마음이 있으니까 자신의 전 재산을 다른 사람들에게 줄 수가 있었다.
9) 삭개오의 사건은 부자 청년을 보고 제자들이 한 말인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에 대해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보여 주고 부자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산증인이 된 것이다.
10) 삭개오의 이 말을 통해 무엇을 알 수 있을까?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진정한 회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회개는 반드시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9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절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9. 이런 삭개오의 회개의 결단에 예수님은 9절에서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라고 선포하셨다.
1) 그럼, 예수님이 사용하신 구원이란 무슨 뜻인지를 알아보자.
헬라어로 “Sozo”라 부르는 구원이란
i) 첫째, 죄 용서함을 받는 것을 말한다. 누가복음 7:50절 향유를 붓는 여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말씀하셨다. 그 여인이 죄 용서함을 받은 것이다. 삭개오도 죄 용서함을 체험했다는 것이다. 구원받은 사람은 죄가 용서받았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ii) 둘째는 씨 뿌리는 비유에서 알 수 있는데, 누가복음 8:12 보면 길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즉, 구원은 하나님 말씀을 잘 믿고 지킬 때 얻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구원의 증거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삭개오는 구원을 경험했다. 왜냐면 말씀되신 예수님을 만나니깐 그의 마음속에 선한 열매가 맺었기 때문이다.
즉 구원받은 사람은 선한 열매가 있어야 한다.
iii) 셋째, 구원은 치료하다는 뜻이 있다. 삭개오는 구원을 경험했다. 왜냐면 그는 물질을 소유하려는 욕심으로부터 이제는 물질을 주는 마음으로 완전히 변했기 때문이다.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이런 마음의 변화와 치료받음이 있어야 한다.
2) 행함으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만 진정한 구원은 진정한 회개로 말미암아 그 삶이 완전히 바꾸는 것을 말한다. 어둠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악에서 의로 바뀌는 그래서 구원은 급진적인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3) 계속해서 예수님은 삭개오를 가리켜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라고 말씀하신다. 예전에는 죄인 취급받아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진정으로 회개 함으로 진정한 영적 이스라엘이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10. 10절: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1) 잃어버린 자란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영생을 잃어버린 사람들, 멸망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2) 삭개오가 왜 잃어버린 자가 되었나?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어 버렸나? 자기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잃어버린 자가 된 것이다.
3) 예수님은 바로 이런 사람을 찾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서 그런 고통을 받으신 것이다. 이 십자가의 사랑을 믿을 때 우리는 진정한 구원을 얻게 됨을 믿는다. 구원받은 자로서 삭개오와 같은 진정한 회개의 열매를 우린 맺어야 한다.
줄거리 요약:
예수님이 예루살렘 입성 직전에 여리고에 가셨을 때였다.
이곳에서 세리장인 삭개오를 만나셨다. 삭개오는 유대인이지만 로마인들을 위해서 유대인들에게 세금을 거두어 로마에 바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유대인이지만 유대인들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당시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들은 삭개오는 예수님만이 오실 메시아이며 죄인을 구원하실 구주인 신지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키가 작은 삭개오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무화과나무 위에 올라가서 예수님을 보려 했다. 예수님이 가까이 오셔서 삭개오를 보고 "삭개오야" 하고 이름을 불러주셨다. 삭개오를 만나기 전에 이미 예수님은 삭개오를 알고 계셨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생각이 나 마음을 이미 알고 계셨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삭개오의 집에 머물겠다고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삭개오를 죄인 취급하며 삭개오를 경멸했지만 예수님은 죄인의 집에 머물며 친구처럼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시겠다는 의미였다. 왜냐면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며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셨기 때문이다. 삭개오는 예수님의 말씀에 나무에서 내려와 자신의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으며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곱절이나 갚겠다고 고백한다.
삭개오는 자신의 삶에 대해 회개하며 그 회개의 표시로 물질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쓰겠다는 선포를 했다.
삭개오는 예수님께 죄를 고백했고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선한 열매를 맺은 것이다. 진정한 회개로 그 삶이 완전히 바뀌었던 것이다.
결론
삭개오처럼 진심으로 예수님을 찾는 사람은 어떠한 반대나 어려움을 극복하게 되며 예수님을 찾기 위해 고난을 감수한다.
예수를 알기 원하고 예수님이 부르신 사람은 겸손히 부르심에 반응하며 즐거움으로 예수님을 영접한다. 삭개오는 그 자신이 이제는 진정으로 회심했음을 공적으로 선언한다. 삭개오는 바리새인처럼 그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통한 그의 믿음과 회개의 진실성을 보여 줄 만한 선한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이다.
삭개오는 이제는 행복한 사람으로 선언되었고 죄인으로부터 하나님을 가까이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했다. 그는 이제 죄로부터 구원을 얻었고 죄책감이나 죄의 힘으로부터 자유로워지게 되었다. 이제는 구원이 주는 많은 혜택을 받게 되었다. 예수님은 그의 집에 오셨고 그가 방문한 곳은 항상 구원을 가지고 다니셨다. 예수님은 삭개오처럼 이 땅에 잃어버린 자를 찾고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다. 예수님은 그를 찾지 않거나 요구하지 않는 사람도 찾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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