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위대한 대화

예수님과 가나안 여인과의 대화 - 마태복음 15장 21~29절 (마가복음 7장 24~30절)

차작가 2023. 10. 22. 11:03
  2020. 8. 18. 8:37

마태복음 15장 21~29절 ( 마가복음 7장 24~30절)

21절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 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22절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23절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24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25절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1. 예수님이 게넷 사레 지역(14장)에서 두로와 시돈(이방지역)으로 이동하실 때 일어난 일이다.

2. 한 여자가 예수님께 나와서 다음과 같이 소리를 지른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1) 이 여인은 유대인이 아닌 이방, 가나안 여인으로 막 7:26에서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고 기술되어 있다.

2) 절박한 심정으로 ‘자신을 불쌍히 여기소서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옵소서)’라고 간청하고 있다. 그 이유는 자신의 딸이 흉악한 귀신이 들렸기 때문이다. 귀신 들린 딸을 가진 부모의 심정이 느껴진다. 그녀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무슨 소리를 듣든 간에 그녀에게 있어서 유일한 희망은 오직 예수밖에 없었다.

3) 특이한 것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 9:27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새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하는 장면과 똑같이 예수님을 부른다.

4)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부르는 것은 예수님을 유대인들이 바라고 있는 메시아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5) 공교롭게도 본문 바로 앞 부분에"마태복음 15:2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 하나이다. "와 "마태복음 15:12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라고 하는 걸 보면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 걸 볼 수 있다. 그런 와중에 이방 여인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는 말이 나온 것이다.

6) 그럼, 이방 여인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고백이 예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할 것 같은데 이런 여인의 고백과 요청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은 전혀 뜻밖이다.

3. 23절: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1) 여인이여 당신은 나를 메시아라고 인정하는구나! 이런 반응도 없이 그저 침묵만 하고 계셨다.

2) 그런데 이 여인은 그런 기분이 나쁘거나 불평할 시간이 없다. 왜냐면 딸이 지금 귀신들려 죽게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라오면서 계속 소리 지른 것이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을 고쳐주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3) 사실 예수님이 한 마디 대꾸도 않은 것은 가나안 여인에 대한 1차 시험이었던 것이다. 이런 묵묵부답에도 그 여인은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께 매달릴 것인가? 아니면 포기할 것인가를 시험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4) 여기서 우리는 쉽게 포기하지 않는 믿음을 배워야 한다. 우리가 기도할 때 긴급한 기도 제목은 금방 들어 줄 것 같은 확신이 들다가도 답변이 바로 없거나 답변이 길어지면 대부분의 경우 포기하게 된다. 만일에 그 여인이 어느 정도 간청하다가 포기했더라면 딸이 낫는 것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가끔씩 우리의 더 나은 믿음의 진보를 위해서 침묵하실 때가 있다. 이럴 때 우리는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않아야 한다.

 

4. 이런 집요한 요청에 사실 못 참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었다.

그래서 그때 제자들이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라고 예수님께 부탁드리는 것이었다. 이 말은 "예수님. 제발 그 요구를 들어 주셔서 저 여자 어떻게 좀 보내십시오. 정말 시끄럽습니다."라는 의미이다. 여기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이 24절에 나온다.

5. 24절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1) 이 말을 잘못 들으면 인종 차별 발언으로 들을 수 있다. 이스라엘 집은 유대인을 말하고 다른 데는 이방인을 말하기 때문이다.

2)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가 있다. 하나님 나라의 메세지의 우선순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먼저 택하신 이유는 그들을 통해서 온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원하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 가라고 하신다. 우리가 하는 전도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그러나 아직 하나님을 모르는 잃어버린 영혼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전도이다.

3) 예수님도 그 짧은 공생애 시간 동안 가장 먼저 사역 대상은 유대인 될 수밖에 없었다. 예수님은 유대인 12제자만 남기고 가셨다. 그 나머지는 제자들, 사도들의 몫이었다.

6. 이런 예수님의 말씀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 여인은 25절처럼

1) 25절: 무릎을 꿇고 예수님께 저를 도와주소서라고 요청한다.

" 네. 잘 압니다. 당신은 유대인이므로 당신의 백성이 우선순위이죠. 당연하죠. 그런데 지금은 이방인인 저를 도와주십시오. 거라사 지방에 살던 귀신들린 자의 귀신을 쫓아 내신 것 같은 기적을 제 딸에게도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간청하는 것이다.

7. 그런데 가나안 여인의 이런 간절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26절처럼 다시 한번 그 여인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을 하신다.

1)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당시 유대인은 가나안 사람들을 포함하여 이방인들을 개 취급했으므로

(예수님의 그런 말씀은 당시 유대인들의 일반적인 정서를 반영한 말임.)

유대인들에게 줄 축복을 이방인들에게 주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는 말이다. 심하게 말하면 유대인은 고쳐 줄 수는 있어도 이방인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는 그 여인은 얼마나 마음이 안 좋았을까?

8. 가나안 여인은 이런 예수님의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고 27절처럼

1) 27절: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저를 뭐라고 부르던 상관없습니다. 그래도 개(pet, 강아지 표현이 더 맞음)들은 아이들과 함께 집에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먹다가 남은 것을 먹을 수도 있고 아니면 주인이 개들을 따로 먹이를 주실 수 있기 때문에 집 안에 있기만 한다면 저는 개 취급을 받아도 상관없습니다.라고 말한다.

2) 그 여인이 요구한 것은 자녀들의 빵이 아니라 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였다. 떡고물이었다. 자녀들이 빵을 먹다가 상에서 흘러 떨어진 그 부스러기조차도 상 곁에 있는 강아지를 충분히 채워 줄 수 있는 식탁의 풍성함을 알았던 것이다. 그 식탁은 바로 예수님이 통치하시는 이스라엘을 말하는 것임을 알았던 것이다.

3)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너무도 위대해서 예수님의 빵 부스러기도 그녀의 요구를 충분히 채워 줄 수 있음을 확신했다. 복음의 위대함은 이것이다. 하나님의 풍성함이 조금만 넘쳐도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8. 27절 4) 그 여인은 예수님에 대해서 확실한 믿음이 있었다. 예수님은 단순한 어떤 일에 있어서 대가의 수준을 넘어서 예수님이야말로 오실 메시아이고 진정한 구원자가 되신다는 것을 확실히 믿었다.

5) 이런 확실한 믿음 때문에 그 여인은 예수님의 그 어떠한 시험에도 능히 이길 수가 있었던 것이다.

6) 또 다른 측면의 믿음은 이스라엘의 넘치는 밥상에서 흘러 나는 부스러기로도 이 세상을 만족시킬 수 있다고 믿는 확신이었다.

9. 가나안 여인의 지혜로운 대답에 예수님은 28절처럼

1)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니라’라고 말씀하신다.

드디어 예수님의 시험이 끝났음을 알리시는 말씀이다. 네 소원대로 된다는 것은 귀신들린 네 딸이 나았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직접 치료하지 않았는데도 딸이 나았다. 그녀는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음으로 그녀가 원했던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이것은 진정한 믿음은 기적을 일으킨 다는 의미이다.

2) 왜 우리 삶 가운데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 진정한 믿음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이 가나안 여인과 달리 쉽게 포기해 버리든지 아니면 나 자신의 생각으로 하나님과 예수님의 능력을 제한 시켜 버리기 때문에 우리 삶 가운데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10. 그런 면에서 오늘 본문은 머리로만 예수를 믿지 마음과 가슴으로 믿지 않는 우리에게 경종의 메시지가 된다.

 

예수님과 가나안 여인의 대화 요약:

예수님이 게넷사레 지역에서 두로와 시돈으로 이동하실 때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을 보고 "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고 소리치며 소동을 부렸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이 여인은 메시아로 인정하는 고백을 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인의 외침에 침묵하셨다.

그러나 여인은 포기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라는 모욕적인 답변을 하신다.

여인은 그런 예수님께 "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말하며 끝까지 간청 드린다.

여인의 대답은 예수님이야말로 오실 메시아이시고 진정한 구원자가 되신다는 것을 확실히 믿고 고백하는 말이었다.

예수님 은 여인의 고백에 "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고 하셨고 그 여인의 딸은 그 때로부터 나았다.

이것은 진정한 믿음은 기적을 일으킨다는 의미이다. 만약 가나안 여인이 쉽게 포기해 버렸다면 그녀의 딸이 낫는 기적을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머리로만 예수님을 믿지 마음과 가슴으로 믿지 않는다면 이 여인과 같은 기적을 경험할 수 없을 거라는 경종의 메시지이다.

결론

이 대화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예수님은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통해 유대인도 참 믿음이 무엇임을 깨달길 원하셨다.

예수님은 가나안 여인의 믿음이 얼마나 큰가를 이미 알고 계셨다.

그래서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그곳에 모인 유대인들에게 보이시기 위해서 몇 가지 시험을 하셨고 그 여인은 그 모든 시험을 잘 통과하여 믿음에 대한 보상으로 그녀의 딸이 나음을 입었다.

이 말씀을 통해 진정한 믿음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과 진정한 믿음은 반드시 보상을 받는다는 것을 우린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