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위대한 대화

예수님과 부자 청년의 대화 3편 - 누가복음 18장 18~30절(마무리편)

차작가 2023. 10. 22. 10:45

예수님과 위대한 대화 1-부자 청년(누가복음 18장 18~30절)

(누가복음 18장 28~30절)

28절 베드로가 여짜오되 보옵소서 우리가 우리의 것을 다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29절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30절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11. 28절에서 제자들은 부자 청년이 하지 못했던 모든 것을 떠나 주님을 따른 상태였기 때문에 베드로는 자신 있게 주님을 따랐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30절에서처럼 하늘나라에서 그들의 포기에 따른 상급을 약속하신다.

12. 부자 청년은 그의 재물이 포기하는 순간 소멸될 줄 알았지만 결코 소멸되지 않고 오히려 천국에서 귀한 보물로 다시 되돌려 온다는 것을 알지 못했으며 예수님의 그 약속을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에 영생을 소유하지 못했다.

분명한 것은 믿는 자들에겐 구원이 약속되어 있지만 그들의 이 땅에서의 수고에 따라 상급이 있다는 것이다.

본문 요약:

예수님과 제자들이 한 지역(베리에 아(perea) 지역)을 여행하고 계실 때였다.

한 청년이 예수님께 와서 무릎을 꿇고 질문을 한다. 아주 잘 차려입은 걸로 보아 부자임이 분명했고 누가복음에서는 관원(ruler)이라고 기록한 것을 보면 그 청년은 유대교 회당의 존경받는 지도자 중에 한 사람(산헤드린 멤버 중의 한 사람)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예수님과 같이 있던 제자들은 왜 이런 지도자급 인사가 예수님께 왔을까 하고 궁금해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청년이 예수님께 드린 첫 질문은“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였다.

예수님을 선한 선생님이라고 말한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왜냐면 당시에 선하다는 표현은 존경받는 유대인 랍비에게 조차도 쓰지 않는 단어였으며 오직 하나님께만 쓰였을 정도로 아주 고귀한 단어였기 때문이다.

그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의 부자였고 권력과 명예를 함께 가진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선한 선생님 어찌하면 내가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하는 것을 보면 모든 걸 가지고 있는 그도 여전히 뭔가 부족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돈과 권력과 명예로도 채워 줄 수 없는 것은 바로 영생의 문제였다.

예수님은 이 청년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변해 주신다.

“네가 영생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청년이 다시 묻습니다.

어느 계명입니까? 예수님이 다시 말씀하신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라고 말씀하셨다.

이에 대해 그 청년은 자신 있는 태도로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 하니이까?”라고 예수님께 다시 질문을 한다. 그는 성공적으로 전부 지켰다고 생각했지만 성경은 아무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예수님은 교만하지 말라고 꾸짖을 법한데 꾸지람은커녕 오히려 그를 사랑하셨다는 표현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은 그 청년의 마음의 중심을 보셨던 것이다. 비록 하나님 보시기엔 부족하지만 그 나름대로 계명을 지키려고 무척 노력한 그 모습을 예수님은 여전히 사랑하셨다. 그는 신실했지만 자신의 방법으로 하나님께 다가가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그런 청년에게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이 청년이 자신의 선행을 의지하는 것을 그치고 영생을 위해서 하나님만 의지할 것을 갈망하셨던 것이다.

왜 예수님은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라고 했을까요? 왜 이런 아주 부담스러운 요구가 영생을 얻는 길이라고 했을까요?

이것에 대한 궁금점은 누가복음 9:23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라는 말씀으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먼저 자기 부인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란 자기의 욕심과 욕망 등을 날마다 십자가에 죽이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자신을 날마다 십자가에서 죽임으로써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을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 부자 청년에게 자신이 사랑하고 의지하는 그 재물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포기하길 원하시면서 동시에 자기를 부인하길 원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하기 위해선 포기가 선행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선 그것을 알기 원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그 어떠한 것도 포기할 줄 모르고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한마디로 말해서 영생을 얻으려면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같은 답변을 들은 그 청년 관원은 근심하며 돌아가 버린다.

재물은 그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것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의 내부에선 심한 갈등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영생을 얻긴 얻어야 하는데 재물을 포기하긴 싫은 것이었다.

그는 영생을 갈망했지만 정작 중요한 시점에서 그는 재물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부자 청년이 돌아가고 난 뒤 예수님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고 말씀하신다.

그러자 바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제자들과 같이 있던 유대인들이 심히 놀라운 표정으로 예수님께 묻는다. “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그 당시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에게 부의 축복을 주신다고 가르쳐 왔기 때문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증거가 바로 물질의 축복이었기 때문에 이런 물질의 축복을 받은 자는 당연히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요 구원받을 사람으로 생각했었는데 그들의 생각과는 반대로 부자들이 구원받기 어렵다고 하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아마도 제자들과 함께 있었던 유대인들에겐 절망적인 선포였을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에 당황하고 놀란 표정으로 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라고 구원의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고 말씀하신다. 부자건 가난한 사람이건 구원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하늘나라에서 그들의 포기에 따른 상급을 약속하신다.

 

결론:

부자 청년은 그의 재물이 포기하는 순간 소멸될 줄 알았다.

그러나 결코 소멸되지 않고 오히려 천국에서 귀한 보물로 다시 되돌려 온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예수님의 그 약속을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에 영생을 소유하지 못한 것이다.

분명한 것은 믿는 자들에겐 구원이 약속되어 있지만 그들의 이 땅에서의 수고에 따라 상급이 있다는 것이다.

내 안의 하나님 보다 사랑하는 모든 우상을 버리고 예수님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감으로 진정한 하늘나라를 소유하고 날마다 구원의 기쁨으로 살아가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