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가르침

예수님의 가르침 52: 하나님의 뜻을 행하면 - 요한복음 7장 15-19절

차작가 2023. 11. 13. 12:27

15절 유대인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16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17절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18절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19절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

본론 해석:

1.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유대인들의 의견과 예수님의 답변

본문을 보면 예수님이 명절 중간에 유대로 가서 성전에서 말씀을 가르치신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유대인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15절)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정식 교육을 받지 못한 예수님이 글을 아는 것에 대해 시비를 걸었다.(15절)

예수님은 아람 방언을 사용하셨는데 히브리어를 읽고 또 구약성경을 인용하시는 것에 대해 그들은 놀랐다.

말씀을 가르치는 예수님을 보고 유대인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기이할 정도로 탁월했는데 그들은 그 가르침의 내용에는 관심이 없고 어떻게 저 가난하고 미천한 목수가 히브리 성경을 읽고 설명을 하는가에 대한 것에만 관심을 갖고 놀라고 있다.

원래 유대인들의 언어는 히브리어였다. BC586년에 남 유대가 바벨론에게 망하고 70년간 그들이 바벨론 땅에 포로로 끌려갔었다. 그 70년 동안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언어인 히브리어를 잊고 바벨론의 언어인 아람어를 국어처럼 쓰게 되었다. 그래서 구약의 "다니엘서" 와 "에즈라서"라는 아람어로 쓰였다. 탈무드 역시 아람어로 쓰였다. 예수 시대에 예수와 그 제자들도 아람어를 쓴 것으로 추론하고 있으며, 그 이유는 당시 대중들이 아람어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님 당시에는 소수의 랍비들만이 히브리어를 읽고 쓸 수 있었다.

그런데 랍비 학교를 다닌 적도 없고 그를 지도해 준 스승도 없는데 예수님이 히브리어 성경을 읽으시고 강론을 하신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의 출신과 배경을 잘 알고 있었다. 예수님은 미가서의 예언대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지만(미 5:2) 그들은 예수님을 갈릴리 나사렛 출신으로 알고 있었다. 게다가 예수의 아비는 미천한 목수였고 예수 자신도 랍비교육 같은 정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무식한 집안의 무식한 자로 여겼다. 그런데 그러한 보잘것없는 예수가 히브리어 성경을 줄줄 읽고 그 성경을 강론하며 자신이 하늘의 떡이라 말하는 것이 못마땅했고 못 미더웠던 것이다. 이 15절에 유대인들의 대표적인 특징과 경향이 잘 나타나 있다. 그들은 예수님의 형제들처럼 사람의 영광과 세상적 자랑을 중요시하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다른 말로 불신자들이었기 때문에 겉모습과 배경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했다.

그러니까 정식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의 가르침을 믿을 수 없고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받아 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2. 이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다." 나의 background만 보고 판단 하는데 내 교훈은 내 background만 보고 판단 할게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누구 것이냐? 바로 나를 보내신 분의 것이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을 말씀하셨다.

즉 자신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았다는 것과 자신은 하나님의 교훈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교훈은 하나님 것이기 때문에 참되고 거짓이 없다는 의미이다.

세상은 배워야 알 수 있다. 지식이란 배웠을 때 충족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 역시 배움을 통해서 가지게 된다. 그러나 단 하나 예외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교훈이다. 하나님의 교훈만큼은 배워야 알 수 있는 지식의 차원이 아니다. 하나님의 교훈은 배워서 아는 것도 아니고, 우리의 지식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다'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즉 배움과는 상관이 없다. 예수님의 지식은 배움에서 나오는 교훈이 아니기 때문에 배웠느냐 배우지 못했느냐와는 상관이 없다.

3.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하고 배워야 할 것

사람들은 외적인 요소로 사람을 판단한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유대 정식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 가르침은 매력적이기는 하나 신뢰하지 못하고 받아 들일 수 없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사람을 외적인 요소로 판단을 자주 한다. 학력을 보고 판단한다. 재력을 보고 판단한다. 지위를 보고 판단한다. 어디 지역 출신인지를 보고 판단한다.

그러나 성도들 만큼은 사람들을 외적인 요소로 판단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먼저 우리들을 외모로 보고 판단 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특히 복음 사역에 있어서 외적인 요소는 중요하지 않다.

사도행전 4:13절 => 4:13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무디의 경우: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생명을 구원한 전도자는 무디이다. 미국 매사추세츠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를 크게 쓰신 이유를 일생 부흥 사역에 동역한 성령론자 토레이는 하나님께서 무디를 쓰신 이유 7가지를 말했는데 그 중 세 가지만 말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그의 순종을 들었다. “토레이 선생. 만일 하나님이 나에게 저 창문에서 뛰어 내리라고 명령 하신다면 나는 뛰어내릴 것입니다.” 그는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이 그에게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바로 해치웠다. 그는 완전히 솔직하게, 무조건 그리고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속해 있었다.

둘째는, 깊이 있고 실제적인 성경연구가라는 사실이다. 그는 평생 동안 매일 아침 4시에 일찍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일을 죽기까지 계속했던 성경학자이다. 초등학교 5년 밖에 공부하지 못했고 구두 판매를 하는 영업사원에 불과한 그가 그렇게도 많은 청중을 이끈 것은 그의 성경에 대한 완전한 지식과 실제적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는, 위로부터 능력을 충만히 받았다.

복음 전파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성령 하나님과의 교통이다.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서 증거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복음을 많이 배운 자에게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면 그 사람의 배움의 수준으로 복음을 판단해서는 안된다.

예수님의 교훈이 왜 유대 지도자들의 마음을 찌르는 권위가 있었을까? 바로 하나님의 교훈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고 항상 하나님과 교통하시기 때문에 그 가르침에는 능력이 있다. 우리도 예수님과 항상 교통하고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실 때 우리가 전하는 복음에는 능력이 나타날 것이다.

4. 가르침이 하나님의 것인지 사람의 것인지 구별 못하는 이유?

예수님께서 자신의 가르침이 하나님께로 부터 왔다고 선포하시자 (성경엔 기록되지 않았지만) 그 말을 들은 유대인들은 분명 놀랬을 것이고 신성 모독을 하는 예수를 어떻게 하면 잡아 죽일까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 자체를 믿지 않으려고 했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의 가르침이 하나님께로 부터 왔는지 아니면 자신의 생각에서 왔는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을 말해 주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고 하면’이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고 마음을 굳게 먹으면 예수님의 가르침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하나님께로 부터 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그 말은 곧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고 있음을 말씀하고 있다.

그 한 예가 19절에 나온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으로 부터 모세를 통해 율법을 받았다.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가야 할 지침이었다. 그 율법에는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와 하나님의 뜻이 잘 설명되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유대인들이 그 율법을 지키지 않는 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불순종했다. 이러한 잘못을 지적하시는 예수님을 유대인들은 결국엔 죽이려고 했다.

사실 예수님의 지적은 잘못된 것이 없었다. 한 예로 안식일에 대한 지적을 보면, 바리새인들과 예수님이 가장 많이 부딪힌 부분도 안식일에 관한 부분이었다. 사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마음 먹은 것도 예수님이 안식일 규정을 어기고 안식일의 주인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말함으로써 하나님을 모독했기 때문이다. 마 12장에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고 있을 때 마침 밀밭을 지나고 있었는데 그날이 곧 안식일이었다. 제자들이 밀밭을 지날 때 마침 배가 고파서 이삭을 잘라서 먹게 되었다. 이삭을 잘라 먹은 것, 즉 손으로 비비고, 입으로 불어서, 알맹이를 씹어먹는 행위 자체가 노동으로 간주되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출 20:8-11말씀에 위배된다고 생각했다. 예수님은 거룩을 지키기 위해 금지사항들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역사적 사실을 거론하셨다. 그들의 위대한 왕인 다윗에 관한 이야기를 이야기 하셨다. 삼상 21장에 보면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놉에 있는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간다. 아히멜렉은 제사장만 먹게 되어 있는 진설병을 준다.

하나님은 다윗을 질책하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그는 부당하게 사울에게 쫓김을 당하고 먹을 것이 없어서 배고팠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규율보다는 자비를 더 우선시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만약 다윗이 정상적으로 대우를 받게 된 위치에서 이런 행동을 했다면 아마 질책하셨을 것이다. 막 2:27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율법의 근본 정신을 무시하고 형식적인 것만을 중요시 하는 유대인들의 불신앙의 모습을 지적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마 7:21절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셨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 그럼, 천국 백성은 누구일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받은 것 자체만으로도 천국 백성으로 생각했고 율법을 지킴으로 천국에 간 줄 알았는데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천국에 간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우리 가운데서도 혹시 내가 교회 예배에 정기적으로 참여 하니까 또는 교회 등록해서 정식 멤버니까 천국에 가겠지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한다.

그럼,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 예를 들어, 부모님의 말씀 대로 행한다는 것은 부모님의 마음을 알고 그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는 것이다. 그럼,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은 무엇일까?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그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가 바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 들이지 않고 무시하게 되고 겉모습만 보고 함부로 판단하게 된다.

5. 불순종하는 사람은 자기의 영광만 취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는 결국엔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자신만이 중심이 되고 자신만이 드러나기를 원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 보다는 오직 자기 영광만을 구하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예수님은 마 7:22-23에서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큰 능력을 행했던 자들이 주여 주여 하면서 소리쳐도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단호히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그들이 했던 일은 하나님을 위해 한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했기 때문이다. 자기가 주인이 되어서 자기가 영광을 이미 받아 버렸다. 하나님의 뜻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이다.

6. Historia Salutis

우리도 당시 유대인들 처럼 사람을 외모로 함부로 판단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보다는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기 보다는 자신만의 영광을 위해 살던 죄인이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죄악 가운데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예수님을 이 땅에 사람의 몸으로 보내셔서 죄인 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고 부활시킴으로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셨다. 예수님은 이런 하나님의 계획에 항상 순종하셨고 예수님의 순종으로 하나님의 계획들이 다 이루어졌다.

예수님의 삶 자체는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시는 삶이었고 하나님의 영광만을 드러내시는 삶이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라고 즉,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고.

7. Ordo Salutis (그럼, 어떻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수 있을까?)

잘 알다시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은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1. 해답은 예수님에게서 찾을 수 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나님의 뜻 대로 행하고 하나님께 순종하실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과 교통하시고 하나님과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2. 예수님이 하나님과 함께 하시므로 순종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수 있고 순종할 수 있다.

3. 예수님과 함께 하는 성도들은 자기 영광을 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드러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성도가 된다. 이것이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참된 신앙이다.

4. 예수님과 함께 함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그 뜻을 행해야 한다. 그러면 다른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을 것이고 참된 진리가 무엇인지를 바르게 분별하게 된다. 그리고 자기 영광 보다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