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묵상

성령의 권능을 받아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라 - 사도행전 1장 6-8절

차작가 2023. 11. 30. 12:13

6절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하니

7절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 되리라 하시니라

본문 해석:

1. 하나님을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

한자성어 중에 ‘아전인수’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아전인수(我田引水)’는 직역하면 ‘제 논에 물 대기’로, 남이 열심히 채워 놓은 논의 물을 편안히 훔치는 행위를 말한다. 즉, ‘자기에게만 이롭게 되도록 생각하거나 행동함’을 뜻하는 말이다.

사람은 항상 자기 중심에 사로잡혀 산다. 똑같은 사건을 두고 해석이 다르다. 자기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기 생각에 갇히면 어떤 말을 해도 못 알아 들을 때가 있다. 이렇게 자기 생각에만 갇혀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항상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한다.

오늘 본문이 바로 그런 상황을 대변하고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승천하시기 전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가르치셨다. (행 1:3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그리고 이런 하나님 나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하셨다. (1:5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그런데 이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의 반응은 예수님의 생각과 달랐다. 6절(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에서 제자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이 왕이 되셔서 이스라엘이 로마로부터 해방되고 자유를 얻게 되어 예전에 로마가 지배하기 전의 모습으로 회복이 되는 것이 하나님 나라가 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부활 때문이다. 즉,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이스라엘의 회복과 연관 지어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메시아로서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해방시키고 자유를 얻게 하는 그 날이 바로 이 때인가를 물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에게서 자기들을 위한 때를 기대했다. 자신들을 돕기 위해서 부활하신 것으로 알았다.

제자들의 관심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위해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친히 이스라엘을 핍박하는 세력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굳게 세워주시는 것에 있었다. 이것은 하나님을 오직 자신들을 위한 분으로만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곧 자신들이 하나님을 위해서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기보다는 하나님이 자신들을 도와주시는 것에만 마음을 두고 있는 것이다.

2. 때와 기한은 하나님의 소관

이러한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7절과 같은 말씀을 하신다.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이스라엘이 회복될 때나 그 시기에 대해서는 관심 두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권한이니 만큼 하나님이 정하신 때와 시기에 주시는 대로 받으면 될 일이다.

우리는 때와 시기에 대해 관심이 많다. 특히 우리가 고난이나 환란을 겪을 때 더욱더 때와 시기에 관심이 많다. 우리 인생에 고난이 닥친 상황을 생각해 보면,

고생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하나님이 주셨다면 주시는 때가 하나님의 권한에 속한 것이었던 것처럼 그 시기가 언제든, 끝날 때가 언제든, 하나님의 권한이니만큼 끝날 때를 관심 두기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것인가에 관심을 두는 것이 마땅하다.

3. 8절이 나오게 된 배경

이처럼 때와 시기에 대한 말씀을 하신 후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8절)는 말씀을 하신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8절 한 구절만을 보고 예수님이 전도하라는 명령을 하셨다고 이해하기보다는 세상에 존재하는 성도는 무엇에 관심을 두고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으로 이해해야 한다.

8절의 말씀은 하나님이 자기들을 위해서 일해줄 때에 대해서 관심을 둔 제자들의 물음을 배경으로 하고 주어진 말씀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4. 8절의 진정한 의미?

그러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말씀은 '너희들을 위한 때와 시기는 하나님께 속한 권한이니 마음 두지 말고 너희들이 지금 당장 해야 할 것에 대해서 마음을 두라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성도로서 당장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곧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이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은 당시 제자들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말씀이다. 당시 제자들은 유대인으로서 다른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을 하나님의 선민으로 여겼다.

때문에 구원은 자기들에게 해당된 자기들의 몫이고 이방인, 즉 사마리아인이나 또는 다른 지역의 사람들, 즉 땅 끝에 해당되는 사람들에게는 해당될 수 없는 구원으로 여겼다.

그런데 예수님은 예루살렘과 유대만이 아니라 그들이 개처럼 취급하는 사마리아(유대 지역에서 갈릴리 지역을 갈 때 우회해서 돌아 갈 정도)와 이방 나라까지에서도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결국 이 말씀은 구원은 유대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 누구에게나 해당될 수 있는 것임을 의미한다.

이렇게 본다면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라는 말씀은 성도가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은 어떤 지역으로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님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성도는 어디에서든 언제든 상관없이 하나님이 있게 하시고 살게 하시는 그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곧 성도의 본분이며 그것이 곧 성령의 권능으로 살아가는 성령의 사람이다. 하나님 나라 일에 대한 사명이 바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사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가 누구신가를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를 아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어야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다.

그런데 그리스도는 오직 성령으로만 알 수 있다. 예수님은 교회를 다니고 성경을 읽고 성경 공부를 한다고 해서 알아지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3년 간이나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이적을 목격하고 말씀을 들을 제자들조차도 예수가 누구신가를 알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능히 알 수 있는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성령으로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증인으로 살아가는 것 역시 성령이 임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그러기에 증인으로 산다는 것이 곧 성령의 권능이다.

증인은 단순히 예수님을 전도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예수님에 대해서 말하고 '예수 믿으라'라는 것으로 증인의 일을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

증인은 말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가 이런 분임을 증거하는 것인데, 이것은 증인이 실제 그리스도가 사셨던 삶을 살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다. 그리스도가 사셨던 삶을 살고, 그분이 가셨던 길을 감으로써 그리스도가 누구신가가 증거 된다. 이것을 권능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성도가 곧 성령이 임한 성령의 사람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하늘로 가시면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은 곧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가라는 뜻이 된다.

5.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지 못하는 것..

성도는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존재하는 것이지 나를 증거하기 위한 사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신앙 모습을 보면 무엇을 하면 그것을 자기를 증거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을 하게 되는 경우가 아주 많음을 부인할 수 없다. 기도를 하고 성경을 읽고 헌금을 하고 봉사를 하는 모든 것을 결국은 나 자신의 신앙을 높이고 굳게 세우고 다른 사람들 가운데서 우월한 자신으로 드러내는 도구로 이용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남들보다 많이 하고 열심히 했으면 더 한 것만큼 더 겸손해지고 더 낮아지고 형제를 사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를 못하는 안타까움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이것이 곧 성령의 사람으로서 증인으로 살아가야 할 성도의 본분대로 나아가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이다.

바로 이것이 부활하신 예수님에게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입니까?'라고 질문하는 제자들과 같다. 제자들의 관심은 하나님의 백성인 자기들은 굳게 세워지고 자신들을 핍박하는 세력들은 망하는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하나님이 옳은 자신들 편을 들어서 하루 속히 틀린 저들을 심판하기를 기대했다.

결국 그들에게는 틀린 자들 앞에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겠다는 의도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제자들에게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결국 그들이 할 일은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사는 것이지 누군가를 심판하고 공격하고 저주하는 것이 아님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6. 증인으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 (결론)

다시 말하지만 우리에게 있는 것들이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우리 자신을 내세우는 방향으로 쓰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있다면 그 열심이 우리로 하여금 더욱 더 형제를 사랑하게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만들 것이다. 이것이 성령의 사람, 증인의 사람일 것이다. 성도는 바로 이 일을 위해서 존재한다.

우린 어떤 일을 도구 삼아 나의 이름을 높이지는 않았나? 하나님이 나의 편을 들어서 나를 핍박하는 사람들을 심판해 주시기를 원하지는 않았나? 예수님이 어떻게 사셨는가를 생각하고 그 길을 가길 노력하자. 그것이 증인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모르는 자는 증인으로 살아갈 수 없는 것이고, 성령이 임하여 권능을 받지 않고는 증인이 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삶과 인생을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일에 쓰는 일에 있어서 너무 어리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일에 너무 익숙지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내게 있는 것으로 나를 세우며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공격하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성령이 임하셨다면 이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방향은 분명 달라져야 한다. 지금껏 익숙하지 않았던 새로운 삶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을 위해서 성령이 임하시고 권능을 주신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의 현실은 성령 받음이 그를 증인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성령 받은 자신을 타인과 구별하는 도구로 이용되버리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드릴 것은 그러한 것은 성령의 모습이 아니라는 점이다.

하나님은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알게 하셨다. 하지만 알았다는 것으로 그쳐 버린다면 결국 안다는 것으로 자신과 타인을 구별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성령은 알게 하실 뿐만 아니라 알게 된 분을 생명으로 여기고 그분만을 따르도록 한다. 그리고 그분을 따르고 그분이 가신 길을 감으로써 그가 존재하는 그 자리에서 증인으로 나타나도록 일하시는 것이다.

우리 때문에 이웃이 그리스도를 알고 배우는 일에 유익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때문에 이웃이 그리스도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잘못된 인식을 가지게 된다면 그것은 증인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날마다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그리스도의 은혜와 희생에 대해서 감사함이 사라져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의 은혜와 희생에 우리의 마음이 머물러 있을 때 보일 것은 겸손과 용서와 섬기는 모습이다. 하나님 나라는 있는 자리에서 증인 되는 성령의 사람으로 이루어짐을 다시 한번 마음 깊이 생각해야 한다. 무엇이 우리의 본분이며 존재 이유인지를 마음 깊이 묵상하고 성도로서 마땅한 삶의 길을 부지런히 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