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묵상

성령이 강림하신 이유 - 사도행전 2장 1-4절

차작가 2023. 12. 1. 13:11

성경:

1절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2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절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4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본문 해석:

1. 성령 강림에 대한 생각들

성령이 오신 형태나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성령 받은 후에 어떻게 되었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현대 교회에서 성령 강림의 표적으로 바람소리 같은 것을 말하기도 하고, 가슴이 뜨거워진다는 것을 말하기도 하고, 특히 방언을 중요시하는 것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성경은 성령이 오실 때 발생하는 현상이나 형태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옳다. 본문에서 있는 현상이기 때문에 현재에 있어서도 그와 동일한 현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성경에 대한 잘못된 이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오늘날 모든 성도들이 동일하게 경험해야 할 표준으로 말할 수는 없다. 본문의 성령 강림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너희도 장차 이런 경험이 있어야 그것이 진짜 성령 받은 표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오셔서 하실 일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2. 성령이 오신 이유

1)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면 예수의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이었다. 이렇게 보면 성령의 오심은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의 증인으로 살아가도록 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 다시 말해서 성령이 오신 이유는 세상에 남겨진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의 증인으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수의 증인이란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하셨던 말씀이나 그 삶들이 진리였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세상은 그리스도인의 말을 듣지 않는다. 따라서 말이 아무리 그럴듯하다 할지라도 삶이 말과 다르면 말에 대해서 불신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2) 그러므로 성령이 오시는 것은, 성도로 하여금 말을 잘하는 사람 되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오시는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 진리이며, 예수님이 곧 생명이며 길임을 믿는다면 그 믿음대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오시는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삶의 유일한 원칙과 기준으로 삼고 그 원칙대로 기준대로 살아가도록 하는 능력으로 오시는 것이다.

3) 성령을 보내심으로써 우리에게 알게 하시는 것이 '내가 누구인가?'라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 '나를 그리스도인 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게 하시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성령이 오심으로서 하나님의 생각과 뜻과 그 마음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3. 성령이 불의 혀 같이 오신 이유

그런데 3절 처럼 불의 혀같이 갈라진 것이 보였다고 했는데, 불의 혀란 심판의 말씀을 의미하는 것이고, 갈라진 것이라는 것은 구분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해 본다면, 결국 성령의 오심은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해서 심판할 자를 심판하고 구원할 자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려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불의 혀같이 오신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 볼 수 있습니다. 불의 혀같이 갈라진 것이 보였다고 했는데, 불의 혀란 심판의 말씀을 의미하는 것이고, 갈라진 것이라는 것은 구분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해 본다면, 결국 성령의 오심은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해서 심판할 자를 심판하고 구원할 자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려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

4. 성령이 오셔서 방언으로 말하게 한 이유

1) 여기서 방언의 의미

방언 역시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말하는 방언은 현대 교회가 말하는 방언과는 다르다.

각 나라의 언어를 말한다.

성령이 오셨을 때 제자들에게 있었던 방언은 우리가 생각하는 신비한 말이 아니라 그냥 외국말이었다. 여러 외국에서 온 이방인들이 각기 자기나라 말로 듣게 된 것이다.

즉 한국 사람이 말을 하는데 미국 사람은 영어로 듣게 되고, 중국 사람은 중국어로 일본 사람은 일어로 듣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냥 다른 나라의 언어였던 것이다. 때문에 성령이 오신 증거로서 방언을 말하고 그 방언을 이 세상의 말이 아닌 신비한 용어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있다.

2) 방언으로 말한 이유

7절부터의 말씀을 보면 성령이 오심으로 성령을 따라 말할 때 각 지방에서 모인 모든 사람들이 그 말을 알아들었다. 이것이 성령이 오셔서 방언으로 말하게 한 이유이다.

성령이 오신 것은 성도로 하여금 방언을 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러므로 현대 교회가 성령을 받은 증거로 방언을 내세우는 것은 크게 잘못되었다. 성령이 오시고 그로 인해서 제자들이 방언을 하게 되었다는 것은 성령이 오셔서 하실 일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3) 방언을 함으로 모두가 하나가 됨이다.

세상은 맨 처음 말이 나뉘지 않았다. 그런 것이 바벨탑을 쌓음으로써 말이 나뉘게 되었다. 결국 말이 나뉘어서 말이 서로 통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의 힘을 모아서 자기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하나님에게 도전한 증거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성령이 임한 제자가 말을 할 때 그 말을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는 것은 결국 말이 하나 되었음을 뜻한다. 이것은 곧 성령이 오심으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를 하나 되게 하시는 일을 하실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방언이란 단지 신비한 말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제자들의 말을 그 자리에 몰려 있던 모든 이방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언어의 통일이다.

4절에 보면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라고 말한다. 제자들은 자기들 멋대로 방언으로 말했던 것이 아니라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서 말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말이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들은 복음을 말했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 복음을 이방인들이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다. 땅끝이란 성도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자로 살아가야 할 범위는 정해져있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이방 나라까지 모두 포함된 것이 땅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땅 끝에 해당되는 이방 나라의 사람들이 제자들의 말하는 복음을 듣게 된다. 이것이 바로 성령이 왜 오셨는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5. 성령이 오셔서 하신 일

이처럼 성령은 오셔서 하시는 일이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 신비한 능력을 주셔서 우리의 이름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게 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에 대해서 무엇이 심판받을 모습인가를 증거하시기 위한 것이다. 결국 성도가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간다면, 그것이 곧 세상에 대해서 심판을 선포하는 것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도가 성령 안에서 하나라는 것은, 기독교란 종교를 기준으로 한 집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 서로 이해된다는 것을 말한다. 성령이 임한 자의 말은 성령이 임한 자만이 이해할 수 있다.

성령 강림에 대한 반응: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새술에 취하였다'라며 조롱을 한다. 이것이 바로 성령이 임한 자의 말에 의해서 말을 듣는 자와 듣지 못한 자로 구분되는 것이다. 이것이 방언의 의미이다. 그러므로 본문의 방언을 우리 멋대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아무리 같은 나라의 말을 한다 할지라도 듣긴 듣되 이해되지 않는 말이라면 결국 그에게는 방언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성령은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 되게 하기 위해서도 오시는 것이다.

결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는 것이 성령이 오신 증거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 서로 이해된다면 성령 안에서 하나라는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교회이다. 그리고 교회가 할 일은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사는 것이다. 세상을 보지 않고 예수님이 가신 하늘을 소망하고 사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성령이 임한 성도에게서만 볼 수 있다.

예수님이 성령을 보내신 것은 성도를 그리스도의 사람 되게 하셔서 세상으로 보내시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이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고 성령을 임하게 하시는 것과 같다. 예수님에게 성령이 임한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아들로서 세상으로 보냄 받은 분임을 증거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성도가 성령을 받은 것은, 예수님의 기뻐하는 성도로서 세상에 보냄 받았음을 증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성령 받으신 예수님은 자신을 보내신 아버지의 뜻에만 순종하셨다. 그러므로 성령 받은 성도라면 자신을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만 순종하는 게 마땅하다.

방언은 제자들을 세상 속으로 보내셨음을 말해준다. 하나님의 복음을 함께 나누라고 세상으로 보내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제자들과 같은 방언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필요가 없다. 오순절의 성령 강림과 방언은 성령이 오셨을 때 꼭 있어야 할 증거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성령을 보내시고 이루시고자 하시는 일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관심을 방언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가에 두어야 한다.

우리에게 성령이 주어지고 복음을 알게 되었다면, 그것으로 우월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잘나서 알게 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서 복음을 맡겼음을 생각해야 한다. 복음을 맡겼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전달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가 복음을 따라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전달해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이 사명을 잊어버리고 산다면, 우리는 헛된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성도는 복음을 맡은 자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과 자비하심을 함께 나누라는 것이고, 예수님의 은혜를 함께 나누라는 것이다. 이것은 돈을 나누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서로 나누어야 할 관계로 만났다. 우리가 깨닫게 된 복음을 나눌 자로 함께 한 것이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누구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라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것인가도 새롭게 정립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