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묵상

약속된 성령 - 사도행전 1장 1-5절

차작가 2023. 11. 30. 12:09

1절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2절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3절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 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4절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절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본문 해석:

1. 사도 행전은 부활하셔서 하늘로 가신 예수님이 세상에 세우신 사도들로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기록한 책이다. 즉 예수님은 비록 하늘로 가셨지만 그것으로 예수님의 시대가 막을 내린 것이 아니라 이제는 예수님이 세우신 사도들로 인해서 예수님의 시대가 계속 이어져 감을 보여주는 것이 사도행전이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해서 사도행전에서의 사도들의 사역은 사도 개인의 사역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의 계속된 사역이라고 말할 수 있다.

2. 부활하신 뒤 예수님의 주된 일: 3절에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하나님 나라의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는 것은, 이제 제자들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전에는 자신을 위해서 살았던 제자들이지만, 이제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위해서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라는 것을 말씀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바라시는 것이 있다.

그것이 5절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이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받기를 원하셨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야 하나님 나라의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의미는 무엇인지를 알 기 위해서는 요한의 세례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3. 요한의 세례 –물 세례 => 회개의 세례라는 것

"마 3: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

=> 사람들로 하여금 회개 시키기 위하여 세례를 베푼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 회개의 목적이 무엇이냐면,

"막 1:4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눅3:3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회개의 목적이 죄 사함을 받게 하는 곧 구원을 얻게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회개 없이는 죄 사함도 없고 궁극적으로는 구원이 없음을 말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 베드로가 행 2:38에서 회개함 없인 죄 사함이 없다고 확실히 말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4. 죄 사함 받고 성령을 받는 유일한 길 (행 2:38)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 회개함 없인 죄 사함이 없다.

첫째로 사람이 구원을 받으려면 회개가 있어야 한다. 성경적 회개는 어떤 것일까? 회개는 구원의 밑바닥 기초이므로 이것을 성경적으로 잘 이해해야 한다. 구원의 기초는 회개이다. 성경적 회개는 하나님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 나 자신에 대해서 돌이켜서 행동으로 변화가 나타나는 것이 성경적인 회개이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리펜트’하면 하나님이 계심을 말로 고백하고 그분이 계신 것처럼 믿고 그렇게 행동하는 것을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나타낸다. 이것이 성경의 회개이다.

지금까지 이 세상에 살면서 내 것만 추구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자기중심으로 살던 사람이 ‘리펜트’하면 하나님 중심으로 돌이켜서 생각이 바뀌게 되고 생각이 바뀐 것이 삶으로 나타난다. 그것이 성경의 회개이다.

죄를 지으면 좀 어떠냐고 생각하고 죄에 대해 아무 생각 없던 사람들이 회개를 하면 죄를 미워하게 되고 죄를 안 지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이렇게 하면서 죄에 대해 생각이 바뀌어서 죄를 미워하는 적극적인 행동으로 나타난다. 이것이 성경의 회개이다.

지금까지 마귀가 없다고 하고 지옥이 없다고 하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면 모든 생각이 변화되어 마귀가 있어서 자기를 유혹한다고 생각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는 생각이 들어서 보이지 않는 그곳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되고 실제로 그곳을 알고 믿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행동이 그 사람 속에서 나타난다. 이것이 성경의 회개이다.

지금까지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만을 인생의 목표로 삼던 사람이 하나님을 향해 회개하면 세상의 성공도 중요하지만 그것 이상으로 목표가 바뀌면서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성공적인 삶이 될 것인가 생각하면서 그의 삶의 목표가 바뀐 것이 행동으로 나타난다. 이것이 성경의 회개이다.

다시 한번 말하면 죄와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의 변화가 생겨 이런

변화가 실제 삶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도 그를 보면 “저 사람 뭔가 바뀌었는데.”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성경의 회개이다.

길 가던 사람이 생각을 바꿔서 30도 옆으로 가도 ‘리펜트’한 것이다. 50도 옆으로 가도 ‘리펜트’한 것이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리펜트’는 30도, 50도 바뀌는 것이 아니라 180도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자기중심에서 세상적 관점으로 살던 사람이 하나님 중심으로, 영원의 관점으로 삶을 사는 것이 회개이다.

성경의 예:

누가복음 15장에는 탕자 이야기가 나온다. 둘째 아들인 탕자가 아버지 것을 가지고 가서 돈을 다 허비하고 탕진했다. 그다음에 그는 “내가 하나님 아버지께 죄를 짓고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하고는 아버지께로 돌이켜돌아온다. 그는 이 세상의 친구에게로 가지 않았다.

고백만 한 것이 아니라 행동을 취해서 그는 자기 아버지께로 돌이켜 돌아왔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원하시는 회개이다. 삭개오의 회개 (절반을 주고 4배로 갚겠나이다) 여기서도 볼 수 있듯이 성경의 회개를 하면 생각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 바뀌어서 드러나게 나타난다.

하나님께로 돌이키면서 그것이 행동으로 나타난다. 그것이 바로 성경이 이야기하는 회개이다.

이처럼 세례 요한이 사람들로 하여금 구원을 얻기 위해 회개 시키고 세례를 베푼다고 말하고 있는데 눅 3:16에서 세례 요한은 자신이 주는 물 세례와 예수님이 주시는 성령의 세례의 차이점을 이야기한다.

5. 요한의 세례-물 세례의 한계

눅 3:16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요한의 물세례는 요단강에서 베풀어 진 것으로 세례자를 요단강 물속에 잠기게 하였다가 다시 나오게 하는 지금 식으로 말하면 침례의 방식으로 치러진 의식이었다. 물속에 잠기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고 다시 나오는 것은 죽음에서 건짐 받은 새로운 생명의 삶을 의미한다.

하지만 요한의 물세례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죽음과 생명을 의미하는 상징적 의식일 뿐이지 실제로 죽음에 처한 인간을 건지는 구원의 사건은 아니다. 만약 요한의 물세례가 실제적인 구원의 사건이었다면 예수님이 오실 이유는 없을 것이고, 세례 의식만 행하면 되었을 것이다. (요한은 회개의 세례를 줄 수 있었지만 죄를 사하고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은 없다. 그 능력은 오직 주님에게만 있다.)

 

요한은 자신의 세례와 예수님의 세례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증거한다. 자신은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 자신보다 능력이 많으신 분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풀 것을 말하면서 예수님의 세례가 능력이 있음을 증거한다. 그 능력은 물론 우리를 죄에서 건지시고 생명에 속하게 하시는 능력이다. 따라서 요한은 자신의 물세례를 통하여 예수님이 오셔서 하실 일이 무엇인가를 보여줌으로써 요한이 혹시 그리스도인가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예수가 그리스도로 오신 분임을 증거하는 것이다. 마치 구약의 동물의 제사가 신약의 예수님의 십자가 제사로 완전하게 되었듯이 자신의 물 세례는 예수님이 오셔서 주시는 성령세례를 예표한다는 것이다.

6. 요한이 물세례와 성령의 세례를 구분함

눅 3:16

요한이 물세례와 성령세례로 구분하여 말하는 것은 성령으로만 가능한 것이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행동의 변화가 아닌 존재의 변화이다. 인간 존재의 본질은 죄이며 죄의 삯인 사망이다. 이 같은 인간의 본질은 무엇으로도 변할 수 없다.

그런데 어떻게 존재의 변화가 있을 수 있을까? 존재의 변화는 죄를 이기는 자가 되어서 죄와 상관없이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망의 세력으로부터 벗어남을 의미한다. 이것이 성령으로 가능한 존재의 변화이며 신앙 세계의 신비라고 할 수 있다.

신자는 성령으로 인해서 이 같은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에 눈이 열리게 되는 것이고, 인간을 이 문제로부터 해방시키시고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 오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요한이 말한 성령 세례의 의미이다.

7. 예수님은 요 3:5에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하심.

요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물과 성령으로 나야 한다는 것은 물과 성령을 따로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의미에서 말씀하는 것이다. 즉 물로 난다는 것이나 성령으로 난다는 것을 같은 차원에서 말씀하는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례요한이 베풀었던 물세례를 다시 언급해야 할 필요가 있다. 물세례는 세례 요한이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로서 베풀었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은 물세례를 베풀면서도 물세례 자체를 강조하고 의미 두는 것이 아니라 성령 세례를 강조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의 물세례는 성령세례를 의식한 것이었고 그런 이유로 성령 세례를 강조하였던 것이다. 결국 물세례의 실상은 성령세례이며 그런 뜻으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요한의 물세례는 죄인 된 인간이 죽었다가 다시 사는 것을 의미한다. 죽었다가 다시 사는 것이 물세례인 것처럼 성령세례는 죄인 된 우리를 위로부터 다시 나게 한다. 이것이 거듭남이며 물세례는 성령세례가 이렇게 주어진다는 것을 증거한다.

8. 행 1:5절이 이루어지는 것 (고넬료 집안 구원 사건)

"행 11:16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11:17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성령을 받았다는 증거이다.

결론:

성령 받은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에 마음을 두게 된다. 이것이 성령 세례이다.

5절에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신비한 능력을 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그리스도께서 사셨던 삶을 살아가도록 하겠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이 예수님에게 붙들린 인생이다. 이제는 자기 인생이 없고 예수님이 가신 길에서 예수님을 증거하는 인생으로 뒤바뀐 것이다.

성령의 증거는 관심이 달라지는 것이다.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로 관심이 뒤바뀌게 된다. 내 일에서 하나님의 일에 마음을 두게 된다. 내가 가야 할 길을 스스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가신 길을 내 길로 받아들인다. 나를 나타내고 나를 내세우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나타내고 예수님을 자랑하기를 기뻐한다. 이것이 성령을 받은 증거이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 있는 신자에게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의 일에 매달려서 걱정하고 근심하고 울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것은 성령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로 삼으신 이유가 아니다.

성령 받은 신자가 할 일은 오직 예수님을 내세우고 예수님을 자랑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 일에 부름받았음을 잊지 말고 예수님으로 살아가는 삶에 부지런해야 한다. 그럴 때 천국이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