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묵상

진정으로 회개해야 할 것 - 사도행전 3장 17-26절

차작가 2023. 12. 7. 12:03

성경:

17절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원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

18절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해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

19절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괘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20절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21절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 바 만유를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22절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 모든 말씀을 들을 것이라

23절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하였고

24절 또한 사무엘 때부터 옴으로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때를 가리켜 말하였느니라

25절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으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26절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본문 해석:

지난 시간에는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일으킨 자신들을 주목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12절)고 말한 뒤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16절)고 말한 내용에 대해 나누었다.

베드로는 앉은뱅이를 성하게 한 것은 자신들의 권능이 아니라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한 일임을 말함으로써 기적의 주체자가 자신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심을 말했다.

그런데 베드로가 그러한 말을 한 것은 단순히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늘 본문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

1. 첫 번째가 17절에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말하듯이 알지 못한 것에 대해서 회개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니까 예수를 죽였고 그들이 죽인 예수가 구원자 임도 몰랐고 그 예수를 통한 믿음으로 인해 기적이 일어난 것도 모르게 되었으니 하나님을 알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1) 하나님은 구원자 되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하셨는지 모른다.

하나님의 열심을 알지 못했다.

- 18절: 그리스도의 해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셨다.

- 22절: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셔서 그 말을 듣게 하시고 그 말을 듣지 않는 백성들은 멸망 받으리라고 하셨다.

- 24절::사무엘 이후로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예수에 대해 말씀하셨다.

- 25-26절: 무엇보다도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 예수를 보내시기 위한 하나님의 열심을 알아야 한다. 유대인들은 이것을 실패했다. 하나님은 계속적으로 하나님을 알기를 원하셨지만 유대인들은 관심도 없고 귀 기울이지 않았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면 당시 유대인들과 다를 바가 없다. 이것을 회개해야 한다.

2) 이 일이 예수를 믿는 믿음에서 난 일인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16절을 보면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라는 말을 한다.

앉은뱅이는 스스로 자신을 일으킬 수 없다. 이러한 앉은뱅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하게 되었다. 그 이름을 믿는 믿음이 그 사람을 낫게 했다. 베드로의 말을 종합해 본다면 베드로는 앉은뱅이를 유대인들과 동일시하고 있다. 즉 앉은뱅이의 상태가 바로 너희들과 같다는 의미이다. 베드로는 바로 이것을 두고 스스로 일어나 걷는다고 여기는 유대인더러 회개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앉은뱅이와 같은 상태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량한 존재이다. 그러한 우리를 깨끗이 하고 성하게 한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그분으로 말미암은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내가 깨끗함을 입었음을 믿게 하는 것이고 그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곧 깨끗함을 입은 자로 사는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자기 스스로 얼마든지 일어나 걷는다고 여겼다. 그러한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나를 믿어야 낫는다고 말씀하신다. 이러한 예수님을 배척을 했고 죽였던 것이다. 결국 유대인들의 '우리 스스로 일어나 걷는다'라는 사고방식이 예수님을 죽인 것이다. 베드로는 바로 이것을 회개하라고 말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일어나 걸을 수 있게 된 은혜를 멸시한 것을 회개하라는 거다.

앉은뱅이가 예수로 말미암아 된 믿음으로 온전케 된 것은 예수로 인한 믿음으로 인한 것이므로 예수에 대한 믿음 없는 너희 자신을 회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2:적용

첫째:

우리도 기적 같은 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아닌 사람을 보게 되면 그것 자체가 믿음이 없는 생활인 것이다. 이것을 회개해야 한다.

둘째:

그러나 베드로가 말하는 회개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21절에 보면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라고 말한다.

베드로는 세상에 대한 영원전부터의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서 말한다. 즉 하나님은 만물을 회복하시기 위해서 일하고 계셨다는 것이다. 만물이 회복된다는 것은 악한 세상이 끝나고 새로운 세상으로 새롭게 시작되는 때를 의미한다. 결국 베드로는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게 된 이 사건을 두고 만물을 회복하기 위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이 만물을 회복하시고자 하신다면 지금의 이 세상은 끝장나야 할 곳임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아는 성도로서 세상에서 지향하고 살아가야 할 것은 무엇일까? 분명 세상의 사고를 좇아 살아가는 것과는 달리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시기 위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부합된 삶이 되어야 하는 것이 분명하다.

다시 말해서 세상의 완성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자답게 악한 세상에서의 그의 삶도 세상의 마지막과 함께 새로운 세상이 있게 될 것임을 선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회개해야 할 것은 하나님을 안다 하면서도 하나님의 뜻과는 달리 완성된 세계를 지향하는 삶이 아니라 눈에 보인 세상에 집착한 삶에 대한 것이 아닐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아는 자에게만 있을 수 있는 회개이다. 그래서 회개는 단순히 자신의 잘못된 행동 몇 가지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앉은뱅이가 성하게 되고 낫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일은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 계속된다. 예수님이 오시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깨끗함을 입게 되었다는 것도 바로 그것을 보여주는 거다. ㅣ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시기 위해서 일하신다는 것을 믿고 산다면 세상에서 하나님이 이루실 그 나라를 지향하는 삶이 될 것이고, 이것이 곧 신앙생활이다.

우리가 교회로 모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내 교회를 유지하고 교회를 발전시키고 내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을 많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교회라 이름할 수 없다. 즉 교회는 교회를 위해서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하나님을 안다면 하나님이 어떠한 계획으로 일하시는지도 알 것이다. 그것이 바로 만물의 회복을 위해서 일하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아는 자로서 모인 교회라면 당연히 보여야 할 것은 세상의 마지막과 하나님이 이루실 새 하늘과 새 땅의 모습일 것이다.

그 모습 중의 하나가 2장에서 말씀드렸던, 초대교회의 사람들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을 파라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모습이 아니겠는가? 네 것 내 것이 없고 단지 맡은 자로서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그 모습이야말로 소유하기 위해서 경쟁하지 않는 회복된 세계, 즉 새 하늘과 새 땅의 모습이 아닐까? 이처럼 교회가 할 일은 하나님이 이루실 새로운 세계가 있음을 선포하는 데 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믿음으로 앉은뱅이가 성하게 되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믿음이 우리를 어디로 끌어갈 것인가를 보여준다. 믿음은 세상에 대한 우리의 소망을 달성하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실 완성까지 우리를 붙들어서 끌어갈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의 참된 모습은 하나님의 완성을 보고 사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루실 완성된 그 나라를 보고 살아가기 때문에 사망에 처한 세상에 대해서는 날마다 벗어나는 자로 사는 것이 곧 믿음으로 사는 것이며 이것을 신앙생활이라고 말한다. 과연 우리가 이러한 신앙생활을 하는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21절의 말씀 중에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라는 내용이 있다.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둔다는 것은 하나님이 만물을 회복하실 그날까지 예수님이 하늘의 영광 중에 계실 것을 말한다.

우린 때로 이런 아쉬움을 가질 때가 있다. 그것은 예수님이 직접 오셔서 하늘의 영광된 모습을 보여주시면 세상이 금방 예수님을 믿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하늘에 계신 예수님 역시 영광된 하나님으로 계신다. 구약을 보면 하나님의 영광을 본 자는 죽게 되어 있다. 사도 바울조차도 하늘의 빛을 보고 눈이 멀었다.

결국 예수님이 오셔서 일하신다면 예수님의 영광 앞에서 우리는 눈이 멀거나 죽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옛날 구약 때 하나님이 모세를 대신 세우신 것처럼, 그리고 선지자를 세워서 하나님의 일을 선포하고 세상의 마지막을 외쳤던 것처럼 지금도 하나님은 선지자를 세워서 완성될 새 하늘과 새 땅을 선포하게 하시는 것이다. 그 일을 맡은 자가 바로 우리들이다.

25절에 보면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라고 말한다. 우리가 곧 선지자의 자손이다. 세상에 우리를 선지자로 세워서 하나님의 일을 선포하게 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에서 선지자로 살아야 할 사람들이고, 선지자로 사는 것은 세상의 마지막과 완성될 세상이 있음을 선포하는 것을 말한다. 이 일을 위해서 교회가 있는 것이며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고 살아야 할 이유이다.

 

결론:

무엇을 회개해야 할까? 먼저, 하나님을 잘 알지 못했던 것을 회개해야 한다. 다음으로 예수로 말미암은 믿음을 갖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완성될 세계를 바라보지 않고 세상 것에만 눈이 멀어 세상을 따라가는 모습을 회개해야 한다. 이렇게 날마다 회개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신앙생활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