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묵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 사도행전 3장 1-10절

차작가 2023. 12. 7. 12:00

성경:

1절 성전에 올라갈새

2절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문에 두는 자라

3절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4절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5절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6절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7절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8절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9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10절 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의 당한 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

본문 해석:

베드로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종이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았다. 베드로의 관심은 그리스도였으며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 사명이요 존재 이유였다. 오늘 말씀은 오늘날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하는 우리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가르쳐주는 말씀이다.

본문에서 우리의 관심을 그리스도께 두게 하는 분명한 구절이 있다. 그것은 6절의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라는 말씀이다.

어떤 사람은 이 구절을 대하면서 '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 말하면 뭔가 되겠구나'라는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일종의 주문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죄의 유혹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러가라'라고 외치면 죄를 이기는 능력이 생기는 것으로 착각을 한다.

하지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결코 그러한 용도로 쓰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 아무리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외친다고 해도 그것 때문에 뭔가 되는 것은 없다. 왜냐하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라는 단어에 어떤 신비한 힘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6절의 말씀은 베드로와 요한이 자신들이 일하는 것은 모두가 자신들의 힘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힘이며, 그리스도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보여주는 그리스도의 도구로서 존재할 뿐임을 증거한다.

베드로가 6절의 말을 하게 된 것은 성전에서 만난 앉은뱅이가 베드로와 요한에게 구걸하는 것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은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서 구걸을 하며 살았다. 아마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는 사람들을 만나서 구걸을 하면 성전에 기도하러 가는 입장에서 거절을 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마치 주일에 예배드리러 갈 때 좋은 일을 하면 왠지 복을 받을 것 같은 인간의 심리를 이용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앉은뱅이는 평소대로 성전에 올라가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구걸을 했다. 베드로는 그러한 앉은뱅이에게 6절의 말을 하고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운 것이다. 이 내용이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주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앉은뱅이의 처지를 본다면 2절의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라는 말씀과 같이 스스로는 움직일 수 없는 처지이고, 구걸을 하는 것조차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처지였다. 그는 돈이 필요할 때면 스스로 나가지 못하고 누군가가 자신을 성전 문에 데려다 주기를 애타게 기다려야만 했다. 마음은 원이지만 그 몸을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참으로 연약하고 무능한 처지였다.

우리는 이 앉은뱅이의 처지에서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만약 앉은뱅이의 모습에서 자신의 처지를 발견할 수 있고 스스로 그렇게 인정할 수 있다면 그리스도의 말씀은 우리 안에서 성공했으며 참으로 희망이 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사실 앉은뱅이는 바로 우리 자신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돈을 벌고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돈에 대해서는 앉은뱅이와 같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의에 대해서, 구원에 대해서, 천국에 대해서만큼은 우리는 죽은 자요 무능한 자요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처럼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우리가 이것을 믿는다면 그것은 분명 그리스도의 일이 우리 안에 시작되었음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이처럼 앉은뱅이에게서 우리 자신의 처지를 볼 수 있다면 6절의 베드로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앉은뱅이는 베드로와 요한에게서 돈을 구걸했다. 그것은 앉은뱅이가 필요로 한 것은 돈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앉은뱅이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일어나 걷는 것이다. 하지만 지나가는 사람에게 '나를 일으켜 곧게 해달라'라는 요구를 한다면 분명 미친 사람으로 취급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어떤 사람에게도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울 권능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앉은뱅이에게 베드로는 '우리를 보라'고 말한다. 그러자 앉은뱅이는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해서 바라본다. 아마 그는 분명 다른 사람보다 좀 더 많은 돈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베드로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라는 말을 한다. 여기서 베드로가 말하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라는 말은 앞서 말한 대로 단순히 돈이 없다는 말로 들어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결국 돈 대신에 병 고침을 주는 결과가 돼버리기 때문이다.

 

은과 금은 내게 없다는 것은 베드로와 요한의 일이 은과 금, 즉 세상의 재물과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의 것으로 안되는 일을 한다는 의미이다. 즉 당신의 문제는 세상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만약 은과 금이 있어서 수많은 은과 금을 준다고 해도 앉은뱅이는 여전히 앉은뱅이이다. 돈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앉은뱅이라는 질고를 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그에게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라고 말한 것은 너의 질고는 오직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로만 해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앉은뱅이가 고침 받은 것은 단순한 병 고침이 아니다. 마태복음 8:17절에 보면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라고 말한다. 이 말씀대로 하면 예수님의 병 고침은 곧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기 위해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표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사건이 아닐까?

그리고 베드로가 말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는 바로 우리의 연약함을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일이 담겨 있다.

그러므로 6절의 베드로의 말은 단순한 주문 형식의 말이 아니라 '연약하고 무능한 너를 일으켜 세울 분은 오직 너의 모든 연약함을 친히 담당하시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라는 것을 선언하는 복음의 말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앞서 말씀드리기를 앉은뱅이가 곧 우리의 처지를 보여준다고 했다. 우리는 의에 대해서는 스스로는 전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자들이다. 그러한 우리의 연약함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담당하시고 우리는 예수님으로 인해서 일어나 걸을 수 있는 자가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스스로 걷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우리를 일으켜 세워주신 예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내 힘으로 내 스스로 걷고 뛰는 것으로 착각함으로 인해서 우리들의 입에서 하나님에 대한 찬미가 사라지고 우리 자신을 자랑하게 된다.

 

결론:

일어난 앉은뱅이는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하나님을 찬미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로 인해서 구원받은 우리들이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으로 인해서 우리가 앉은뱅이의 처지에서 일어나 걸을 수 있었다. 생명을 얻었고, 천국을 소망하게 되었고, 예수님을 알게 되었다. 그러한 우리가 할 일은 무엇 이일까? 그것은 다만 우리를 일으켜 세우신 그리스도를 찬미하는 것이다.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찬미하는 것이다.

6절의 말씀을 본다면 베드로에게 있는 것은 오직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였다. 오늘 우리가 서로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것도 바로 그분이어야 한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로 생명을 얻은 우리라면 우리에게 있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여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앉은뱅이가 모인 교회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며 하나님을 찬미하는 자들이 모인 교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