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묵상

믿음과 들음과 그리스도의 말씀 - 로마서 10장 16~21절

차작가 2023. 12. 27. 13:41

흔히 모태 신앙이라는 말을 많이 하기도 하는데, 모태 신앙이라는 것도 믿음이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임을 생각한다면 잘못된 생각이다. 모태신앙이란 어머니의 신앙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믿음을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에게 주시는 은혜로 생각한다면, 그리고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선택할 때 기독교 집안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시라면 모태 신앙이라는 말을 할 수 없다. 날 때부터 기독교 집안이라면 그것으로 인해서 다만 종교를 기독교로 선택할 수는 있고 교회에 다닐 수 있는 영향은 있다. 그러나 가정이 기독교 집안이라는 것으로 인해서 믿음에 더 유리하다는 것은 잘못되었다.

이스라엘이 바로 이런 생각이었다. 왜 그들이 하나님을 자신들만의 하나님으로 생각했을까? 그것은 이스라엘에게만 하나님이 전해지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신앙을 대대로 이어가는 것으로 생각을 했기 때문에 원래 신앙의 노선에서 태어나지 않은 이방인에게 하나님이란 해당이 안 된다고 생각을 했던 것이다.

이러한 이스라엘에게 사도 바울은 믿음은 이스라엘 내부에서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임을 말한다. 그리고 그것을 설명하기를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은 자인데, 믿지 않고 어떻게 부를 수가 있으며, 듣지 못하고 어떻게 믿을 수가 있으면, 전파하는 자 없이 어찌 들을 수가 있으며, 보내심을 받은 자 없이 어찌 전파하는 자가 있겠느냐는 말을 하는 것이다. 이 말은 하나님이 너에게 보내신 자가 있기 때문에 네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이스라엘 역시 보냄 받은 자가 있었기 때문에 그가 전파하였고 전파한 자가 있었기 때문에 말씀을 들은 자가 있고 믿게 된 자가 있다는 의미이다. 결국 믿음은 시작부터 하나님이 하신 일이지 이스라엘이 신앙을 잘 이어왔기 때문에 믿게 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보내신 자가 전파한 말을 누가 믿었느냐고 말한다. 16절에 "그러나 저희가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가로되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라고 말한다.

성경:

16절 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17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18절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냐 그렇지 아니하니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19절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냐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

20절 이사야는 매우 담대하여 내가 나를 찾지 아니한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내게 묻지 아니한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말하였고

21절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되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였느니라

관찰:

1. 16절에서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는 무슨 뜻일까? (16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2. 바울이 16절처럼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 (16절)

사도 바울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하나님이 보낸 자가 전파를 해서 우리가 듣게 되었다면 그 들은 것을 우리가 믿었기 때문에 주의 이름을 부르게 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을 차단하기 위해서이다. 바울은 철저하게 믿음의 문제에 있어서 인간의 그 어떤 노력이나 수고도 개입시키지 않았다. 그래서 여러 면에서 인간의 행함을 들이밀 수 있는 구멍을 미리 차단을 하고 있다.

'하나님이 전파하는 자를 보내셨다고 하자. 그리고 그가 전파했기 때문에 우리가 듣게 되었다고 하자. 하지만 들은 것을 믿은 것은 우리가 아니냐?'라는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믿음에 대한 선택권이 우리 자신들에게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야 '지금이라도 내가 안 믿겠다'라고 하면 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내가 안 믿겠다고 결심하고 교회를 안 나가는데, 하나님인들 어떻게 하시겠냐는 것이다. 즉 자신의 선택이 하나님보다 더 위에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무리 믿게 하신다고 해도 내가 거부하는데 하나님인들 별 수 있는가?'라는 이러한 생각이 바로 불신자의 생각이다. 이들의 착각은 자신이 지금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생각한다.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내가 안 믿으면 하나님도 별수 없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믿음이 없다는 증거이다. 즉 애초부터 믿음이 없는 자가 믿음 없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사야서의 말씀을 인용을 해서 '너희가 언제 전파된 것을 믿었느냐?'라는 말을 한다. 이것으로 인해서 '내가 믿었다'라는 말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은혜가 필요 없다. 자기 책임 아래 있는 믿음이기 때문이다.

3.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의 의미는?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라는 이 말은 믿음은 전파하는 자에 달린 것도 아니고 들은 자에 달린 것도 아님을 말해준다. 이사야가 전파를 했는데 믿은 자가 없다. 결국 믿음은 이사야에게 달린 것도 아니고 이스라엘에게 달린 것도 아니다. 그럼 누구에게 달렸까? 20절에서 ‘내가 나를 찾지 아니한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내게 묻지 아니한 자들에게 나타났노라’에서 보면 "또한 이사야가 매우 담대하여 이르되 내가 구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찾은 되고 내게 문의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하였고"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하나님을 구하지도 않는 자들을 친히 찾아오셨고, 하나님에게 묻지도 않은 자들에게 친히 나타나셨다는 것이다. 결국 믿음은 하나님께 달린 문제라는 것이다.

4. 16, 20 그리고 21절 말씀의 결론은?

이런 모든 말씀의 하나하나가 의미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을 믿게 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이지 우리의 선택에 달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열심히었지 우리들의 열심이 아니다. 그래서 롬 8:38-39절에서는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없으리라"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열심이고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에 그 무엇도 이 사랑에서 끊지 못한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얼마나 많은 열심히 은혜와 자비와 긍휼을 베푸셨는가를 말씀하신다. 그런데 인간은 과연 하나님의 열심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했을까? 사실 많은 부분에 있어서 은혜와 긍휼히 나에 대해서 너무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으로 살지 않았다. 이것이 은혜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에 대해서 순종치 않고 거스려 말하는 자들에게 종일 내 손을 벌렸다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인간이 그 품에 안기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일이 안되면 하나님께 부족하다고 불평이나 늘어놓는다.

이런 우리들이 지금 예수님을 믿겠다고 모여 있다. 이것이 우리의 의지이고 결정일까? 여호와를 섬기기보다는 여호와로 인해서 득을 보려는 마음만 있던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이다. 그런 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고 예수님의 희생을 말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고 사랑이다. 종일 손을 벌리고 있는 하나님을 모른척하고 살던 우리들에게 새로운 지식을 주셔서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보게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 나아오게 하셨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열심이다.

적용:

모든 것이 하나님의 열심이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기가 조금만 힘들어도 불평을 한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는 전혀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또한 찾지 않아도 문의하지 않아도 찾아오시고 나타나신 하나님이시다. 순종치 않고 거스려 말하는 자들에게 종일 손을 벌리신 하나님이시다. 구원에 있어서 이미 하나님의 은혜는 충만한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세상을 생각하기 때문에 채워지지 않은 하나님으로 여긴다. 그래서 하나님 책임 아래 사는 것보다는 내가 나를 책임지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부족함이 없는 열심히 오늘 우리를 이 자리에 있게 하셨다. 들어도 믿을 수 없는 우리가 듣고 믿게 된 자로 사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열심은 부족함이 없다는 걸 보여준다. 우리의 열심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의 열심에 감사하며 살아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