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묵상

구원받은 이방인으로서 가져야 할 삶의 자세 - 로마서 11장 13~24절

차작가 2023. 12. 29. 12:40

구원의 근거가 하나님의 은혜에 있다고 말을 한다면, 그 어떤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구원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구원되고야 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근거로 해서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이 비록 믿음에 실패한 사람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스라엘이 버림받았다고 할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이 비록 믿음에 있어서 실패했지만 그들 중에도 하나님이 구원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구원될 것임을 말한다.

이스라엘은 비록 율법에 대해서는 성실했지만 실패한 자들이다. 그 이유는 율법이 보여주고 있는 자신들의 죄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율법에 대해 실패한 자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진 절기나 제사 할례나 의식 모든 것에 대해서도 실패했다. 비록 지키고 실천하는 것에는 성공했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 의식들이 내포하고 있는 하나님의 뜻은 발견치 못했기 때문이다.

성경:

13절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14절 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15절 그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 오

16절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17절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 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 감람나무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18절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19절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인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20절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21절 하나님이 원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까지 아니하시리라

22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지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23절 그들도 믿지 아니하는 데 머무르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받으리니 이는 그들을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24절 네가 원 돌 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슬러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으니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받으랴

해석:

1. ‘그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 오’의 뜻은? (15절)

실제 이스라엘 민족을 버리셨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위와 의를 주장하는 그 이스라엘이 버림받았다는 뜻이다. 결국 이스라엘을 버리셨다는 것은 인간의 그 어떤 의와 행위도 하나님과의 화해를 이끌어낼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그들을 버리시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된다는 말을 한 것이다.

결국 하나님이 버리셨다는 것은 '다 끝났다'는 것이 아니라 버림받음을 통해서 나 자신에게는 하나님과의 화해를 이룰 그 어떤 의도 없음을 알아라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바로 그 사람을 받아들이시는 것이다. 그럴 때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는 버림받은 자를 받아들이시는 은혜이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은혜일 수밖에 없다.

버림을 통해서 자신의 죽음을 경험하고 받아들이심을 통해서 새롭게 살아난 생명을 경험하는 것이다.

2.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의 뜻은? (22절)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거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죄를 안다는 뜻이다. 자신의 죄를 알지 못하고서 하나님의 용서를 알 수 없고, 하나님의 용서도 모르면서 하나님의 인자를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자하심에 거한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은 인자하신 분이다'라는 고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악함을 알고 하나님의 용서받음으로 인해서 새로운 생명을 얻은 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살아가는 거다. 이것이 인자하심에 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허물과 악함을 보지 않으시고 그리스도의 의의 피로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백성 삼으신 그 인자하심이 나와야 한다. 그것은 결국 용서하는 삶으로 나타나게 된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아는 신자라면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으로 인해서 살아났음을 잊지 않는다. 나는 용서받아야 할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는 그 마음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사람이다. '내가 용서받아야 할 사람인데 내가 누구를 용서할 자격이 있는가?' 이것을 가리켜서 사랑이라고 말한다. 결국 사랑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용서를 알고 주님의 사랑을 입은 자 밖에는 없다.

사람은 그 속에 있는 것을 그대로 보일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우리 주변에 악한 자, 나보다 못한 자, 부자 된 자 등을 세워놓으시는 것이다.

적용:

자신의 죄를 알지 못하고서 하나님의 용서를 알 수 없다. 하나님의 용서도 모르면서 하나님의 인자를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자하심에 거하는 것은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의 허물과 악함을 보지 않고 그리스도의 의의 피로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백성 삼으신 그 인자하심이 우리에게도 나와야 한다. 그것은 결국 용서하는 삶으로 나타나게 된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아는 신자라면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으로 인해서 살아났음을 잊지 않는다. 나는 용서받아야 할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는 그 마음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사람이다. 그 마음이 곧 사랑이다. 사랑하는 것은 누구를 대하든 '나는 용서받아야 할 사람이다'라는 마음으로 대하라는 것이다. '내가 용서받아야 할 사람인데 내가 누구를 용서할 자격이 있는가?' 이것을 가리켜서 사랑이라고 말한다. 결국 사랑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용서를 알고 주님의 사랑을 입은 자 밖에는 없다.

하나님의 인자에 거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내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인자하심에 날마다 거해야 하는 것이다. 날마다 '죽어야 할 내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살아간다'라는 고백으로 살아간다면 분명 그로부터 드러나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입은 인자일 것이다. 그것은 누구를 대하든 '나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야 할 악한 자입니다'라는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다. 그러한 신자에게서 자기 자랑의 말이 나오겠으며, 형제를 무시하는 말이 나오겠으며, 다툼과 시기와 멸시의 말이 나올까?

사람은 그 속에 있는 것을 그대로 보인다. 하나님은 우리 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우리 주변에 악한 자, 나보다 못한 자, 부자 된 자 등을 세워놓으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