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묵상

이스라엘의 구원 - 로마서 11장 25~32절

차작가 2023. 12. 29. 12:41

25절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26절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27절 내가 그들의 죄를 없이 할 때에 그들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28절 복음으로 하면 그들이 너희로 말미암아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로 말미암아 사랑을 입은 자라

29절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30절 너희가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 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31절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그들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32절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해석:

1.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다’는 의미는? (26절)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는다면 그것은 무엇으로 인해서인가? 이것을 사도 바울은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해서 말하고 있다. 사 59:20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 중에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라고 한다. 이 말씀은 마치 구속자가 임하는 자가 되려거든 죄에서 떠나야 한다는 말로 들려진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죄에서 떠나지 않고 있으면서 하나님의 복이 임하기를 구할 수 없고, 죄에서 떠나지를 못하면서 구원 얻기를 바랄 수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집안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자신의 죄와 연결 지어 생각한다. 내가 뭔가 죄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이 날 때부터 소경 된 자를 보면서 '저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 때문인가?'라고 묻자 누구 죄 때문도 아니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기 위해서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결국 죄를 떠난 자에게는 복이 임하고 죄를 떠나지 못한 자에게는 저주가 임한다는 우리들의 보편적인 상식이 잘못된 것임을 말씀해 주는 것이다.

죄를 떠난다는 것은 우리들의 소관이 아니다. 즉 죄라는 것은 우리들의 의지와 결단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사야에서 말하는 죄과를 떠난 자에게 구속자가 임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이것은 구속자로 오신 분이 우리의 죄까지 모두 해결해 주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26절에서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구속자로 오신 분이 야곱에게 있는 경건치 않은 것을 없애버리신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서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게 된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없다 함을 선언 받았다. 이것이 우리들의 행동과 아무런 상관이 없이 주어지는 은혜이고 축복이다. '네 죄는 예수님이 다 책임졌으니까 마음대로 죄지으라'가 아니라 '예수님이 네 죄를 다 담당하셨으니까 예수님이 하신 의로운 일만 바라보면서 살아가라'라는 것이다. 따라서 죄 없이 하신 예수님의 은혜를 아는 신자라면 어디에서건 그리스도의 은혜를 증거하는 자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2. ‘복음으로 하면 그들이 너희로 말미암아 원수 된 자’라는 의미는? (28절)

복음은 인간의 행함을 거부한다. 지금까지의 말씀이 이런 내용이었다. 행함을 구원과 연결하여 생각하는 이스라엘에게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말씀하셨다. 너희들의 행함으로 의가 쌓이고 그 의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행함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은혜로 접붙임을 받아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같은 행함이 전혀 없는 이방인을 부르셔서 행함을 자랑하고 내세우는 이스라엘의 불신앙을 드러내셨다.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라는 것은 은혜 앞에서 인간의 행함을 자랑하고 내세우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을 공경하고 섬긴다고 하는 이스라엘이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었음이 드러났다. 이것이 복음 앞에서의 이스라엘이고 그들의 원수 됨이 이방인이 부르심을 입음으로써 확실하게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28절 뒤에 보면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을 인하여 사랑을 입은 자라"라고 말한다.

3.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로 말미암아 사랑을 입은 자라’의 의미는? (28절)

복음으로 하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로 끝나지만 택하심으로 관련하여 생각한다면 원수 된 그 이스라엘도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조상으로 인해서 사랑을 입은 자라는 것이다. 결국 원수 된 이스라엘을 향한 사랑은 이스라엘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원수 된 자가 약속으로 인해서 사랑을 입게 되었다. 이것이 28절의 내용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택하신 사랑을 아는 자는 누구일까? 자신이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임을 아는 자이다. 그래서 진정한 교회란 자신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자신이 원수임을 알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되지 않는 사랑에 대해서 눈을 뜰 수가 있다. 그런데 사랑을 받을만하다고 여겨버린다면 결국 의가 되는 것은 그들의 행위일 뿐이다.

교회란 위선과 가식의 껍데기를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원수로 살아가는 모습을 정직하게 드러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가를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깨끗한 자로 서려고 한다. 하나님은 깨끗하고 경건한 모습을 좋아하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원수 된 모습이 가려진 곳에는 사랑도 가려지고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인간은 복음의 적일뿐이지 복음을 도와주고 복음 편에 서서 복음을 증거하는 자들이 아니다. 이러한 인간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사랑이며 은총일 뿐이다.

적용:

생각해 보면 오늘날도 이러한 어리석음에 사는 사람들이 참 많다. 죄 없이 함은 그리스도의 피에 있다는 것을 모른 채 스스로 죄 없는 자로 살기 위해서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헌금을 함으로써 자신이 죄에서 멀어진 것으로 착각을 하고, 교회를 출석하는 것으로 죄와 상관이 없이 사는 것으로 착각하고, 기도를 함으로서 구원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여기는 어리석음이 많다.

그러나 우리들의 어떤 행위도 우리를 죄에서 의의 자리로 옮겨 놓지는 못한다. 그러한 능력은 오직 주님에게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주님이 하신 일만 의로 여기고 주님만 의지하고 주님의 의로우신 일에만 감사하고 살아갈 뿐이다. 우리의 할 일은 주님이 하신 일을 믿는 것이다. 죄로 인해서 영원한 저주에 있어야 할 자를 죄 없이 하셨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가! 그래서 우리는 피 흘리신 주님 앞에서 '주시옵소서'라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이미 귀하신 자신의 몸까지 우리에게 내어 놓으셨는데 무엇을 또 요구할 수 있을까? 따라서 우리는 다만 그리스도께 감사하며 살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