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묵상

성도가 드려야 할 영적 예배 - 로마서 12장 1~2절

차작가 2023. 12. 30. 12:20

인간이 신을 섬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공통적인 것은 신을 '예배'하는 것이다. 신을 경배하고 신에게 기도하는 것은 모든 종교의 공통적인 행위이다. 이것은 기독교도 다를 바가 없다. 종교의 예배는 예배라는 자기 행위를 징검다리로 해서 신을 만나고 신과 자신들의 연결 고리로 삼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 즉 예배를 드림으로서 자신은 신에게 가까이 나아가 있으며 신을 믿고 섬기는 자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는 것은 신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것으로 간주되어 버리고, 어떤 일이 있다 해도 예배에 빠지지 않는다면 그는 신을 향한 믿음이 매우 특심한 신앙인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예배에 대한 이러한 사고방식은 기독교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모든 교회가 하나님에게 예배를 드린다. 어떤 순서로 어떤 방식으로 예배를 드리든 예배 없는 교회는 없다. 그런데 예배에 대한 의식 자체가 문제이다. 종교가 가지고 있는 예배에 대한 사고방식처럼 예배를 징검다리로 해서 신에게 나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교회당에 모여서 예배드리는 것 자체를 신앙의 근거로 삼아버린다. 그래서 예배 자체에 무척 신경을 쓰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예배가 과연 그러한 것일까? 인간들이 모여서 찬송하고 기도하고 설교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그것을 기뻐하실까? 오늘 본문이 바로 그것을 말해준다.

성경:

1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시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해석:

1.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 ‘영적 예배’라고 했는데 그럼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은 무엇일까? (1절)

우리 몸을 드린다고 해서 행여 신학교를 가서 목사가 되거나 다른 나라에 선교사로 가는 것으로 이해해선 안된다. 하나님은 목사 될 것을 원하시는 것도 아니고 선교사로 나갈 것을 원하시는 것도 아니다.

몸을 드린다는 것은, 내 몸은 내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자기 몸을 하나님에게 드릴 인간은 없다. 또 드릴 수 있는 방법도 없다. 교회를 위해서 고생을 했다고 해도 그것은 교회를 위한 것이지 주님에게 몸을 드린 것은 아니다. 몸을 드린다는 것은 육신의 수고와 노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우리들의 수고를 담고 있기는 하지만 수고 자체가 드린다는 의미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을 주님에게 다시 돌려드린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몸은 오직 예수님의 몸 밖에 없다. 그렇다면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만 가능한 얘기이다.

구약의 제사는 대신 바쳐지는 제물의 몸으로 인해서 이스라엘의 죽어야 할 몸이 살았다는 것을 계시하는 제사였다. 그리고 그제야를 이루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이스라엘이 대신 죽는 제물의 몸을 보면서 내 몸은 대신 죽은 제물의 몸으로 인해서 살았다는 것을 배워야 했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제사였다. 하나님은 제사 자체를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대신 죽은 제물로 인해서 살아난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에 감사하며 나오는 이스라엘을 기뻐하셨던 것이다.

그렇다면 구약의 제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완성되었은즉 이제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를 봄으로서 우리의 몸이 어떤 것인가를 배워야 한다. 예수님의 대신 죽으심으로서 죽어야 몸이 살았다. 그가 바로 우리들이다.

그렇다면 우리 몸은 예수님이 피로 값 주고 사신 몸이다. 즉 주님으로 인해서 주어진 몸이기에 주님에게 돌려드리는 것이 마땅하다.

다시 말해서 '나의 생명도 몸도 주님으로부터 왔으니 주님의 것이다. 주님 마음대로 주님의 뜻대로 사용하시옵소서'라는 이것이 바로 주님에게 몸을 드리는 것이다. 이것이 거룩한 산 제사이다. 그리고 이것이 영적 예배이다.

2.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것은 무슨 뜻일까? (2절)

세상이 살아가는 모습을 따라가지 말라는 의미이다. 즉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오직 자기의 뜻을 최고로 여기며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 살아가는 세상을 따라가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가를 분별하기에 모든 관심을 두고 살아가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령에 의해서 새롭게 된 마음이다.

3.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은 무엇일까? (2절)

하나님의 뜻은 11장에서 말씀을 드린 대로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않은 가운데 가두어 두셔서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자비하심을 베푸시는 데 있다. 나는 하나님의 긍휼히 아니면 살 수 없는 자임을 알게 하시는 것이다. 자비를 베푸시고 자비하심을 다시 거두시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4.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은’ 성도의 삶은? (2절)

그래서 마음이 새롭게 된 사람은 자신의 의의 행위를 하나님에게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받은 긍휼과 자비하심을 감사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마음이 새롭게 된 자들이 드릴 수 있는 영적 예배이다. 이것을 우리 힘으로 드릴 수가 있을까? 오직 성령이 오심으로 가능한 예배이다. 그래서 영적 예배라고 말한다.

적용:

하나님은 영적 예배를 요구하신다.

주님은 일정한 시간에 모여서 드리는 종교적 의식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 몸을 드린 자로 살아가는 삶을 요구하신다.

자기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순종되기 위해서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해도 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산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영적 예배이다. 이것이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것이다. 육적 예배는 우리가 하는 종교의식이다 그러나 영적 예배는 성령님이 하시는 것이다.

우린 다만 주님의 사랑이 나를 붙들어서 천국으로 인도해 가신다는 것을 믿고 살아가면 된다. 이런 믿음으로 살아간다면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모두 주님의 일임을 잊지 않게 된다. 이것이 몸을 산 제사로 드린 것이 될 것이다. 모든 것이 주로부터 왔을 즉 주님에게 감사하고 살아가는 것이 곧 그리스도의 몸으로 살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