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묵상

하나님의 긍휼 - 로마서 9장 22~29절

차작가 2023. 12. 27. 13:37

하나님이 강퍅게 하실 자를 강퍅게 하신다고 할 때, 이것이 마치 하나님이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지을 수밖에 없도록 하시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다. 즉 하나님이 인간의 마음을 강퍅게 하셨기 때문에 인간이 죄를 짓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들이 인간을 심판의 자리로 밀어 넣으시는 하나님으로 오해하게 할 수 있다.

이러한 인간의 의문에 대해서 답하기를 긍휼히 여기시고 강퍅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권이라는 것이다. 전에도 말씀드리기를 인간에게 강퍅한 마음이 없었는데 하나님이 강퍅을 집어넣으셨다면 하나님은 인간을 죄짓게 하시는 분이시고 심판으로 밀어 넣는 분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간은 원래 강퍅한 인간이고 죄인이다. 애초에 죄인으로 태어나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이고 강퍅한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죄에 대한 책임을 하나님에게 돌릴 수 없다.

성경:

22절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23절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오

24절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25절 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26절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27절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

28절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고 속히 시행하시리라 하셨느니라

29절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두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해석:

1. 하나님은 왜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실까? (22절)

하나님이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이 있다'라고 하시니까 '그렇다면 이왕 멸할 것 빨리 멸해버리지 왜 그냥 놔두고 있는가?'라는 반발이 있을 수 있다.

하나님은 진노의 그릇에 대해서는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어떤 이들은 진노의 그릇에 대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하나님을 믿는 자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것이라고도 얘기하지만 본문의 내용상 그러한 생각은 잘못됐다. 왜냐하면 인간은 아무리 기다린다고 해도 그 생각을 스스로 바꾸거나 고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이미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에 대해서 오래 참으시는 것일까?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기대하지도 않으신다면 무엇을 기대하고 기다리시는 것일까? 그 이유는 진노의 그릇도 하나님이 쓰시고 있기 때문이다. 진노의 그릇을 통해서 하나님의 관용을 드러내시고, 긍휼의 그릇에 대해서는 긍휼의 그릇으로 부름받은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기 위해서이다. 즉 진노의 그릇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관용과 영광의 부요함을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겔 18:23절에 보면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라는 말씀이 있다. 또 겔 33:11절에도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라는 말씀도 있다.

앞서서 말씀드리기는 하나님은 진노의 그릇이 돌이킬 것을 기대하고 오래 참으시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에스겔의 말씀을 보면 그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분명히 하나님은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악인이 그 길에 돌이키는 것을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진노의 그릇이 돌이킬 것을 기대하고 오래 참으신다는 얘기가 아닐까?

하지만 하나님께서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돌이키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것은 다만 하나님의 마음이 이렇다는 것을 말씀하실 뿐이지 실제로 악인이 돌이킬 것을 기다리신다는 말씀이 아니다. 그 이유는 인간은 하나님의 기쁨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자질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러한 인간이 자기 기쁨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서 살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악인이 돌이키는 것이 하나님에게는 기쁨이지만 그러한 기대는 하지 않고 계신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2. 남은 자는 누구를 말하며 왜 남은 자만 구원을 얻을까? (27절)

사도 바울이 인용한 사 10:22-23절을 보면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훼멸이 작정되었음이라 이미 작정되었은즉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온 세계 중에 끝까지 행하시리라"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에서 이스라엘은 둘로 구분된다. 남은 자와 훼멸 되기로 작정된 자이다. 그리고 이미 작정되었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끝까지 행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이것이 28절의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 하셨느니라"라는 말씀의 의미이다. 훼멸하기로 작정하신 이스라엘 안에 남은 자를 작정하시고 그들을 이끌어 내시는 것이다. 이들 남은 자가 바로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약속의 자녀는 인간의 신앙에 의해서 생성되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에 의해서 된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이러한 말들이 온전히 들려질 리가 없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훼멸하기로 작정하셨다는 말이 그들에게 이해될 리가 없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를 훼멸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며 분노하는 것이 이스라엘로서 당연한 반응이다. 이스라엘이 몰랐던 것은 구원은 오직 여호와로 인해서 주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단지 이스라엘이라는 혈통 안에서 구원이 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혈통을 보존하고 유지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민족으로서의 증표인 율법과 의식을 행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사야의 입으로부터 '남은 자'라고 하는 충격적인 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

사도 바울이 이사야의 말을 인용하면서 남은 자만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사도 바울은 앞에서 계속 강조했던 말에 대해서 구약 선지자의 말을 그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시는 것은 신약에 와서 새롭게 등장한 구원 방식이 아니라 이미 구약 때문에 선지자들을 통해서 예언된 사실이라는 것이다. 즉 남은 자만 구원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주어진 사실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약속 앞에서 우리가 무슨 할 말이 있느냐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남은 자만 구원하시겠다는데 거기에 대해서 우리들이 무슨 불만을 내세울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남은 자란 인간들로 하여금 남은 자에 포함되도록 힘쓸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모든 노력과 애씀을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의 작정으로 된다는 것만 바라볼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3.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의 뜻은? (29절)

29절에 보면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시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라고 말한다. 남은 자 역시 그들의 신앙이 좋아서 남은 자로 작정된 것이 아니라 그들 안에 하나님이 씨를 남겨 두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남은 자냐 아니냐는 것은 속에 하나님이 남겨 주신 씨가 있느냐 없느냐로 결정된다. 만약 씨가 없다면 그가 아무리 신앙이 좋아 보인 것 같다고 해도 그는 소돔이고 고모라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라는 말은 하나님이 씨를 남겨 두지 않았다면 우리가 바로 소돔이고 고모라와 같은 꼴을 당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모든 것이 하나님이 남겨 두신 씨 덕분이지 결코 우리가 뭔가 잘해서 이루어낸 대가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행실과 신앙을 보고 부르시거나 불쌍히 여기신 것이 아니다. 다만 하나님의 작정하심이었음을 우리가 살아가는 날 동안은 추호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귀한 분은 예수님이시다.

이미 가장 귀한 것이 나에게 주어져 있다는 넉넉함으로 인해서 이 땅의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진심으로 주님을 발견한 자로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지, 주님이 바로 나의 생수 되시는 분임을 알게 된 자로서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지, 주님이 내 인생에서 가장 귀한 분이시고 주님 때문에 내 인생은 이미 성공한 분임을 깨달은 신자로서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오늘 다시 한번 조용히 확인해 보길 바란다. 그리고 남은 자는 오직 그 속에 주님이 계시는 분임을 알고, 과연 내 속에 주님이 계시는지 우리의 삶의 하나하나를 통해서 스스로의 마음을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적용:

이 땅에서 우리는 ‘남은 자’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하나님이 남겨 두신 씨로 인해서 남은 자가 되었다면, 남은 자로서 감사해야 하는 것은 오직 씨에 대한 것 밖에 없다. 우리 인생에서 하나님이 남겨두신 약속의 씨를 빼버린다면 우린 아무것도 아닌, 다만 멸망당할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그 어떠한 거룩으로 옷 입고 있고 그 어떠한 행실과 업적을 쌓아두고 있다고 할지라도 씨가 아니라면 우리는 멸망당할 존재들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실과 신앙을 보고 부르시거나 불쌍히 여기신 것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의 작정하심이었음을 감사드린다.

주님이 바로 나의 생수 되시는 분임을 알게 된 자로서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지, 주님이 내 인생에서 가장 귀한 분이시고 주님 때문에 내 인생은 이미 성공한 분임을 깨달은 신자로서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오늘 다시 한번 조용히 확인해 본다. 그리고 남은 자는 오직 그 속에 주님이 계시는 분임을 알고, 과연 내 속에 주님이 계시는지 나의 삶을 통해서 스스로의 마음을 확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