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묵상

하나님으로 말미암음 - 로마서 9장 14~21절

차작가 2023. 12. 27. 13:36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시고 미워하시는 것은 인간의 행위를 근거로 하지 않는다.

인간의 상식은 열심히 한 자에게 상을 주고 게을리 한자는 벌을 주는 것이다. 착한 일을 한 자를 사랑하고 나쁜 일을 한 자는 미워하는 것이 상식이다. 인간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자연스럽게 선악에 의한 상벌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태어나기도 전에 사랑할 자 미워할 자를 결정했다고 말한다. 열심히 십일조하고 기도하고 봉사해서 복을 받을 줄 알았는데 그런 행위를 하기 이전에 이미 복을 받을 자와 받지 못할 자로 결정되었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

14절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15절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16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17절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절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19절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

20절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21절 토기장이 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해석:

1.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라는 뜻은? (16절)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우리가 원한다고 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또 사랑을 받기 위해서 애쓴다고 해서 주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사람들은 축복의 근거를 자신의 손에 쥐고 있으려고 한다. 내가 못하면 못한 것만큼 벌을 받고 하면 한 것만큼 보상을 받겠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축복이 인간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손에 달려있다는 것에 대해서 마음 불편해한다. 축복의 근거가 자신에게 있어야 자기 행동을 보고 안심할 수 있는데, 하나님께 달려있다고 해버리면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해서 축복을 확인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복음은 우리의 상식과 하나님의 원칙이 충돌되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상식으로 자리함으로써 비로소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 왜 참된 하나님이신가를 알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원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달음박질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나를 사랑할 자로 부러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갈 뿐이다. 우리의 의지와 애씀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자 하신 자를 사랑하신 사랑으로 행동하며 살아가는 것이 복음을 바로 아는 신자의 도리이다.

2. 하나님이 바로를 세우시고 그를 강퍅게 하셨다고 말씀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야 할까? (18절)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바로를 세우시고 그를 강퍅게 하셨다고 말씀한다. 이렇게 말하면 우리에게는 한 가지 의문이 들 수 있다.

하나님이 바로를 강퍅하게 하신 것이라면 바로의 강퍅한 마음은 하나님이 집어넣으신 것인가? 이런 의문이 들 것이다. 물론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에 강퍅을 집어넣으신 것이 아니다. 그렇게 되면 바로가 강퍅하게 된 이유는 하나님에게 있지 바로에게 있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하게 하신다는 말씀은 무슨 의미일까?

출 4:21-23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애굽으로 돌아가거든 내가 네 손에 준 이적을 바로 앞에서 다 행하라 그러나 내가 그의 마음을 강퍅게 한즉 그가 백성을 놓지 아니하리니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놓아서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놓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라고 말씀한다. 이 말씀을 보면 모세가 바로에게 가서 이적을 행해도 바로가 이스라엘을 놓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강퍅게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했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 출 7:13절에 보면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강퍅하여 그들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라고 말한다. 모세가 바로를 찾아가서 지팡이를 던지자 뱀이 된다. 그런데 바로가 애굽의 술객들을 부르자 그들도 지팡이가 뱀이 되게 한다. 그러자 아론의 지팡이가 술객들의 지팡이를 삼켰는데도 불구하고 바로의 마음은 강퍅하다. 그 이유는 우리도 지팡이를 뱀으로 만들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했다는 것은 인간을 의지할 수 있는 사건들을 바로 앞에서 일으키는 것이다. 술객들이 지팡이를 뱀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모세를 무시한 것이다. 이것이 강퍅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지금도 하나님은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하게 하신다. 예를 들어서 교회에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사람을 보내신다. 그럴 때 하나님의 사랑을 입지 못한 자들은 마음이 강퍅해진다. 즉 하나님을 보기보다는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을 바라보고 그를 힘 있는 자로 높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게 하시는 하나님의 일이다. 누군가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가 열심히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의 눈에 세상 것이 보이게 하시고 세상 힘이 보이게 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닌 세상을 의지하게 하시는 것, 이것이 강퍅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그 마음을 강퍅게 한 인간들은 오직 세상을 보고 살아간다. 세상만 보고 살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와도 세상 것을 구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그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죽어야 할 자가 하나님의 긍휼로 살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이다. 하나님의 긍휼 앞에서 내세울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보는 겸손으로 살아가야 한다.

3.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18절)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할 때, 인간 편에서는 '누구는 구원하고 누구는 지옥 보내는가?'라고 불평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랑할 자와 미워할 자를 정해 놓으신 것은 애당초 사랑받을 자도 미움받을 자도 아닌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과 미움으로 갈라놓으신 것이 아니다. 만약 사랑도 미움도 아닌 중간 위치에 있는 것이 인간이라면 '왜 저 사람은 사랑하면서 나는 미워하는가?'라는 불평을 할 수가 있다. 더군다나 사람의 행실도 보지 않고 하나님 마음대로 사랑할 자와 미워할 자를 정해 놨다는 것은 얼마든지 하나님의 불의함으로 보일 수가 있다.

그러나 인간은 중간 위치에 있던 자가 아니다. 즉 사랑도 미움이 아닌 위치에 있다가 착한 일을 하면 사랑의 영역으로 부름받고, 나쁜 일을 하면 미움의 영역으로 밀쳐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란 원래 하나님의 원수 된 자다.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든 자가 하나님의 원수로 태어났고, 따라서 모두가 지옥 가는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본질이다. 모두가 지옥 가는 존재인데 그중에서 누군가를 긍휼히 여길 자로 부르시고 나머지는 그대로 지옥 가도록 놔두시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는 긍휼히 여기시려면 다 긍휼히 여겨야지 왜 누구는 긍휼히 여기면서 누구는 그냥 지옥 가도록 놔두시느냐 고 반문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반문에 대해서 하나님은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라고 답을 내리신다.

인간은 원래가 지옥 가야 할 존재이다. 하나님이 사랑을 안 해줘서 그것 때문에 지옥 가게 된 것이 아니라 날 때부터 죄인으로 나기 때문에 이미 지옥 갈 자로 태어난 것이다. 그런데 그중에서 사랑할 자를 따로 정하신 것 이것이 하나님의 긍휼이다.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은 심판 속에서 자기 백성을 건지시는 것으로 증거 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로를 강퍅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능력과 이름을 온 땅에 전파하시는 것이다.

적용: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는 사랑을 받은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받은 사랑과 긍휼과 자비를 세상에 증거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랑할 자로 부르신 자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사랑할 자를 정하시고 부르신 것은 그들을 천국 보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사랑할 자로 부르신 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해서 세상에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증거하도록 하시겠다는 것이다.

믿음은 하나님이 부르셨고 긍휼히 여기고자 하셨기 때문에 주어진 마음이다. 그래서 믿음이 있는 자는 하나님이 불러주시고 긍휼히 여기심에 대해서 감사하게 된다. 그래서 긍휼을 아는 신자는 언제나 긍휼히 여기심과 사랑하심만을 자랑하며 살아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