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묵상

이스라엘을 향한 바울의 마음과 이스라엘의 특권 - 로마서 9장 1~5절

차작가 2023. 12. 27. 13:33

1절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2절

3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4절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5절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해석:

1. 바울에게 있는 큰 근심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은 무엇이었을까? (1절)

바울의 근심과 고통은 형제, 골육 친척으로 인한 근심이고 고통이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형제 골육 친척들이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것에 대한 근심이고 고통이었다. 그 근심과 고통이 어느 정도였느냐면 마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 것 같은 근심과 고통이었다. 이것이 형제를 향한 바울의 마음이다.

우린 오늘 참으로 신실한 신앙인이었던 사도 바울의 형제를 향한 마음을 대하면서 우리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남을 탓하기 전에 내가 바로 사랑이 없는 자이고 형제를 마음에 두지 않고 살았던 자라는 것을 자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에게 사도 바울은 형제를 향한 자신의 고통과 근심을 말하면서 오늘 우리의 사랑 없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에게 끊어졌다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살아가는 형제들에게 저주에 처하고 그리스도에게 끊어진 소망이 없는 인생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가를 자신의 마음으로 증거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복음을 아는 자로서 교회를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입장을 말해주는 것이다.

2. 이스라엘이 오해한 것은 무엇이며 우리가 배울 점은? (4절)

이스라엘이 오해했던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으로 구원받은 줄로 알았다. 마치 교회가 주일 성소를 가지고 있고, 십일조를 가지고 있고, 기도하고 전도하는 그런 행위들을 가지고 있으면 교회가 되고 구원받는 자가 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과 똑같다. 결국 이스라엘 역시 이스라엘이 죽어야 그리스도가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이 죽는다는 것은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포기하는 것이다.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있는 것을 자랑하지 말고 내세우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 것들은 구원과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단이 교단의 전통을 자랑하고 교단에 소속된 교회의 수를 자랑하고 과거의 신앙 행위를 자랑하는 이런 모든 것이 예수를 죽이는 것이다. 그러면서 입으로는 주님의 은혜라고 한다. 은혜로 이렇게 커졌다는 것이다. 은혜가 주어진 증거를 외적인 증가를 통해서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진심으로 예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아는 자라면 결코 외적인 것을 은혜의 결과로 내세우지 않는다. 다만 그리스도의 사랑을 안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 은혜를 말하고 은혜에 감사하게 된다. 이것이 진심으로 살아있는 교회고 신자이다. 그래서 성령이 우리에게 오심으로서 우리의 죄에 대해서 책망하시는 이유도 우리를 죽이시고 대신 그리스도를 살게 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만 높임 받고 그리스도만 찬양되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죽이시는 것이다. 내가 죽어야 예수가 산다. 교회가 죽어야 예수가 산다. 교단이 죽어야 예수가 산다. 교회가 죽어야 예수님이 산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다는 고통이 얼마나 큰가를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얼마든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적용:

많은 신자들이 교회에 오는 목적을 겨우 예배드리고 설교를 듣는 것으로 여겨버린다.

그런데 오늘 본문과 같이 바울의 마음이라면 틀림없이 주위를 둘러보면서 누가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지 못했는가를 살필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가를 마음으로 전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복음의 도구로 사는 신자에게서 보이는 태도이다.

사도 바울의 형제를 향한 근심과 고통은 그들의 처지와 자신의 처지를 일치시킨 고통이고 근심이었다.

'나는 복음을 아니까 구원받았다'라는 입장에서 형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 역시 저주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 처지로 생각했을 때의 고통으로 형제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시고 우리를 택하셔서 믿음을 선물로 주시고 주님의 은혜를 알게 하셨다는 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깊은 감사드린다. 그리고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는 고통이 어떠함을 아는 자로서 언제나 고통 당하는 자로 존재하기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