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묵상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 로마서 8장 31~39절

차작가 2023. 12. 26. 13:22

미리 예정하셨다는 것은 기능적인 의미가 있다. 즉 무엇을 위해서 미리 예정하셨느냐는 것이다. 그 이유가 29절에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 되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으로 밝혀진다. 즉 미리 정하시고 부르신 것은 예수님을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 되게 하기 위해 서지 우리의 구원을 목적으로 한 일이 아니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서 미리 정하신 것도 우리의 구원이 기초가 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기초가 된 것이고, 우리를 부르신 것도 예수님 때문에 부르신 것이고, 의롭게 된 것도 예수님의 의가 우리에게 주어져서 의롭게 된 것이고, 영화롭게 된 것도 맏아들 되시는 예수님이 영광스럽게 되었기 때문에 그 영광이 우리에게 주어져서 영화롭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 되게 하시기 위해서 미리 우리를 정하시고 불렀다는 것은, 우리가 부름을 입고 신자되고 교회로 나오게 된 모든 이유와 목적이 오직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택하시고 부르신 것은 오직 예수님 중심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 마음을 따라 살아가는 자로 택하신 것이다.

즉 예수님만 영화롭게 하라고 택하셨다는 것이다.

성경:

31절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오

32절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33절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오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절 누가 정죄하리오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절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오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절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절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절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절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해석:

1.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셨다’는 의미는? (32절)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 주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전부를 인간에게 쏟아놓으신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 땅에 하나님이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 주신 아들과 비교할만한 가치 있는 것이 있을까? 하나님의 아들과 비교될 가치 있는 것은 전혀 없다. 어떤 목사는 '하나님은 자기 아들도 아끼지 아니 하시고 우리에게 내어 주셨는데 왜 여러분은 자기 것을 아끼려고 하고 하나님께 내어놓지를 않는가'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끼셨던 아들과 우리가 아끼고 있는 돈이 서로 비교가 될까? 지구상에 있는 돈을 다 끌어다가 바친다고 해도 하나님이 아끼셨던 아들과는 비교할 수 없고 바꿀 수도 없다. 그런데 어떻게 예수님과 돈을 비교할 수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잘하면 상을 주고 못하면 벌을 준다는 말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내어 놓으셨다는 것에 대해서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 놓으셨는데, 그 대가로 인간에게 요구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택하신 것은 아들을 내어준 댓가로서 하나님을 위해서 일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라고 택하신 것이다.

2.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의미는? (32절)

예수님을 주시고 예수님과 함께 병 고치고 방언하고 귀신 쫓는 힘을 주셨다는 의미가 아니다. 아들과 함께 주어지는 은사는 믿음이다. 다시 말해서 아들을 보내심과 함께 아들을 믿고 아들을 영화롭게 하고 아들을 기뻐하는 능력까지 함께 주셨다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시고 인간은 단지 받아 누리는 존재이다. 받아 누리는 존재로 살아라고 우리를 택하셔서 부르셨다.

사도 바울도 '그런즉 우리가 이 일에 대해서 무슨 말 하리오'라고 말했다. 하나님은 아낌없이 주시는 분이시고, 우린 단지 받아 누리는 자이다. 아들까지 아낌없이 내어 주시고 그 아들을 믿고 의지하고 영화롭게 하는 믿음이 능력까지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해야 한다. 이런 은혜와 사랑 안에 살게 된 자는 오직 택한 자밖에 없다. 신자로 부르신 것에 더욱 감사하시면서 인생의 모든 것을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와 함께 선 자리에서 돌아봐야 한다.

3. 바울이 ‘누가 고발하고 정죄하겠냐’라고 말하는 의도는? (33,34절)

하나님이 택하시고 의롭다 하신 자를 고발한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선택이 실패했다는 것을 고발하는 것이다. 즉 인간의 실수와 허물을 들고 나와서 '이런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가?'를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교회에서 그런 일이 많이 있다. 누군가에게서 실수와 허물이 보이면 가차 없이 그 믿음을 의심한다. 믿음이 있다면 그런 행동을 안 할 것인데 믿음이 없어서 그랬다는 식으로 판단한다. 이와 같이 인간의 행동을 선과 악으로 구분을 해서 선한 행동을 하는 신자는 믿음이 있는 신자이고, 악한 행동을 하는 신자는 믿음이 없는 신자로 판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택하시고 의롭다 하신 자를 누가 송사하느냐?'라고 하셨다.

이와 같이 모든 이가 죄인인데 누가 누구를 판단하고 송사하고 정죄할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하셨는데, 과연 그리스도의 의보다 더 강한 의를 소유한 자가 있을까? 세상에서 착한 사람을 다 모아놓았다고 해도 예수님의 피 앞에서는 부끄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의이다. 그런데 감히 누가 누구를 정죄할 수 있을까?

적용:

우리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가 많다. 그럴 때 '하나님이 과연 나를 사랑하시는가?'하고 의심이 들 때가 있다. 사랑하신다면 나를 이렇게 대우하실 수가 없다고 생각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생각을 지우기 위해서 하나님은 신자의 모습을 말씀하셨다.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고 도살할 양처럼 여김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으로도 끊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있기에 흔들리지 않는다. 내 힘이 아니라 사랑의 능력이 이긴다.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시고,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신 그 사랑으로 우리가 구원받는 자가 되었다. 이 사랑을 무엇이 끊을 수 있을까? 무엇으로 끊어지지 않는 사랑의 관계 속에 있음을 아는 것이 믿음이고 그 믿음으로 사는 신자는 어떤 처지에서도 항상 당당할 수 있다. 첫 담임목회지에서 약 7년가량 사역을 하다가 사역 자체를 그만두게 되었다. 자의가 아니라 가슴 아프게도 교회에서 흔히 말하는 목사를 내 쫓아서 그만두게 되었다. 믿지 않는 가정에서 자랐고 집안의 첫 열매가 되었고 사역을 한다고 했을 때 당연히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었다. 그래서 신학교 다니는 내내 부모님은 연락을 끊고 사셨다. 대략 ... 8년을 전화를 받지 않으셨었다.

목회를 그만 두자 내 머릿속에는 정죄의 소리가 나를 괴롭혔다." 그래 .. 잘 한다 .. 엄마 말 안 듣고 목사 한다고 하더니... 너의 예수님이 너에게 준 것이 교회에서 쫓겨나는 거야? 교회 다닌다는 사람들이 도대체 너에게 왜 그러는데... 너의 예수님은 왜 가만히 있는데.. 너의 하나님은 살아 계신 거니?" 아마도 엄마가 이렇게 나에게 말하겠지.. 하는 내 마음속의 정죄의 소리였다.

필라에 우리의 일을 모르는 사람이 없기에 아무도 우리를 정죄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교회가 문제가 있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니 노회에서도 장로 직분을 취소해야 된다는 소리를 높이고.. 정식 회의에서 우리 교회 문제가 의논될 정도였었다. 그러나 이 모든 걸 절에 다니시는 부모님께 설명한다는 것이 굉장히 힘든 부분이었다. 설명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내 부모님도 나에게는 복음을 전해야 하는 양이기 때문이다.

" 엄마 교회 장로이긴 한데... 예수님을 안 믿고.. 아니면 잘못 믿는 거지.. "라고 말할까? 결국은 포기했다.

부모님도 더 이상 묻질 않으셨고.. 내심 또 한다고 할까 봐 걱정이 되시는지 목회를 안 하는 걸 좋아하는 눈치였다.

딸이 우울증으로 공황장애로 힘든 시간을 보내니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도 않으셨을 것이다.

그리고 내 속에 일어나는 고난에 대한 불평과 정죄를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 왜 나는 복도 없이 저런 교회를 만났을까요? 왜 저였나요? 어떻게 저런 사람들이 교인이라고요? 장로라고요? 권사라고요? 저게 사람입니까? 악마이지.." 이런 생각들이 늘 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것을 씻어 내는데 꼬박 2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나를 사랑하지 않으신 것 같은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사랑하시고... 그들의 악함을 나를 통해서 드러내신 것도 이젠 감사하다. 하나님은 내가 정죄하지 않아도 그들을 친히 벌하시기도 하셨다.

나도 시간이 필요했다. 하나님이 어떤 환경 속에서도 나를 사랑하신다는 신뢰의 회복을 위해서 또 고난을 통해서 더 단단해지는 믿음을 위해서도 모두 필요한 시간이었었다. 그래서 지금은 감사하다.

나도 정죄할 수 없다. 나도 죄인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걸 인정하고 깨닫는데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물론 이것으로 끝나는 레슨은 아니다. 여전히 다른 문제로 나는 더 하나님을 알아가게 될 것이므.....

2년 동안 주위의 목사님들께서 여기저기 불러 주시기도 하셨고 교회의 요청도 있었지만 모든 걸 내려놓고 쉬는데 집중했다.

경제적으론 여유롭지 않았지만 굶지도 않고 살게 하셨다.

쉬면서 새로운 꿈도 꾸고 목표도 생기게 되었다. 그러니 주안에서 헛된 고난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