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묵상

고난, 기다림 그리고 소망 - 로마서 8장 18~25절

차작가 2023. 12. 26. 13:18

18절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19절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0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절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절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23절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24절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오

25절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해석:

1. 현재의 고난은 무엇을 의미할까? (18절)

현재의 고난을 모르고서는 18절의 말씀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씀이 되고 만다. 다만 장차 우리에게 고난이 올 때 나중에 있을 영광을 생각하고 이기자는 권면에 지나지 않게 된다. 하지만 본문은 나중의 고난을 미리 대비하는 말씀이 아니다. 현재의 고난이다. 오늘의 고난이다. 그런데 지금 내가 어떤 고난을 받고 있는지 아리송해 한다면 본문은 아무런 의미 없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고난이란 몸이 고생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가신 삶의 원칙을 따라가게 된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유혹 속에 있는 것을 고난이라고 한다.

현재의 고난은 오늘 나의 삶에 예수님의 삶의 원칙과 기준이 적용되어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삶의 원칙은 무엇일까? 그것은 예수님의 공생애에 가장 먼저 있었던 사건을 보면 알 수 있다. 성령이 예수님을 이끌었던 가장 첫 번째의 일은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것이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세 가지의 유혹을 받았다. 그 유혹들은 하나같이 세상의 기존 세력에 대해서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즉 세상의 세력과 단절이 아니라 함께 질서를 이루어 갈 것을 요구하는 유혹이었다. 마귀가 예수님에게 한 요구는 '우리의 질서에 맞게 처신을 하라'라는 것이었다.

첫 번째는 돌을 떡이 되게 하라는 것이다. 떡이었다. 즉 경제적인 문제이다. 마귀의 지배 아래 있는 세상의 질서와 체제는 떡을 위해서 사는 것이다.

두 번째는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도 천사들이 지켜줘서 다치지 않는다는 유혹이었다. 두 번째 유혹은 하나님을 세상에서의 기적과 환경을 통해서 확인하는 것이다. 세상이 가지고 있는 신에 대한 상식은 신은 우리를 지키시고 돌보신다는 것이다. 나에게 어떤 일이 있다고 해도 신이 그 일을 해결해 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확인하고자 할 때 모든 기준을 자기에게 두는 것이다.

세 번째는 천하만국과 영광을 보여주면서 나에게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겠다는 유혹이다.

세상은 오직 자기 영광을 위해서 산다. 자기 이름을 높이고 세상으로부터 환호와 박수받기를 원하며 살아간다. 신을 찾는 것도 결국 자기 이름을 위해서이다. 이러한 세상에 예수님은 내 이름이나 영광은 관심 없고 오직 하나님만 경배할 뿐이라고 말씀하셨다. 즉 자기 이름을 높이고 자기 영광에 관심 두지 말고 하나님께 굴복하고 하나님만 섬기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삶의 원칙은 이름이 유명하느냐 유명하지 않느냐 세상 것을 얼마나 가졌느냐 못 가졌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재의 자리에서 오직 하나님만 섬기고 있는가를 중요하게 여기셨던 것이다. 마귀의 유혹은 지금 세상의 질서와 체제에 합류하라는 것이다.

'지금 내가 배부른 것이 장차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내가 내 배부름을 위해서 살수 있는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고난이다. 이런 고난이 없다면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라고 하기에 곤란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주님은 하나님의 자녀의 삶을 이 고난으로 채워가실 것이고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라면 필히 그리스도께서 사셨던 고난의 삶의 원칙을 따라갈 것이기 때문이다.

2. 피조물들이 하루빨리라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이유는 무엇일까? (19, 21절)

20절에 피조물들이 허무한 데 굴복해 있기 때문에 빠른 회복을 원하기 때문에.

3. ‘피조물들이 허무한 데 굴복한다’는 의미는? (20절)

온 세상은 하나님은 저주 아래 있다. 이것은 창세기 3장에 나오는 인간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을 말한다. 마 11:28절에 보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고 말씀한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세상 속에서 쉼터가 되어주시겠다는 뜻이 아니다. 즉 세상에 의한 탄식과 괴로움을 없애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떠나서 예수께로 나오는 것이 쉼이라는 것이다.

4.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았다’는 의미는? (23절)

처음 익은 열매가 성령이다. 추수 전에 한 줌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바침으로 모든 소유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다는 믿음의 고백과 더 풍성한 수확을 소원하는 것이다.

성령을 받은 것은 이제 시작이라는 뜻이 포함된다.

Believers had experienced redemption (Romans 3:24) and adoption (Romans 8:15), but still awaited the fullness of that experience at the resurrection of their bodies by the Spirit (Romans 8:11).Bible Background Commentary - The IVP Bible Background Commentary – New Testament.

5. ‘(우리가 이런)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다’는 의미는? (24절)

구원이 순간적인 회심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구원은 양자 도리와 우리의 몸의 속량을 기다리는 소망으로 인해 완성된다는 의미이다

적용: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까? (18절, 23절)

기다린다는 것에는 '세상을 떠난다'라는 뜻이 담겨 있다. 육신이 세상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의 탄식과 괴로움을 통해서 더욱더 몸의 구속을 기다리고 사는 것을 말한다. 희망을 세상에 두고 사는 것이 아니라 본문에서처럼 장차 나타날 영광에 두고, 몸의 구속에 두고 사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우리들은 세상에서의 탄식과 한숨을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찾는다. 이것이 바로 기다림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지 잠시 기다리고 있는 장소인 세상에 모든 삶의 목적을 둬버리는 것이다. 세상에서의 삶이 전부고 천국은 보너스로 여긴다. 그러나 신자에게 있어서는 천국이 전부이고 세상의 삶은 잠시 머무르는 장소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에게 소망은 장차 주어질 영광, 몸의 구속이다. 이 날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은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천국을 기다리는 삶을 살게 하시는 것은, 세상에 대해서 '세상은 떠나야 할 곳'임을 보여주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즉 우리를 천국 보내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라 천국을 기다리는 신자를 통해서 세상은 심판을 받아야 하고 망해야 할 곳임을 증거하시는 것이다.

천국을 기다리라는 것은 세상에 소망을 두지 말라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신자는 천국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는 세상을 떠나서 천국 갈 자다'는 것을 확실히 하며 살아가면 된다.

세상엔 소망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대해 탄식할 수밖에 없다. 세상에 대해 탄식하며 몸의 구속을 기다리는 그 기다림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다시 한번 돌아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