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절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절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 하사
4절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유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5절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절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절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9절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0절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11절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해석:
1.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란? (2절)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힘)’이다.
2. ‘율법의 요구’는 무엇인가? (4절)
율법의 요구라는 것을 율법을 실천하는 것으로 이해하는데 문제가 있다. 율법이 무엇이며 왜 주어졌는가를 먼저 알자. 이것을 모르고서 율법을 이야기하면 결국 우리의 생각과 상식이 앞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롬 3:19-20절을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라고 말한다. 이것으로 율법이 왜 주어졌는가에 대한 답을 분명히 내릴 수 있다. 율법이 주어진 이유는 실천이 목적이 아니라 죄를 깨닫게 하는 것에 있다.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인간은 자기 행함을 통해서 의를 생산할 수 없음을 분명히 알 때 율법 외에 한 의를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애당초 율법은 율법 외에 한 의를 바라보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사람들은 성령을 받으면 의를 행할 수 있는 인간으로 달라질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아무리 성령을 받고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도 인간에게서 의가 나올 가능성은 없다. 만약 신자가 그리스도를 알고 나서 의를 행할 자질이 발생한다면 사도 바울이 무엇 때문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는 탄식을 했겠을까? 그리스도를 믿고 안 믿고 와 상관없이 인간은 변함없는 죄인이고, 그 죄에 매어 사는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에 탄식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자에게서 달라짐이 아예 없는 것이 아니다. 분명히 예수를 믿은 자와 믿지 않은 자의 차이점이 있다. 그러나 그 차이점은 의를 행하는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 거듭난 것과 거듭나지 않은 것의 차이이다. 거듭났다는 것은 새로운 마음이 창조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새로운 마음이란 성령의 마음이고, 그 마음으로 사는 것이 영을 좇아 사는 것이다.
이처럼 영을 좇아 사는 자의 달라짐은 자신의 의를 포기함으로써 나타난다. 따라서 인간이 변했다는 것은 행동의 변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의의 자질을 포기하지 못한 상태에서 완전히 포기한 상태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자신의 의의 자질을 포기했기 때문에 하늘에서 주어진 한 의를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율법이 요구하는 것이다.
법이 요구하는 바가 무엇일까? 흠 없는 완벽한 의이다. 이것이 우리를 난처하게 한다. 율법이 요구하는 것은 어설프게 의를 흉내 내는 정도가 아니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닌 완벽이다. 율법이 요구하는 것은 주일을 성수하라는 것도 아니고, 바르게 살아라는 것도 아니고, 기도하는 신자가 되라는 것도 아니다. 율법은 완벽한 의를 요구할 뿐이다. 하늘의 의를 요구하는 것이다. 의는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없다. 세상에 의란 없다.
인간이 의를 만들어 낼 수 없기에 하나님은 하늘에서 의가 되시는 분을 보낸 것이다. 그리고 그분을 죄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서 죄있는 자가 져야 할 짐을 지게 하심으로서 인간들이 죄를 지적하시고, 이제는 육신으로 살지 말고 영으로 살아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영으로 사는 것은 성령의 마음으로 사는 것이고, 성령이 있는 마음은 자기 죄를 알고 자기 의를 포기하고 하늘의 의를 의지하고 사는 마음이다.
적용:
1: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삶’을 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스도 안에서 산다는 것은, 이미 완성된 인생을 사는 것이다.
자유자이기 때문에 세상 것에 매이지 않는다.
지금 나의 마음을 누르고 있는 그것이 무엇이든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모든 것을 이미 얻은 자로 다시금 바라봐야 한다. 쓸데없는 것에 집착하고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사랑과 은혜로 우리를 붙드신 예수님을 기뻐하고 감사해야 한다.
2: 그리스도안에 있는 성도에게서 보이는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진 모습은 무엇일까? 그것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해서 자신의 죄를 알고 죄의 세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을 탄식하며 하늘의 의로 오신 예수님만 의지하는 것이다. 이것이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진 신자의 모습이다.
이것을 해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라고 묻는 것은 아직까지 육신에 매어있다는 것이다. 자기 행함을 통해서 의를 이루고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켜 보려는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신자에게 행함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요구한다. 믿음이 있으니까 행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은 육으로 그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믿음은 행함을 동반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포기를 동반한다. 인간의 의에 대해서 포기하고 자신의 행함을 의지하지 않고 살아갈 때 그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이것이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진 신자의 삶이다.
3: 성령이 거하는 성도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그리스도의 영이 거한 사람은 자신을 죽어야 할 자로 여기게 되고, 죽어야 할 내가 그리스도의 의로 인해서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이 성령이 함께 한 증거이다. 성령이 임했다는 것은 인간에게 어떤 초월적인 능력과 색다른 마음과 감정을 가져다주었다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성령이 임함으로써 알 수 없었던 것을 알게 되는데, 그것은 '나는 죽어야 할 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죽어야 할 내가 그리스도의의 때문에 산 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아는 것이 성령이 임한 증거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앞에서는 자신의 의를 내세울 수 없다, 오직 예수님의 은혜만 말할 뿐이다. 지금도 성령님이 임하실 때를 기억한다. 직장을 다니고 있을 때 집에 오면 대부분의 시간을 기도하는 시간으로 보냈었었다. 퇴근하고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난 뒤 기도를 시작하면 보통 4시간에서 길게는 6시간 이 넘게 기도하곤 했었다. 그때 성령님이 임하셨고 내가 얼마나 벌레보다 못한 죄인인지 깨닫게 하셨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숨을 곳이 있다면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마음에 몸을 바짝 엎드렸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 당시 주위 사람들에게 평판이 좋은 사람이었고 신앙심이 좋은 교회 선생님이었고 큰 말썽 없이 자기 일을 잘 개척해낸 딸이기도 했었다. 늘 나는 주위에서 착하다는 소릴 듣고 살았었다. 그래서 내가 죄인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살았었다. " 이 정도면 모법적인 사람이지..." 하는 착각 속에 살았었다. 그러나 내가 죄인이며 먼지보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생각이 들자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그때의 회개가 지금도 생생하다. 율법은 우리가 도저히 지킬 수 없는 법이다. 단지 율법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고 한 개도 완벽하게 지킬 힘이 없다는 걸 인정하게 하는 것뿐이다. 이것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예수님이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 주시고 구원해 주신 주님의 피로산 사랑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게 내가 잘나서가 아니고 내가 노력해서도 아닌 성령님의 인도하심이다.
그때 비로소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도 알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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