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묵상

손바닥 묵상 1 - 갈라디아서 묵상

차작가 2024. 1. 11. 11:58

갈라디아서는 6장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책이지만 메시지는 강한 책이다.

갈라디아서에서 강조하는 것은 바른 복음이다.

복음에 뭔가를 더하는 것은 다른 복음임을 말하고 있다.

바나바와 바울이 첫 선교여행에서 새운 갈라디아 교회는 바울에게는 아주 특별했다.

그러나 바울의 사도권이 논란이 되고 거짓 교사들이 오직 맏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게 말이 안 된다며 그 위에 할례를 더하는 다른 복음을 전하자

바울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걸 다시 한번 강조하며 그 위에 다른 걸 더한다면 다른 복음이라고 갈라디아서에서 말하고 있다.

이 문제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교회에서 공공연하게 할례와 같은 건 아니지만 행위를 강조한다든지 말씀을 교묘하게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한다든지

요즘과 같은 시대에는 신천지나 그밖에 다른 이단도 있기 때문이다.

1: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1: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1: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1: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온 마음으로 복음을 전했지만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에 쉽게 넘어가는 갈라디아 교회를 보며 바울은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말하고 있다.

자신이 복음을 전하는 것은 사람에게 인정 받으려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 인정 받으려는 것도 아니며 사람에게 잘 보이려는 것도 아니며

만약 그런 마음으로 복음을 전했다면 자신은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에게 좋게 하랴"라는 영어성경으로 보면

Am I now trying to win the approval~라고 쓰여있는데 좋게는 인정받는다고 읽으면 이해하기가 쉽다.

최근에 특별새벽 기도회와 신년 부흥회가 있었다.

새벽 기도회를 집에서 드리는데 몇 번 듣다가 마음이 상해서 더 이상 듣지 않는 일이 있었다.

하나님 말씀을 수단화 시켜 선포한다는 느낌이 처음부터 들었었기 때문이다.

목사님께서 "교회가 잘 돼야 가정이 잘 된다"라고 말씀하시는데 무엇 때문에 저런 말씀을 하시는지 파악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많은 목회자가 제대로 된 신학을 하지 않고 목사가 되는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신학교도 제대로 없었고 사역자가 부족했기 때문에 기복 신앙적인 잘못된 설교를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교회가 잘 돼도 가정이 잘 안되는 경우가 훨씬 많은데 교회에 헌금과 헌신을 강조하기 위해 그런 설교를 선포되기도 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이 말이 틀렸다는 건 금방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도바울이 받은 고난과 죽음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범사에 잘 되는 건 육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형통도 하나님의 주권 안에 이루어지는 형통이지 육적인 형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치 교회에 헌신하면 가정에 좋은 일이 생기고 헌신하지 않으면 벌받고.. 이런 설교는 폭력이다.

경제적으로 세상적으로 복의 기준을 정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이다.

나는 목회자의 아내로 살다가 병을 얻었고 가난하게 살았다.

그러나 나는 가난해도 병들어도 형통한 인생이며 복받은 인생이다.

무엇이든지 그런 이분법적으로 해석하는 건 다른 복음이다.

교회 건축을 두고 무리하게 주일까지 이와 같은 설교를 하시는 강사 목사님을 보며 바른 복음 다른 복음이 생각났다.

자신을 초청해 준 교회의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하는 설교가 바른 설교인가?라는 걸 생각하게 된다.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 하나님에게 인정받는 것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에 중심을 두면 다른 복음이 됨을 알아야 한다.

만약 그런 마음으로 설교를 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전 건축이 교회의 목표가 되어서도 안되고 그런 목표를 두고 강사를 초청해 설교를 해서도 안된다.

교회에서는 바른 설교가 선포돼야 한다.

나도 오늘 말씀에 비춰보아 나의 이익을 위해 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을 배신하는 것임을 기억해야겠다.

그래야 그리스도의 종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