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묵상

손바닥 묵상 1 - 역대상 19장에서 29장 묵상

차작가 2023. 9. 24. 11:06

역대 기서의 저자가 에스라라는 설도 있고 레위 지파의 제사장 사독 계열이라는 설도 있지만 모두 다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레위 지파에 관한 일을 이렇게 자세히 잘 기록해 놓은 걸 보면 좀 더 신빙성이 있지 않나...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 든다.

누가 기록했는냐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다윗이 건축설계도 뿐만 아니라 성전에 필요한 기구

또 성전 건축에 필요한 모든 재료들을 세밀하게 준비한 마음이 참 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건축이 하고 싶었구나!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크구나! 하는 감동이 느껴졌다.

그런데 그 못지않게 자식 사랑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 사랑 못지않게 솔로몬을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도 넘쳤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22:5 다윗이 이르되 내 아들 솔로몬은 어리고 미숙하고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할 성전은

극히 웅장하여 만국에 명성과 영광이 있게 하여야 할지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그것을 위하여 준비하리라 하고 다윗이 죽기 전에 많이 준비하였더라

다윗은 성전 건축까지 다 하고 솔로몬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싶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아직 힘이 있을 때 다 해 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의 때가 아니라 솔로몬의 때를 원하셨다.

아이러니하게도 솔로몬의 유일한 업적이 성전 건축이라는 것이 참 씁쓸하긴 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성전을 원하신 적이 한 번도 없으시기 때문이다.

5절 말씀을 보면 솔로몬이 어리고 미숙하니 여호와의 성전을 극히 웅장하게 건축해서

여러 나라에 명성이 자자하게 하고 성전이 압도적인 크기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 당시는 전쟁은 신의 전쟁이었다.

전쟁에서 이기면 그 나라의 신이 이긴 것이 되고 전쟁에서 지면 그 나라의 신이 졌다고 믿었다.

그래서 각 나라마다 신전을 그렇게 크고 웅장하게 지었다.

다윗 때까지는 하나님의 성전이 없었다.

작은 회막에 있다는 것은 다른 나라가 보기에 볼품없어 보일 수 있었다.

그러므로 다윗은 솔로몬이 어리고 미숙하니 성전을 크고 웅장하게 지어서 다른 나라가 함부로 보지 못하게 하길 원했던 것이다.

신하들에게도 성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레위 지파가 무슨 일을 맡아야 하는지 세밀하게 배분하는 모습에서

솔로몬을 어떻게 교육을 했는지 추측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솔로몬은 성전 건축뿐만 아니라 궁전 신당들을 많이 짓기도 했지만 크게도 지었다.

그것은 건축이 주는 위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성전 안에 가둘 수 없는 지극히 높으시고 크신 분이심을 아는 것이 더 중요했다.

성전 짓는 것에 집중하려다 보니 결국은 솔로몬은 평생을 건물만 짓다가 죽은 왕이 된 것이다.

결국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고 난 뒤에는 성전은 파괴되고 성전 기구들은 모두 바벨론의 보물창고에 옮겨졌다.

물론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루어졌고 무너진 성전은 스룹 바벨에 의해 작게나마 재건이 되었고

성전 기구들도 모두 돌려받았지만 솔로몬이 지은 성전은 완전히 무너지고 사라져 버렸다.

오늘 5절 말씀을 읽으며 다윗은 분명히 하나님을 사랑해서 성전을 짓길 원했다.

하지만 연약한 인간이라 아들을 생각했을 거라는 마음이 들었다.

알맹이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라는 유언도 남기지만 인간은 보이는 웅장한 건물이 더 안전하다고 느끼기 쉽기 때문이다.

만약 성전을 건축하는 것에 집중하지 않았다면 솔로몬의 역사는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다윗도 솔로몬이 지혜롭다는 걸 한눈에 알아볼 정도로 똑똑한 사람이었다.

평생을 건물만 짓다가 죽기에는 아까운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귀한 곳에 그 지혜를 사용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전도서에서 고백한 것처럼 인생이 헛됨을 고백하는 일이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인생이 헛됨이 아니라 헛되게 살아서 헛되다는 것이다.

약하고 겁이 많은 강아지가 주인이 함께 있으면 더 짖는 것처럼

건물처럼 눈에 보이는 것으로 자신을 포장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인생의 마지막 고백은 헛되다 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