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역시 역사를 통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는 것이 역사서를 통해 입증되었다.
서기관들이 약사를 기록하는 것은 역사를 통해 배워서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것인데
잘못을 반복한다는 것은 인간은 본래 자기가 좋을 대로 결정을 한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를 보더라도 하나님이 징계를 하시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지만
이것도 잠깐 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오늘은 르호 보암 때에 남유다와 북 이스라엘로 이스라엘이 분열이 되고 잠시 정신을 차리는듯하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버리는 선택을 하는 모습에서 나를 발견하게 하셨다.
그리고 리더의 무게감을 깨닫게 하시는 말씀이었다. 그래서 "리더의 영향력"을 나누고 싶다.
12:1 르호보암의 나라가 견고하고 세력이 강해지매 그가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니 온 이스라엘이 본받은지라
르호보암 왕이 왕이 되자 백성들의 고역에 대해 말하는 여로보암에게 올바른 결정을 하지 못해서
이스라엘이 둘로 나누어지고 난 뒤에 나라는 혼돈에 빠졌다.
만약 여로보암의 건의를 선지자에게 물었다면 아마도 이스라엘의 역사는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원로 정치가들의 의견도 젊을 때 함께 자란 정치가들의 의견도 모두 하나님의 관점에서 본 다면 옳지 않았다.
원로는 기득권의 세력을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고 젊은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쪽도 고역으로 지친 백성들을 위하는 편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사건 이후 르호보암은 정신을 차리고 북 이스라엘을 치려던 선택의 기로에선 선지자 스마야에게 묻는다.
그리고 옳은 결정을 하고 나라는 조금씩 안정화되어간다.
그러자 흩어져 있던 레위 지파들도 하나씩 돌아오고 여로보암 편에 있던 백성들도 북 이스라엘에서 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하나님을 떠나자 남유다 편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영적으로 깨어 있는 백성들은 자연스럽게 하나님께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다음부터였다.
나라가 점점 견고해지고 세력이 강해지자 율법을 버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역시 편하면 영적으로 느슨해지는 것이다.
왕이 영적으로 무뎌지자 "온 이스라엘이 본받은지라"라고 말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애굽 왕 시삭을 사용하셔서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오게 하셨다.
하나님은 그 이유를 "너희가 나를 버렸으므로 나도 너희를 버려 시삭의 손에 넘겼노라" 하셨다.
그러자 즉각 왕은 "스스로 겸비하여" 여호와는 의로우시다고 고백하며 자신을 낮추고 돌아봤다.
그러자 하나님은 돌이키시며 멸하지 않으시고 죄에 대한 대가로
"저희를 조금 구원하여 나의 노를 시삭의 손을 통하여 예루살렘에 쏟지 아니 하리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이렇게 결정하신 이유를 바로 다음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12:8 그러나 그들이 시삭의 종이 되어 나를 섬기는 것과 세상 나라들을 섬기는 것이 어떠한지 알게 되리라 하셨더라
나는 이런 말씀을 읽으면 안도감을 느낀다... 혼날 짓 하면 혼내시면서 네가 내 새끼니까 혼내는 거야! 하시는 것 같아서이다.
그래서 벌도 감사하다. 그 벌을 통해서 내가 하나님을 떠나서 받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인간은 매를 맞지 않고는 절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는 존재이다.
뜨거운 걸 만져봐야 뜨거운 걸 만지면 안 된다는 걸 아는 것과 같다.
항상 다음부터는 안 만지고 알아야지.. 하면서도 꼭 만지게 되는 게 인간의 연약함인 것 같다.
그러나 리더의 경우는 훨씬 파급효과가 크다.
르호보암의 잘못된 리더십으로 인해 온 이스라엘이 본받기 때문이다.
우리 딸이 달라스로 이사 오기 전에 좋은 교회를 만나야 될 텐데.. 하고 기도 부탁을 하니
"엄마 항상 교회 가면 주일학교를 잘 봐야 해. 주일학교 아이들이 예의가 없으면 부모님도 예의 없는 게 분명하거든.
교회를 정할 때 그 교회 아이들을 보고 결정해야 돼요!" 했던 말이 기억이 난다.
아이들이 부모를 보고 배우는 것처럼 백성들도 그 나라의 리더를 보고 배우기 때문이다.
이처럼 리더를 자신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도 망하게 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다.
어쩌다 보니 50대 중반 이 되었고 조금씩 그룹에서 어른의 역할을 감당하는 나이가 되었다.
어릴 때는 마냥 교회는 편하고 좋은 곳이었는데 신앙생활하면 할수록 무게감을 느끼게 되고
신앙의 본을 보인다는 게 너무나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나를 쳐다보는 눈이 많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를 통해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되는데 돌아보니 그렇게 살지 못해 던 순간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인간은 실수하지 않고 산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오늘 말씀처럼 실수를 했을 때 바로 돌이키고 그 실수로 인해 벌을 받을 때
잘 받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리더의 영향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벌을 받더라도 솔직하게 "이래서 벌을 받는 겁니다! 그러니 나를 보고 배우십시오!" 하는 겸손이 더 어렵기 때문이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겸손히 인정하고 벌도 받을 수 있는 자세가 더 중요함을 깨닫게 하는 말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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