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가 쓰인 배경은 본문에서 찾을 수 있는 단서가 많이 없다.
그래서 학자들의 견해가 다양해서 결론을 내리기가 어렵다.
그러나 1장 5절에서 잔치를 끝내면 욥이 자녀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리는 것과 42장 16절에서 욥이 140년을 살았던 것 보아
족장 시대였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욥의 이름의 뜻은 "박해받는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욥은 우스에 산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정확한 위치는 모르나
예레미야 애가 4장 21절에 "우스 땅에 사는 딸 " 하는 표현을 보아 에돔 근처에 남쪽 광야 지역에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욥기의 문학적 형태는 산문과 운문이 섞여 있는 형태이다.
1장에서 등장인물을 이야기하는 글의 형태로 쓰여 있다가 중간 부분에는 시처럼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욥기는 또한 신학적 논쟁의 깊이가 있는 책이다.
욥기의 구성은 서론과 본론과 결론으로 나누어지는데
서론 부분은 1장과 2장이고 본론 부분은 세 부분으로 나뉠 수 있다.
첫 부분은 욥과 세 친구의 논쟁이 3장에서 31장까지 쓰여 있고
두 번째는 엘리후의 반박이 21장에서 37장까지이고
세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이 38장에서 41장까지이다.
그리고 결론은 42장에 있다.
서론 격인 1장, 2장은 천상의 대화를 소개해 줌으로써 앞으로 독자들이 욥이 당하는 고통의 이유에 대해서 간접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욥과 친구들과 대화를 통해 욥의 상태를 보여주며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될지 간접적으로 예상하게 한다.
그리고 본론에서 친구들과의 논쟁과 반박을 통해 고난과 갈등을 표현하고
마지막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고난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을 이해함으로써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신앙을 나타낸다.
욥기에서는 고난이라는 주제를 택하여 신학적으로 잘 조명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 교리의 문제점은 고난을 당하는 것이 죄의 증거라고 보는 것이다.
이 문제를 지적하며 동시에 인간이 겪는 고통을 이해하는 데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지식을 고발하고 있다.
그리고 고난에 대한 올바른 통찰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욥이 자신이 당한 고난을 친구들에게 변론하고 그들의 말에 동의하지 않으며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하나님의 공정한 재판을 받기를 묻는다.
또한 하나님을 올바로 알지 못하는 욥의 한계도 보여 준다.
그리고 욥의 고난을 통해 성도들은 단련되고 순금같이 만드는 중요한 과정임을 깨닫게 된다.
고난의 신학은 우리가 다 이해할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부르시는 부름이다.
사탄이 하나님께 와서 욥이 많은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한다며 만약 그러한 혜택이 없었더라면
과연 하나님을 경외 하리이까? 하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이 말은 하나님이 주시는 많은 축복을 탐하는 이기적인 목적으로 여호와를 경외한다고 되묻는 것이다.
이 질문은 우리에게도 던지는 것이다. 이에 해답을 욥기를 통해 우리가 찾을 수 있다.
전통 교리와 다르게 의인도 고난을 받는다는 것과
외적인 축복 없이 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인이 있다는 것을 욥을 통해 보여 주고 있다.
욥기를 통해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잘 가르쳐 준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임을 가르쳐 주고 있다.
그것이 지혜의 시작이다.
하나님은 욥의 고난에 대한 이유를 말씀하지 않으시지만
우주의 기원과 질서에 대해 질문하시면서 하나님의 지혜와 인간의 지혜가 다름을 설명하신다.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욥을 통해 인간의 연약함을 드러내며
욥의 속에 있는 반신앙적이고 하나님에 대한 무지함을 욥의 탄식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해결하는 것으로 끝난다.
1장 1절에서 욥에 대해 설명하길 욥은 우스 땅에 사는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여 악에서 떠난 자라고 말한다.
그에게는 아들 일곱과 딸 셋이 있었다.
그는 큰 부자였고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라고 평가받았다.
그는 혹 아들들이 마음으로 범죄 했을까 봐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리는 사람이었다.
욥에 대한 소개가 끝나자 바로 천상에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6절에 보면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에 온지라" 천상 회의가 열린다.
여기에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표현은 천사로 해석되고 사탄에 대해서는 7절에서 설명하듯이
사탄은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니는 존재이고 참소하는 자이다.
늘 사탄은 세상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존재이다.
이 사탄이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 하리이까?"
즉 욥이 하나님이 주신 복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즉 자신에게 이득이 있으므로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욥에 몸에는 손 대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모든 재산과 자녀를 뺏을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두 번째로 사탄이 다시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와서 사람은 모든 소유물을 자기 생명을 위해 바꿀 것이므로
욥에게 몸을 치면 틀림없이 하나님을 욕을 할 것이라고 장담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욥의 생명은 건드리지 말고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게 하는 것을 허락하신다.
여기까지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는다.
욥의 아내가 욥에게 와서 2장 9절에서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라고 한다.
여기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이 말을 원어로 보면 욕이라는 것은 축복이라는 뜻이다.
이 말을 현대어로 말하자면 '그렇게 힘든데 차라리 하나님을 축복하고 죽으세요'라는 뜻이다.
우리는 그동안 잘못된 설교로 하나님을 저주한다고 생각했지만 본래의 뜻은
" 예배나 실컷 드리세요! 그렇게 좋으면 축복하며 죽으세요!"라는 말과 같이 화가 나서 탄식하는 말이다.
욥이 종기가 나기 전까지는 욥의 아내도 똑같은 고난을 받은 상태였다.
어쩌면 욥보다 더 힘든 상황을 견디며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재산은 사라져도 그만이지만 자신이 낳은 자녀들의 죽음은 욥보다 더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남편도 고통 가운데 있는 것을 지켜보는 아내의 마음도 너무 힘들었을 것이다.
70인 역 성경에 보면 이 부분이 더 잘 묘사되어 있다.
대략 묘사하자면 "아이들도 다 하루아침에 죽고 모든 재산도 잃고 당신을 간호하기 위해 이집 저집 일거리로 찾아다니고 있어요.
난 당신을 돌봐야야 하니깐요. 그런데 당신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아요? 나는 나에게 닥친 이 어려움을 이해할 수 없어요.
나는 당신이 차라리 하나님께 예배하며 죽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하나님이 좋으시면..." 이런 내용이다.
그리고 친구들이 찾아온다.
각각 자기 지역에서 찾아온 것이다.
나는 가까운 동네에서 찾아온 것으로 알았는데 먼 곳이었고 각각 다른 지역에서 찾아왔다.
족장 시대에서 먼 거리를 여행한다는 것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강도가 나타날 수 있었고 돈도 많이 드는 일이었다.
그들의 이름은 데만 사람 엘리바스, 수아 사람 빌닷 그리고 나아마 사람 소발이다.
그들은 욥을 위로하려고 서로 약속하고 찾아왔다.
욥을 보자마자 소리 질러 울며 각각 자기의 겉옷을 찢고 하늘을 향하여 티끌을 날려 뿌렸다.
그들은 밤낮 7일 동안 욥과 함께 땅에 앉아 있었고 욥의 고통이 심함을 보고 단 하마디도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동안 욥기를 읽었지만 항상 욥 친구는 욥을 시기하는 못된 마음으로 찾아온 친구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욥에 대해 정죄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최소한 그들은 멀리에서 위로하고 싶은 마음에 찾아온 친구였고 욥을 위해 울며 밤낮으로 7일 동안 함께한 친구들이었다.
이 순간까지는 욥은 친구들의 위로를 받았다.
또한 아내에 대한 편견도 깨어졌다.
나도 남편이 아플 때 "내가 그렇게 하지 말라 그랬지! 잘 됐다!!"라고 하는 것처럼
욥의 아내도 욥에 대한 걱정의 표현으로 그렇게 말한 것이다.
이 친구들의 방문과 아내의 솔직한 말이 그동안 침묵으로만 일관하고 하나님께 자신이 당한 고난의 이유를 기도로 묻지 않았던 욥은
3장에서부터 자신의 마음을 토설하는 기도를 시작하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원망이라고만 단정한다.
그리고 솔직한 감정을 하나님께 말하길 두려워하거나 죄의식을 가질 때가 많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솔직하게 말하는 게 부끄럽고 경솔해 보이고 하나님께 범죄것 같은 죄의식을 가질 때가 많다.
그러나 하나님을 진정한 나의 아버지로 고백한다면
하나님께 "나한테 왜 이러세요? 내가 왜 이런 고난을 받아야 되나요?"라고 솔직하게 탄원하는 기도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기도가 문제의 해결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작년에 욥기를 읽을 때는 그동안 욥이 나라고만 생각하고 감정이입을 하며 읽었는데 욥의 친구들이 나라는 것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번 욥기는 아내의 입장과 친구들의 입장과 욥의 입장을 다양한 각도로 묵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날마다 하나님 말씀을 깊이 알아가니 무한한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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