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루 일과는 일어나자마자 온라인으로 새벽예배를 드리고 바로 CBS 김기석 목사님의 잠언 강해 설교를 듣는 것으로 시작한다.
밥 먹을 때 빼고는 거의 하루 종일 듣는 편이다.
오늘은 11장에서 20장까지 묵상하는데 거기에 해당하는 성경 범위에 속하는 강의를 들었다.
하루가 왜 이렇게 짧은지.. 최선을 다해도 60프로에서 80프로 정도 밖에 못 듣는다.
2시 정도까지 듣고 나면 오늘 나눌 성경 구절을 정하게 된다.
그리고 4시까지 반복해서 듣고 또 듣는다.
그리고 난 뒤 4시 반쯤 되면 위층으로 올라가서 성경읽기와 찬양과 기도 시간을 가진다.
개인기도 시간에 오늘 읽을 범위의 성경을 다 읽고 깊이 집중해서 묵상한다.
기도 시간이 끝나면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LA fitness에 가서 운동하고 돌아와서 씻고 나면 9시 반 정도 된다.
9시 반부터 11시 반까지 오늘 묵상한 말씀을 블로그에 기록하면 하루가 끝이 난다.
이렇게 하루 종일 그날에 해당되는 성경 구절을 묵상하며 보내는 게 나의 일과이다.
오른손이 불편해서 말씀을 듣거나 읽을 때 따로 기록할 수 없어서 반복해서 듣게 된다.
그렇게 정한 구절이 오늘은 바로 잠언 12장이다.
잠언 12장은 의인과 악인을 대조하며 교훈을 주는 말씀이다.
잠언은 생각보다 그 시대의 문화와 배경을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참 많다.
왜 그런 단어를 쓰는지 현시대에서는 알 수 없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부가 필요하고 앞뒤 문맥을 잘 생각해서 꼭꼭 되씹는 묵상이 필요하다.
12:1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거니와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
잠언서에는 훈계 지식 지혜 징계 이런 단어들이 많이 나온다.
1절에서부터 훈계 그리고 징계라는 두 단어가 나왔다.
훈계에는 꼭 필요한 것이 징계이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반드시 징계가 필요하다.
오래된 나쁜 습관이나 나쁜 죄는 반드시 징계가 필요하게 마련이다.
훈계를 좋아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의 표현이다.
1절에선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다고 했다.
곧 징계를 싫어하는 것은 짐승이라는 의미이다.
짐승은 본능대로 살려고 한다.
자기중심적인 인간의 본능은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은 공동체 속에서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자기 본능대로 사는 자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자이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이다.
12:2 선인은 여호와께 은총을 받으려니와 악을 꾀하는 자는 정죄하심을 받으리라
여기서 선인은 사랑과 진리로 공동체를 세우는 사람이다.
그래서 선인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게 된다.
하나님은 공동체로 인간을 지으셨다.
하나님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아서 하와를 만드신 것은 둘이서 서로 돕고 살게 하심이다.
여기서 악은 다른 사람에게 나쁜 것을 주려는 마음이다.
꾀한다는 의미가 이웃에게 나쁜 것을 주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공동체를 헤치는 것이고 본능적인 것이고 자기중심적인 태도이다.
악인은 타인을 위해 사는 삶이 아니라 자기의 이익을 도모하는 사람이다.
12:3 사람이 악으로서 굳게 서지 못하거니와 의인의 뿌리는 움직이지 아니하느니라
여기서 악인은 모래 위에 지은 집처럼 무너지지만 의인은 "뿌리는"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의인의 후손들까지 복을 받는다는 것이다.
4절에는" 어진 여인"과 "욕을 끼치는 여인"을 대조하며 설명하고 있다.
어진 여인은 품성이 좋고 유능한 여인을 뜻한다.
이 시대에 여인의 가치를 남자와의 관계에서 파악하는 문화적 배경이므로 "지 아버지의 면류관"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어진 여인의 삶을 통해 얻게 되는 유익을 "면류관"이라는 단어를 통해 부유함과 장수와 많은 후손을 얻는다고 표현하고 있다.
5,6절에 나타난 의인의 모습은 정직한 생각을 하고 사람을 구원하는 말을 하며
악인의 모습은 남을 속일 생각을 하고 남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람은 그 속에 나쁜 것도 있고 좋은 것도 있다.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 어떤 것이 더 발현되는냐에 따라 의인이되고 악인이 된다.
별반 다르지 않는 의인과 악인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확연히 달라진다.
의인은 굳게 서도 악인은 엎드려진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일어선 사람 의인이 된다.
8절에 마음이 굽은 사람의 의미는 마음이 삐뚤어진 사람을 뜻한다.
매사에 부정적이고 좋은 말을 해도 나쁘게 해석하는 그런 사람이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말을 일삼는 사람이다.
당연히 이런 사람들은 멸시를 받게 되어있다.
12:10 의인은 자기의 가축의 생명을 돌보나 악인의 긍휼은 잔인이니라
10절에 나타난 의인은 생명을 존중히 여기는 사고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나타난 악인은 생명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몇 년 전에 있었던 가습기 세제 사건이 좋은 예이다.
그 제품이 인간에게 해로운 걸 알면서도 좋게 포장해 팔아서 자신의 이익을 취한 그런 모습은 악인의 잔인함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오늘날 이런 사건은 심심치 않게 뉴스를 통해 볼 수 있다.
노동력을 착취하고 그 사람을 위하는 척하지만 사람의 생명을 존중히 여기지 않는 그게 바로 악인의 잔인함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상은 생명이 존중되는 그런 세상이다.
그것에 반대되는 것은 모두 악이다.
그러나 12절에 보면 악인은 불의한 이익을 탐하지만 의인은 결실한다고 말하고 있다.
세상은 변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며 용기를 내면 좋겠다.
그리고 의인은 환란에서 벗어나고 악인은 자기가 친 그물에 걸림을 기억해야 한다.
현실에 벌어지는 많은 일들이 마치 하나님이 안 계시는 것 같고
악인이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 말로는 스올임을 기억해야 한다.
포기하지 않고 우리가 생명을 존중하는 삶을 살아내야 한다.
그럴 때 이 세상에는 희망이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에서만 하는 잘못만은 아니다.
우리는 개인의 삶 속에서도 늘 생명 중심적인 사고와 이익 중심적인 사고에서 갈팡질팡한다.
예를 들어, 자연을 파괴하는 플리스틱 제품을 사용한다든지 반련 동물을 버린다든지
자연을 파괴하는 물건들을 함부로 사용한다든지 이것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는 삶이다.
그런 기업들만 비난할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생명을 존중히 여기는 선택을 할 때 이 땅에는 희망이 보인다.
이것을 행할 때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이 되고 1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훈계를 좋아하는 자가 된다.
그리고 15절 이후에 미련한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미련한 자는 누군가가 하는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들로 꽉 채워있기 때문에 좀처럼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이 없는 것이다.
18절에 보면 함부로 말하는 사람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 사람은 말이 거칠고 함부로 말하며 칼로 찌른 것 같은 날카로운 말을 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정치판에서만 보는 게 아니라 또 악플 다는 사람들에게서만 보는 게 아니라 나도 또 우리도 흔히 짓는 죄이다.
참지 못하고 화를 내뱉고 순간 분노를 쏟아 내므로 상대방의 가슴을 찌르는 말로 상처를 주는 말을 많이 하고 있다.
우리는 항상 말을 가려서 해야 한다.
진실한 입술로 말해야 되며 다른 사람들을 격려하는 말을 해야 되고 사람을 북돋는 말을 해야 한다.
근심이 많은 사람에게는 위로의 말을 전해야 한다.
12:25 근심이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 그것으로 번뇌하게 되나 선한 말은 그것을 즐겁게 하느니라
우리는 항상 선택을 하며 살고 있다.
그 선택은 중간이란 없다.
악이냐 선이냐 악인의 길이냐 의인의 길이냐 딱 두 가지 길이다.
그 결과는 여호와께 은총을 받느냐 버림을 받느냐로 갈라진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훈계를 좋아하고 즉 다른 사람의 권면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다.
내 안에 가득 차있는 나의 의지를 버려야만 가능하다.
나의 생각 나의 경험 나의 지혜를 버릴 때 다른 사람의 훈계를 받아들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징계를 주실 때는 그것을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바로 짐승과 같기 때문이다.
훈계를 즐거워하고 짐승이 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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