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말씀 묵상

시편 139편에서 150편 묵상

차작가 2023. 9. 27. 12:14

오늘은 139에서 150편까지 묵상했다.

그중에 시편 141편을 나누기로 했다.

왜냐하면 나의 성격에 가장 필요한 말씀이기 때문이다.

시편 140에서 143편은 모두 "시인의 시"라는 표제가 붙어 있으나

이 시가 압살롬의 난 때 피난하던 시절에 역경을 반영하고 있는지 아니면 에돔과 전쟁의 정황을 묘사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개인 탄원 시에 속한다.

그리고 시편 141편은 네 가지 연으로 나누어진다.

141:1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속히 내게 오시옵소서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이소서

141:2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

제1연에 해당되는 1,2절은 하나님을 향한 탄원 부분이다.

여기에 특별히 기도를 "분향", "저녁 제사"라는 비유를 표현함으로써 경건한 신앙인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날마다 성전 제단 앞에서 그날 힘들었던 일을 아뢰는 것을 연상케 한다.

"나의 손든 것"과 "나의 기도"는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다.

기도의 간절한 모습을 연상케 한다.

비록 시인이 처한 상황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으나 1절에서부터 2절까지 계속 같은 내용을 반복함으로써

그만큼 시인의 처한 상황이 간절한 기도가 필요한 만큼 힘들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141:3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141:4 내 마음이 악한 일에 기울어 죄악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악을 행하지 말게 하시며 그들의 진수성찬을 먹지 말게 하소서

제2연에 해당하는 3,4절은 기도에 대한 간구를 나타낸다.

3절에 "내 입에" 그리고 "내 입술에"라며 특히 입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은 입술로 경솔하게 원수를 갚는 말이나

저주 또는 불평하는 말을 내뱉지 않는 것을 구하는 시인의 겸손함과 진실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비록 악인일지라도 함부로 말하지 않으려는 시인의 믿음과 인격이 돋보이는 절이다.

악인은 함께 한 상에서 "진수성찬"을 나누기를 요구하지만 시인은 자신의 마음을 악한 일에 기울여지지 않기를 구한다.

4절에 "내 마음이"는 마음뿐만 아니라 히브리어로 번역하면 "의지" 혹은 "중심" "가운데"라는 의미를 지닌다.

시인의 의지 그의 중심에 자리한 성향이나 생각이 나 성향을 의미한다.

은밀한 유혹을 하는 악한 일을 통해 함께 나누지 않으려는 의지 그 시인의 중심이 어떠한지를 볼 수 있다.

141:5 의인이 나를 칠지라도 은혜로 여기며 책망할지라도 머리의 기름 같이 여겨서 내 머리가 이를 거절하지 아니할지라 그들의 재난 중에도 내가 항상 기도하리로다

141:6 그들의 재판관들이 바위 곁에 내려 던져졌도다 내 말이 달므로 무리가 들으리로다

141:7 사람이 밭 갈아 흙을 부스러뜨림 같이 우리의 해골이 스올 입구에 흩어졌도다

5절에서 7절은 제3연에 속하며 현실에 대한 시인의 마음을 묘사하고 있다.

"책망할지라도"는 번역하면 그로 하여금 나를 책망하게 하소서이다.

의인의 책망은 시인에게 번영과 융성과 즐거움을 가져 올 것이므로 기꺼이 받아 들일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의인의 책망을 기름으로 비유하는 것은 재난 중에 있을지라도 기도는 계속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은 의인의 질책을 마땅히 받아 들일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여기서 말하는 "그들은" 의인으로 볼 수 있다.

시인은 의인이 책망할지라도 그것을 인정할 뿐만아니라 자신을 책망했던 그 의인이 재난과 같은 어려움에 처할지라도 그를 위해서도 기도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또한 6절에서는 행악자들의 파멸을 고대하며 이에 대한 확신을 피력한다.

141:8 주 여호와여 내 눈이 주께 향하며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내 영혼을 빈궁한 대로 버려 두지 마옵소서

141:9 나를 지키사 그들이 나를 잡으려고 놓은 올무와 악을 행하는 자들의 함정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

141:10 악인은 자기 그물에 걸리게 하시고 나만은 온전히 면하게 하소서

8절에서 10절은 제 4연에 해당하며 시인의 간구가 이어진다.

위기 가운데 자신을 지켜 주실 분은 오로지 하나님밖에 없음을 말한다.

"빈궁 한대로 버려 두지"라는 말은 수치스럽게 발가 벗기는 것 또는 영혼을 빈곤하게 하고 비우는 것 또 그 영혼이 소멸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상태가 될 때 하나님이 자신을 보호해 주시고 약속하신 바를 이루심으로 그 영혼에 만족과 기쁨을 주시리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올무" "함정" 이런 비유를 통해 악인들이 움흉한 계략을 놓더라도 하나님이 자기를 지켜주시기를 간구한다.

악인에 대해 저주하기 보다 이들의 불의 함을 고발함으로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그에 상응하는 심판을 내려 주시길 바라는 호소이다.

동시에 악인이 자신이 놓은 그물에 걸리지 않고 도리어 악인이 자신이 놓은 그물에 걸리게 해달라며 대조하며 하나님의 공의에 호소하고 있다.

오늘 말씀에 내가 공감하는 것은 매일 시간을 정하고 기도하고 말씀읽고 나름대로 신앙인으로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려고 노력하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다는 것이다.

착하게 산다고 해서 그 사람을 지켜주는 세상이 아니라 착하기 때문에 이용해 먹고 착해서 말 못하기 때문에 함부로 대하고

착해서 받아야할 돈도 받지 못하는게 세상이다.

이 시인은 그런 사람들을 심지어 기도할 때도 저주 하지 않고 함부로 말하지 않기를 위해 자신의 입에 파수꾼으 세우고 자신의 입술에 문을 지켜

달라며 경건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사람들은 그렇게 사는 것은 멍청한 짓이야! 손해 보는 거야! 그냥 이거 그 사람들이 좋아 하니까 동의해!

그렇게 산다고 세상은 달라지지 않아! 너만 가난하게 살 뿐이야! 하며 진수성찬을 차려 놓고 한 입만 먹으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시인은 단호히 거절한다.

그리고 의인이 자신을 책망할지라도 달게 받고 그것을 거절하지 않고 머리의 기름같이 여기며 즉 기도를 쉬지 않는다고 말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악인이 놓은 올무에 잡히지 않고 또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악인이 놓은 그물에 악인이 걸리게 하고 자기는 그 그물에서 온전히 면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믿는 온전한 믿음 때문이다.

악인들도 하나님이 만드신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 안에 하나님의 형상은 있다.

단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닮지 않았을 뿐이다. 이 시인은 아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악인들을 단순히 믿어주고 선대하며 받아 주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올바른 신앙인이 아니다.

그것은 악인들이 악함에 계속 머물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악인들에게 그것이 옳지 않음을 깨달을 수 있도록 저항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게 하셨다.

또한 내 속에도 악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믿음이란 마음속에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을 향한 기둥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힘이다.

이 힘은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있는 에너지이다.

우리 부부는 기도도 하고 올무에 걸리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지만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악인이 올무를 놓는데도 알면서도 당해 주는 그런 미련함이 있다.

이것은 믿음이 아니고 착해서도 아니다. 우리의 미련함이고 또한 죄이다.

내가 악을 함께 행하지는 않지만 보고서도 당해 주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것이다.

매일 기도하고 악인들이 행하는 것을 막아 달라고 하지만 내가 당해 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이제 이런 실수들을 해서는 안 된다.

세상이 악하고 또 우리와 같은 사람들을 이용할 때 가만히 있는 것은 미련한 짓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비줄기처럼 순결하고 뱀처럼 지혜로와야 된다고 말씀하셨다.

올무를 놓으면 지혜롭게 피해 가야 한다.

그런 악인들을 없애 달라고 하는 것보다 지혜롭게 행동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처음부터 아닌 것은 아니라고 했어야 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

또한 목사라고 이용해 먹는 그 악인들을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심판하시고

우리는 온전히 면하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