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말씀 묵상

시편 111편에서 120편 묵상

차작가 2023. 9. 27. 12:11

오늘은 시편 111편에서 120편까지 묵상했다.

그중에 112편을 나누고 싶다.

112편은 111편과 짝을 이루는 시다.

111편은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을 112편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시이다.

111편과 112편은 히브리어 알파벳 수인 22구로 구성되어 있다.

112편의 22구 중 인간에 대한 긍정적인 이야기가 19절까지이고 나머지 3구절은 인간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112편은 인간을 긍정의 자리로 끌고 가려는 교육적 의도를 가지고 있다.

이 시는 지혜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 여호와를 경외함과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감할 줄 아는 삶과

의인과 악인의 대조를 통한 교육 그로 인한 보응의 불가피성을 담고 있는 지혜의 시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112:1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112:2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

112:3 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음이여 그의 공의가 영구히 서 있으리로다

112:4 정직한 자들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 그는 자비롭고 긍휼이 많으며 의로운 이로다

1절에서 4절은 제1연에 해당되는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임하는 축복을 이야기하고 있다.

"후손"과 "후대" 이들에게 여호와를 경외하면 복이 있도다라고 말하고 있다.

"의"는 공의의 개념으로서 때로는 구원 평안 같은 말과 함께 쓰인다.

4절에 정직한 자들에게는 "빛"이 일어난다고 표현하고 있는데 빛은 하나님이기에 구원과 소망과 생명의 상징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할 때 이웃을 향한 사랑이 표현되고 하나님의 성품의 참여하는 것이다.

112:5 은혜를 베풀며 꾸어 주는 자는 잘 되나니 그 일을 정의로 행하리로다

112:6 그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함이여 의인은 영원히 기억되리로다

112:7 그는 흉한 소문을 두려워하지 아니함이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의 마음을 굳게 정하였도다

112:8 그의 마음이 견고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의 대적들이 받는 보응을 마침내 보리로다

112:9 그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구히 있고 그의 뿔이 영광 중에 들리리로다

제2연에 해당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의 성품과 삶을 나타내고 있다.

복된 자의 성품은 구원받은 이후 성화의 긴 여정을 통해 다듬어지고 부서질 때 진주 같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져 가는 것이다.

"흔들리지 아니함이여"흔들리듯 요동치는 모습이지만

"영원히 기억되리로다"라고 자기의 생명을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순종할 때

하나님의 경외하는 자의 성품과 삶이 나타나게 된다.

이런 성품은 도움받은 사람의 기억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 법이다.

7절의 "흉한 소문"은 기쁜 소식 아름다운 소식과 대조된다.

경건한 자라고 해서 고난이 없지 않다.

많은 고난이 있지만 그것을 믿음으로 극복하며 나가는 것이다.

때로는 고난이 두려움도 주지만 성도는 그런 것에 굴할 수 없다.

9절의 "흩어"흩다는 말은 뿌리다라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아낌없이 주다라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정직한 자는 빈궁한 자들에게 자기 재물을 뿌리듯 아낌없이 베푼다는 것이다. 그것이 "의"다.

또한 "그의 뿔"이란 권세나 힘을 말한다.

9절에서 말하는 것은 가난한 자들에게 베푸는 것은 세상에서도 권세를 잡고 힘을 가진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 시대에는 맞지만 지금은 때로는 가난한 자에게 베풀어도 세상적인 부를 가지지 못할 때도 훨씬 많다.

왜냐하면 그때와 지금의 사회적 시스템은 다르기 때문이다.

진정한 부는 물질의 풍요로움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이 시의 단면적인 모습을 보고 가난한 자들에게 베풀었더니 하나님이 축복해 주셨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축복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112:10 악인은 이를 보고 한탄하여 이를 갈면서 소멸되리니 악인들의 욕망은 사라지리로다

제3연은 마지막 절 10 절이다.

여기에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의 종국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악인은 결국 소멸된다는 말이다.

나님이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부족하기 때문에 율법을 지킬 수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지킬 수 없다고 해서 율법을 무시해서도 안된다.

하나님을 믿는 자라면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주야로 묵상해야 되고 그 말씀을 지키기 위해 삶의 자리에서 행하는 것은 마땅하다.

이 시는 이런 의미로 인간을 울법을 지키는 자리로 끌고 가려는 교육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움으로 섬긴다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에 충실하다는 의미를 가진다.

우리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에 놓여있다.

창조주는 완벽하고 아름다운 존재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하나님으로부터 만들어진 피조물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누군가와 함께 하는 존재로 만들었다.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은 배려하는 삶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배려하기 위해서는 공감하는 삶이 필요하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복이라고 했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배려하는 삶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나타낼 수 있다.

이것이 복된 삶이다.

2절에서 후손에게 주는 복을 설명하며 땅에서 "강성함"이라고 표현한다.

강성하다는 것은 그 당시는 전쟁터에서 용감하다는 뜻이며 현시대에는 세상에서 능력 있는 사람이 된다는 의미이다.

3절에는 부와 재물에 대해서 말하며 부와 재물은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하신다는 징표로 표현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강대국 사이에 끼여서 힘겹게 살아온 민족이다.

그들의 가난함과 전쟁으로 인한 고난은 물질에 있어서 인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민족에게 이 시편을 통하여 물질을 나누고 타인을 배려하고 공감하는 삶이 진짜 복 있는 삶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5절의 "은혜를 베풀며 꾸어주는 자는 잘 되나니 그 일을 정의로 행하리로다"라는 말씀으로 보아

가난한 삶을 사는 자들이 많았음을 볼 수 있다.

"그 일을 정의로 행하리도다" 이 말씀은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회임을 알려 준다.

또한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는 삶이며 이것이 다시 한번 복되다고 설명하고 있다.

현 사회에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가진 자는 더 많이 가지고 베푸는 것에 점점 더 인색해 가고 가난한 자는 더 궁핍해져 가는 사회이다.

우리가 삶의 자리에서 어떠한 삶이 복된 삶인지를 이 말씀을 통해 알아야 한다.

도움을 받는 사람들은 그 도움을 절대 잃어버릴 수 없다.

누군가에게 그런 은혜를 베푼다는 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가 되며 진정한 복을 아는 삶이 되는 것이다.

단지 물질뿐만 아니라 위로가 필요한 자에게 함께 공감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배려하고

슬픈 자를 위해 함께 울어 주는 삶 이것이 복이다.

지난주에 다리가 불편한 자매가 헌금함을 들고나갈 때 재빠르게 뛰어나가

그 자매의 손을 잡아 주는 우리 교회 어느 집사님이 생각난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답고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은 저런 모습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누구의 다리가 되어 준다는 것은 참 복된 삶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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