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말씀 묵상

오바댜 묵상

차작가 2023. 10. 1. 13:07

오바댜는 구약에서 가장 짧은 책이다.

이 작은 책은 하나님의 정의와 심판과 구원을 가르치고 있다.

오바댜의 이름의 뜻은 "여호와의 종" 또는 "여호와를 예배하는 자"이다.

이 책의 저자는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책의 서두에 "오바댜의 묵시라"라고만해서 오바댜가 쓴 책이라고 본다.

책 전체가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와 말씀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오바댜는 에돔에게 심판을 경고하는 "국가적 경고의 예언서"이다.

애돔 족속과 유다 자손의 분쟁관계는 이삭의 아들 야곱과 그의 형 에서로 부터 시작된다.

에서는" 붉다"라는 뜻의" 에돔"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것이 민족의 이름으로 자리 잡게 된다.

에서는 사해 남동쪽에 위치한 세일산에 가서 정착하게 되는데 세일의 발음이 "털이 많다"라는 뜻의 에서와 비슷한 점이 있다.

이스라엘과 에돔 족속은 계속적인 전쟁을 치루며 원수 관계로 남는다.

시편 137편 7절

137:7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멸망하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그들의 말이 헐어 버리라 헐어 버리라

그 기초까지 헐어 버리라 하였나이다

유다의 멸망을 바라는 에돔의 모습을 통해 에돔과 유다의 관계를 단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에돔은 이스라엘이 망하는 것을 기뻐했고 그것을 바랬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에서 에돔은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이방 민족의 상징적 대표가 되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다른 어떤 이방 민족보다도 에돔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가 많이 나온다.

에돔은 하나님 앞에서의 교만으로 인해 심판받았으며

무엇보다도 그의 형제 국가인 유다에게 한 포악한 행동들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길은 없었다.

이 심판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로하고 격려한다.

언제 가는 하나님께서 갚아 주시고 위로해 주실 것을 기대할 수 있다.

그리고 여호와의 날에 이스라엘은 회복될 것이며 열방을 심판하는 도구가 되며 승리할 것에 대한 구원과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다.

여호와는 전 우주의 통치자로서 에돔이 심판을 받지만 메시아의 시대가 열리면 결국 열방이 여호와께 속할 것이므로 이들 또한 구원과 회복을 경험할 것임을 말씀하신다.

한 장 밖에 안되는 오바댜서는 심판과 구원을 모두 담아내고 있다.

에돔은 이스라엘이 노략 당할 때 노략자의 곁에 서서 함께 그들을 괴롭힌 사람들이었다.

"너도 그들 중 한 사람 같았느니라"

오늘 나는 너도 그들 중 한 사람 같았느니라는 이 말씀이 가슴을 쳤다.

같은 형제가 고통 가운데 있을 때 도와주지 못할망정 그들은 도망가던 사람들의 길을 막고

포로로 끌려갈 때 박수를 치고 동족을 오히려 잡아 그들에게 바치는 자들이 바로 에돔이었다.

1:12 네가 형제의 날 곧 그 재앙의 날에 방관할 것이 아니며 유다 자손이 패망하는 날에 기뻐할 것이 아니며

그 고난의 날에 네가 입을 크게 벌릴 것이 아니며

1:13 내 백성이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성문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고난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재물에 손을 대지 않을 것이며

1:14 네거리에 서서 그 도망하는 자를 막지 않을 것이며 고난의 날에 그 남은 자를 원수에게 넘기지 않을 것이니라

그들은 동족의 아픔을 기뻐하였고 재앙의 날을 모른척했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은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말이 현실감이 안 올 수가 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살아가면서 우리가 자주 겪는 일상이다.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보면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앞잡이 노릇하던 친일파들은 동족들을 일제에 넘기고

도망가는 독립군을 신고하고 같은 동족의 재물을 갈취하고 그들은 그 악행으로 자신의 배를 채웠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지금도 배부름으로 교만하여 있고 그 일에 무관한 것처럼 방관자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 그들을 향해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심판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위로가 되며 희망의 메시지였다.

즉, 일제 세대에 감옥에서 숨을 거두신 독립운동가의 자손에게 희망의 메시지와 같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희망의 메시지이다.

얼마 전에 집을 팔 때 있었던 일이 생각이 난다.

사역을 그만두게 만든 교회의 주도자였던 장로가 우리 집을 판다는 소식을 듣고 그 교인인 리얼터와 함께 염탐하러 온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우리 집인지 모르고 왔다는 것과 집을 사겠다는 말을 확인했을 때 거짓말이었다.

전화로 모든 것을 확인하고 무슨 이유로 왔냐며 물었을 때 모든 것이 드러났다.

자신은 집을 보러 올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뻔뻔스러운 말을 했다. 그것보다도 더 우선적인 것은 집 주인인 우리가 거절할 수 있는 권리이다.

그리고 그대로 리얼터 에전시에 신고했다.

그 리얼터와 그 방문자에 대한 접근 금지를 요청했다.

자신들이 여전히 우리를 짓밟을 수 있다는 그 교만함은 우리가 아직도 자신들이 밟아도 되는 을이라는 착각에서 나오는 행동들이었다.

그 교회에서 사역을 할 때도 이런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되었다,

내가 그 교만함을 허락했기 때문에 지금도 그들은 그래도 된다고 착각하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참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 했다.

다시는 목회자를 을로 취급하는 그런 시회가 안되었으면 좋겠다.

목회자는 하나님의 종이 지 그들이 함부로 다룰 수 있는 종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회에도 신고를 했다. 그러나 실망스러운 것은 노회가 스스로 그들에게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병폐 때문이다.

주변의 여러 교회는 그 교회가 건물을 팔아 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혹시나 자신들의 교회에 그 돈과 함께 오지 않을까 하는

마치 콩고물을 얻으려는 마음을 가지고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들의 눈에는 목사들이 우습게 보일 수밖에 없다.

나는 정식으로 그 장로에게 전화해서 해야 할 말을 했고

노 회장에게 전화해서 장로 고시에 백지를 낸 자격도 안되는 장로를 세운 노회가 회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정식으로 우리에게 사과를 요청했다.

에이전시에도 이 모든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세상의 에이전시 기업은 우리의 요청을 받아들이고 사과를 했지만 그 장로도 노회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돌아오는 말은 개인적으로는 노회에서 우리에게 사과를 한다고는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할 수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과거부터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했으므로 그 모든 과오들을 들추어 낼 수 없다는 변명 같지 않은 이유를 댔다.

그래서 나는 과거의 잘못도 노회가 고백하고 회개해야만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노회 정화 작업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옳은 소리를 하고 그 관계를 끊기로 작정하며 내 목소리를 냈다.

오늘 말씀에 "너도 그들 중 한 사람 같으니라" 이 말은 그 장로나 그 잘못된 교회 중에 노회도 같다는 것이다.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그들의 교만함과 자신이 만든 교만의 탑을 무너뜨리지 않는 마음, 방관자의 삶 이것은 반드시 하나님이 심판하시며

나와 같은 억울한 일을 겪은 목회자들을 하나님의 심판을 통하여 위로해 주실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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