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서는 가장 짧은 메시지로 회개하게 만든 예언서로 유명하다.
그 짧은 메시지는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이다.
또한 보통의 선지자와 다르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거역하고 니느웨로 가기 싫어서 도망을 가는 등의 행동으로 유명한 선지자이다.
또한 동화 같은 요나서는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 아니라 설화나 우화로 만들어진 교훈적 메시를 담고 있는 책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보수적인 학자들은 요나가 삼일 동안 물고기 뱃속에 있었다는 것을 역사적인 사실로 받아들인다.
12:40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12:41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성경에서 요나는 여로보암 2세 주전 793년에서 753년 사이에 활동한 선지자로 열왕기하 14장 25절에 소개된다.
동시대에 활동했던 선지자는 호세아와 아모스가 있다.
여로보암 2세 때는 과거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속했던 많은 영토를 회복하고 전래 없는 경제적 부흥과 번영을 누리게 된다.
그 당시 앗수르가 침체기를 겪고 있었지만 언제 북 이스라엘을 점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요나가 이 이유로 가기를 거부했을 것이다.
또한 배타적인 신앙관을 가진 요나는 자신을 이방 나라의 선지자로 보낸다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로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그 길이는 10km가 넘었다.
성벽은 외벽과 내벽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네 대의 마차가 다닐 정도로 견고했다.
요나서는 첫째 하나님의 주권을 가르쳐 준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명령하시고 바람을 보내시고 큰 물고기도 예비하시고 물고기에게 명하여 요나를 토해 내게도 하시는 분이시다.
니느웨에 회개를 보시고 재앙을 거두시며 박 넝쿨을 예비하시며 벌레를 보내어 갈가먹게도 하시며
뜨거운 동풍을 보내시기도 하시는 모든 것을 주도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이 계획을 하시면 누구도 꺾을 수 없음을 보여준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부르시는 자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심을 가르쳐 준다.
그것이 이방인들 일지라도 들으시고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할 때도 들으시고 누구에게도 차별을 두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시다.
반면에 요나는 차별을 원했다.
셋째, 이방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교의 통로가 되기를 원하셨으나 거부하는 요나를 통해 이스라엘의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요나가 비록 반항했지만 끝까지 요나를 사용하셔서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게 하신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라는 요나의 고백은 요나서의 주제를 잘 나타내고 있다.
넷째, 오바댜서가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나라는 심판을 받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반면
요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나라는 심판이 계획되었을지라도 바꿀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서로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다섯째, 요나를 향한 교훈과 질책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교훈을 주신다.
요나서의 절정은 마지막 4장이다.
하나님께서 은총을 베푸시는 것에 대해 분노하는 요나에게 박 넝쿨을 제거하셔서 베풀었던 은총을 철회하시면 이스라엘에 대한 경고를 하신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은총의 권리를 보여 주신다.
요나서를 통해 우리가 받는 은총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민족에게 가는 것에는 불만을 갖지 않은지 생각하게 한다.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도시는 니느웨였다.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이다.
앗수르는 다곤 신을 숭배하는 나라였다.
물고기 형상을 가진 어업의 신으로 블레셋과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앗수르, 바벨론 등지에서 숭배된 신이었다.
다곤 신은 꼬리가 있고 비늘로 덮여 있으며 신상 중에 사람을 삼키는 그런 형상도 가진 우상이다.
그 당시 앗수르 제국은 다른 나라를 삼키는 그런 나라였다.
그로 인해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많았다.
큰 물고기 뱃속에 갇힌 요나가 겪은 고통과 같은 것이다.
요나서에는 큰 제국들에 의해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물고기 뱃속의 상징은 강대국들에 의해 포로 생활을 했던 사람들의 삶을 잘 보여준다.
물고기 뱃속에서의 3일의 의미는 예수님의 사건도 상상케 한다.
그리고 그 당시 수메르 신화에서 3일의 의미는 지하세계로의 여행에 걸리는 시간을 말하며 스올에서 산 자가 땅으로 귀환하는 시간임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물고기 뱃속의 3일은 수메르 신화와 관련이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3일은 곧 죽음에서 살아나는 변화의 시간을 뜻한다.
이것은 물리적인 의미도 있지만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바치기 위해 3일 동안 걸어가는 여정과 같이 심적인 고통의 시간도 뜻한다.
아브라함에게 3일은 죽음과도 같은 고통의 시간 있을 것이다.
즉 3일의 의미는 죽음을 경험하고 새로운 생명으로 소생하는 시간을 나타낸다.
옛 자아가 죽고 거듭나는 시간도 포함된다.
요나서 1장 14절에 큰 물고기는 다곤 신을 상징한다.
물고기 뱃속은 자신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무력감의 자리를 뜻한다.
이런 순간 요나는 기도했다.
기도는 자신이 할 수 없는 감당할 수 없는 그러한 자리에서 할 수 있다.
요나서 2장에서 나타난 기도는 하나님께 드린 감사의 기도이다.
2:2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2:3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에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2:4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2:5 물이 나를 영혼까지 둘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워싸고 바다 풀이 내 머리를 감쌌나이다
2:6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2:7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2:8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모든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2:9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
죽음 앞에 요나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이것이 우리의 삶이고 우리의 기도이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그 순간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은 들으시기 때문이다.
요나는 욥바에서 다시스로 그리고 배 밑으로 바다로 물고기 뱃속으로 점점 나락으로 떨어진다.
하나님은 우리를 성장시키기 위해 낮은 곳으로 떨어지게 하신다.
이러한 한계 상황에 부딪힐 때 그 안에 하나님의 은혜 즉 감추어진 하나님의 비밀을 발견해야 한다.
고난 가운데 하나님은 나에게 어떤 복을 주실까?라는 물음이 필요하다.
요나가 죽음의 공포에서 자신의 한계를 느꼈을 때 비로소 구원이 여호와께 속하였음을 고백하게 된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
조금 전에 물고기 뱃속에서 나와서 니느웨로 걸어갈 때 그의 마음은 다시 요동쳤다.
우리 아버지가 그들의 아버지가 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 것이다.
가장 간단한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라는 말이 그들을 회개하게 했고 하나님은 그 뜻을 돌이키셨다.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요나의 모습을 통해 나도 똑같은 마음인 것을 깨닫게 하셨다.
나를 괴롭혔던 장로, 동료 목사 그들이 회개하면 하나님이 묻지도 않으시고 따지지도 않으시며 즉각 심판을 돌이키신다는 것에 대해
나는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도 똑같은 죄인이면서도 내가 받는 은총은 당연한 것이고 그들이 받는 은총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 나의 모습이 요나와 똑같다.
또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할 때는 그런 마음이 감사가 넘쳤지만 막상 고난에서 지나가면 감사를 잊어버리고 사는 나의 연약함을 발견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그런 나에게 4장 4절에 "내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나를 괴롭힌 그 사람들도 만드시고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길 원하신다.
이것은 회개할 때 은혜를 베푸시는 공평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리고 나를 아끼시는 하나님은 그들 또한 아끼시는 하나님이심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셨다.
지금은 솔직히 준비되어 있지 않다.
그들도 아직도 회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그들이 회개한다면 과연 내가 용서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한다면 사실 잘 모르겠다.
그러나 니느웨 백성들 마음 가운데에 회개할 마음을 주신 하나님은 나에게도 용서할 마음을 주시리라 하는 믿음은 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이 나에게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란다.
(CBS성서학당 김기석 목사 요나편과 성경에센스 요나편 김윤희 교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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