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경험이 나와 같은 과정을 겪는 이들을 위해 사용된다는 사실이, 이토록 감사한 적이 없었다.
그들의 마음에 조금이나마 공감해 줄 수 있다는 것이 그저 기쁘고 감사하다.
하지만 문득,
그 힘들었던 시간 속에 지금의 나처럼 곁에 있어 줄 누군가가 나에게도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생각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를 때가 있다.
절망을 토해내는 예레미야의 고백을 읽으며
문득, 나도 그랬었지…아무 소망도 없이 더는 내려갈 곳조차 없다는 생각에
절망 속에서 완전히 무너졌던 순간이 있었지 하며
그때의 나를 떠올리며 과거의 나에게 위로를 건네곤 한다.
예레미야의 절망은 하나님이 개입하신 자리가 되어 오히려 소망을 품게 했다.
절망 속에서 소망으로 옮겨지는 것은 하나님의 일으키심이었다.
고난의 쑥과 담즙이 소망으로 바뀌는 그 순간을 몸으로 겪었기에,
예레미야는 진정한 기도자로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예레미야는 평생을 유다의 선지자로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삶을 살았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를 위해 기도한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는 대서 시작된다.
3:48 딸 내 백성의 파멸로 말미암아 내 눈에는 눈물이 시내처럼 흐르도다
3:49 내 눈에 흐르는 눈물이 그치지 아니하고 쉬지 아니함이여
3:50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살피시고 돌아보실 때까지니라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기에 심판하신다는 것을 알았기에,
이스라엘의 멸망을 누구보다도 힘들어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유다 백성을 보며 가슴 아파했다.
그들이 스스로 멸망의 길을 선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파멸을 보며, 예레미야는 눈물이 시내처럼 그치지 않고 흘렀다.
그 눈물은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때까지 멈추지 않는 기도의 표현이었다.
나도 그런 예레미야의 마음을 품길 소원한다.
내 마음에 아버지의 마음을 품고,
힘든 지체를 위해 눈물 흘릴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그 지체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를 세워주는 통로가 되길 기도한다.
그 지체가 회복될 때까지,
멈추지 않는 눈물을 흘릴 수 있길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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