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스 생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연주회(MOODY PERFORMANCE HALL에서)

차작가 2025. 5. 1. 09:17

작년에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공연 이후 오랜만에 MOODY PERFORMANCE HALL에 왔습니다.

연주회 올 때 대부분 시간에 맞춰 와서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었는데

오늘은 예쁜 카페가 있으면 차를 마시고 주변을 걸어 다니고 싶어서 한 시간 전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공연장 주변의 대부분의 카페는 6시에 클로즈 해서 아쉽게도 계획한 대로 되진 않았지만

덕분에 산책은 여유롭게 할 수가 있었습니다.

오래전 만화가 허영만 선생님께서 작업을 할 때는 항상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을 듣는데

2악장 부분에서는 항상 작업을 멈추고 가만히 음악에만 집중을 한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

저도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2악장 부분을 처음 듣는 저의 느낌은 슬픔이었고 마치 엘리아가 홀로 남아 하나님을 찾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또 어떤 날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장면 같기도 하고

어떤 날은 텅 빈 공간에 혼자 시름하는 나의 모습 같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왜 이 2악장을 좋아하시는지 이해가 됐습니다.

저도 글을 쓰다가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잠시 컴퓨터를 덮고 가만히 음악을 들으며 마음을 비워 내거든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은 베토벤 교향곡 운명과 같은 시기에 작곡된 곡입니다.

동시에 작곡되었다고 보는 게 맞겠지요.

아시다시피 베토벤은 귓병으로 청각 장애를 가지게 되어 깊은 좌절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이 장애를 딛고 일어서게 만든 운명 같은 곡이 베토벤 교향곡 운명이고

또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입니다.

그래서 두 곡은 많이 닮아 있습니다.

절망에서 희망을 노래한 베토벤은 언제나 저에게 감동을 주고 힘을 줍니다.

저도 눈의 일부분이 보이지 않는 장애와 오른손을 잘 사용하지 못하는 장애가 있기에

베토벤이 어떤 마음으로 이 곡을 썼는지 조금이나마 느낄 수가 있답니다.

대부분 피아노 협주곡은 오케스트라가 먼저 연주를 하고 난 다음 피아노 연주로 이어지는 방식인데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은 피아노가 먼저 연주를 시작하는 파격을 시도한 곡으로 유명합니다.

매일 저는 이 시작 부분의 5마디를 먼저 머리에 그리고 난 뒤 곡을 듣습니다.

전체 부분을 응집한 첫 다섯 마디가 곡 전체의 흐름을 잡아 드라마틱 하게 변주되어

한편의 책처럼 자신의 마음을 곡에 실어 담아낸 작품입니다.

이 첫 5마디가 주는 감정은 마치 하나님께 질문하는 것 같습니다.

베토벤이 초연 때 직접 피아노를 치며 지휘한 피아노 협주곡 4번은 그래서 무엇보다 의미가 있습니다.

자신이 먼저 질문을 던지며 시작하는 이 곡은 음악을 향한 열정을 결포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카텐차는 피아노 연주자가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부분인데 베토벤은 카텐차 마저 직접 그려 넣어

다른 연주자도 이렇게 연주하라고 할 만큼 베토벤은 이 곡을 향한 애정은 대단했음을 느낍니다.

1악장은 알레그로로 보통 템포로 연주되고

2악장은 안단테로 천천히 걸어가듯 연주가 되는데 인간의 깊은 마음을 그리듯 서정적인 연주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3악장은 론도로 연주되는데 밝고 활기찬 톤(vivace)으로 크라이막스로 향해 달려갑니다.

1악장의 시작을 열었던 5마디의 메시지와 대조적인 삽입 부가 반복되면서

오케스트라와 대화처럼 주고받는 화려한 연주를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거의 매일 반복해 들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을 직접 연주하는 걸 들을 수 있어 감동했습니다.

잘 아는 곡이라 생각했는데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 부분이 있어서 역시 직접 듣는 게 이런 거구나... 했습니다.

집에서 들을 때는 연주를 강약으로 감상했다면 직접 현장에서 듣는 음악은 강약이 아니라 멀어짐과 가까이 다가옴 이었습니다.

특히 2악장에서"빰---빠밤, 빠밤,---빰---"라고 오케스트라가 피아노에게 답을 하는 부분이 강약이 아니라

나에게서 멀어졌다 가까이 다가온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점점 작게 가 아니라 나에게서 점점 사라진다고 들렸습니다.

점점 크게 연주되는 부분은 나에게 점점 다가온다고 느껴졌습니다.

무슨 말인가? 할 수 있겠지만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어떻게 이 감동을 고스란히 전해 드릴지 모르겠습니다.

예를 들어 나의 슬픔을 피아노로 고백을 할 때

오케스트라가 답하는 연주는 나로부터 점점 사라진다든지 나의 고통에 귀 기울여 다가온다든지 ...

네가 가진 것으로 만족할 줄 알라고 거절한다고 느껴지는 것이지요.

이건 정말 새로운 깨달음이었고 또 큰 감동이었습니다.

인생을 살며 누구나 한 번쯤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니까요.

음악으로 인간의 감정을 이렇게 섬세하게 또 촘촘히 서 내려갈 수 있을까요!

나에게 음악은 나의 슬픔을 밀어내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의 마음의 공간에 이 음악들로 채워 운명을 바꾸는 에너지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