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을 끝내고 신약의 첫 복음서인 마태복음 1장을 읽는 순간
놀라운 나의 변화를 경험했다.
성경을 그동안 여러 번 통독을 했지만 늘 선지서에서는 "빨리 끝내고 신약을 들어가야지" 하는
마음이었기 때문에 충분한 묵상도 없었고 열의도 없었다.
그저 내가 잘 아는 성경 구절에만 눈이 가고 맘이 갔었다.
그러나 이번에 특히 선지서에 나름대로 공부를 많이 하고 세밀하게 정독을 해서
충분한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보니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섬기고
율법을 지키며 공의와 정의를 행하기를 바라시며 오실 예수님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걸 정말 가슴 깊이 알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신약에 나타난 예수님의 말씀과 행보에 기대감이 엄청났었다.
그런 마음으로 마태복음 1장을 여는 순간 마음속으로 "아! 이래서 마태복음으로 신약의 처음을 열게 하셨구나!
그리고 지루하게 읽었던 예수님의 족보를 1장에 두셨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
그동안 최소한 15번의 통독을 했었는데 이제서야 이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헛 읽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는 만큼 보이는가 보다.
마태복음 1장은 예수님의 계보로 시작된다. 이것은 마치 구약에서 신약으로 들어가는 다리와 같은 역할을 한다.
구약에서 오실 예수님을 예언한 것을 연결고리로 삼아 이 족보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보여주고자 하는 마태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마태는 레위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마태는 직업이 세리였다.
신약의 저자의 대부분은 이름만 이야기하는데 작기의 직업을 이야기하는 것은 마태가 유일하다.
이것은 겸손한 자기표현이며 사람들이 혐오하는 세리 같은 죄인도 예수님이 구원하신다는 복음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태, 마가, 누가, 요한 4 복음서 중에 마태와 마가는 내용이 90퍼센트는 일치하고 누가 복음은 50퍼센트 일치하며
요한복음은 8 퍼센트 정도 밖에 일치하지 않는다고 한다.
시간적으로 볼 때 마가복음이 먼저 쓰였지만 마태복음이 신약의 맨 처음에 배치되어 있는 것은 앞에서 설명했다시피
신약과 구약의 연결 책이기 때문이다.
마태는 주로 유대인을 대상으로 책을 썼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많은 구약의 인용문을 사용했다는 것과 예수님의 족보를 강조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아브라함과 다윗과 같은 사람들을 영웅시 하기 때문이다.
마태복음의 구성은 5가지로 나눌 수 있다.
5장에서 7장은 산상수훈 설교이고 10장은 제자 파송에 관한 것이고 13장은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고
18장은 제자와 교회 공동체에 대해서 말하고 25장은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을 말하고 있다.
마치 모세 오경과 같은 구조로 되어있다.
믿지 않는 유대인을 대상으로 했다는 전략이 이런 것에도 드러나 있다.
그리고 앞에 1장에 족보를 이야기할 때 아브라함에서 다윗까지 14대이고 다윗에서 바벨론까지 14대이고
바벨론에서 그리스도까지 14대로 기록하는데 다윗의 이름을 게마트리아식 숫자로 바꾸면 14라는 숫자가 나온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14대, 14대, 14대로 나눈 것이다.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에서 메시아가 나온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마태는 유대인을 위한 전도로 책을 썼지만 결국은 복음은 믿는 누구에게나 향하고 있다.
나는 새로운 눈으로 읽은 마태복음은 결코 쉬운 책은 아니었다.
그리고 예수님이 직접 책을 쓰신 적은 없지만 모든 것을 말씀으로 남겨 주셨다,
그래서 빨간색으로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을 정말 감사함으로 읽었다.
왜냐하면 구약처럼 선지자를 통한 말이 아니라 직접 나에게 하신 말씀이기 때문이다.
1장 22절에 "이 모든 일 된 것처럼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하나님이 구약을 통해 하신 말씀을
반드시 이루심을 진정으로 감사하게 되었다.
마태복음의 많은 말씀이 있지만 가장 많이 생각했던 말씀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11장 29절에서 30절 말씀이다.
우리가 힘든 일을 겪을 때 예수님께 맡기면 그 힘든 일이 가벼워진다고 우리는 많은 설교를 통해서 들었었다.
그런데 여러 번 읽어도 이 말씀이 새삼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며 예수님을 믿는다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만약에 예수님을 모르고 산다면 죄로 인식되지 않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 믿지 않는다면 쉽게 타협하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을 예수님 때문에 타협하지 못하고
때로는 불이익을 감수하고 손해를 봐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느끼는 게 예수 믿는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는 짐이 가벼워진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내 멍에는 쉽다고 말씀하시고 있다.
반복해서 앞뒤 문장을 여러 번 읽었지만 깨닫기가 참으로 힘들었다.
그런데 핵심을 알려주는 구절을 22~ 24절에서 찾을 수 있었다.
유대인들은 많은 율법으로 자신들도 지키지 못하는 율법 멍에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멍에를 씌었다.
그 율법은 무겁고 짐이 되었고 온유하지도 못했고 교만하게 만들었고 쉼도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지신 멍에만이 우리에게 힘을 주고 가볍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이 말씀이 내가 마태복음에서 깨달은 가장 중요한 예수님의 설교였다.
다시 읽는 성경은 그동안 내가 얄팍하게 아는 성경을 리셋해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읽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나에게 날마다 부어 주시는 은혜가 너무 크고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