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기서는 학개서 스가랴서와 동일하게 포로 이후 페르시아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말라기의 뜻은 "나의 사자/'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어떤 학자들은 말라기가 선지자의 이름이 아니라 무명의 한 선지자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것이라고 해서
하나님의 사자라는 이름으로 말라기서를 적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에 대한 근거는 3장 1절에 "보라 내가 네 사자를 보내리니" 두고 있다.
말라기 활동 시기가 페르시아로 보는 근거는 성전에 관련된 메시지가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오랜 바벨론 포로 이후에 다시 페르시아에게 조공을 바치는 이런 험난한 여정을 거치면서
그들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더 이상 그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혔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했다.
그런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하나님은
1장 2절에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고 따졌다.
그다음 절에서 하나님은 그들을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말씀해 주셨다.
그런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6절에서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는데 내가 네 아버지인데 나를 공경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그리고 내가 주인인데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이렇게 하나님은 반문하셨다.
그런 하나님을 향해 이스라엘 백성은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했습니까?"라고 따져 물었다.
마치 말대꾸하는 철없는 자녀처럼 하나님께 대들었다,
그동안 자녀를 낳고 키우고 먹이고 가르친 부모에게 철없는 사춘기 자녀처럼 따지는 것과 같고
부모가 죽을 때 유언장을 남길 시점에 아버지가 나에게 해 준게 무엇이냐고 따지는 파렴치한 자녀와도 같다.
나는 이 말씀을 읽으며 속으로 "진짜 망할 놈의 자식이네. 너무 심한 거 아니야?"했지만
나도 좀 힘들면 "하나님은 왜 나만 이렇게 힘들게 하시나. 너무 불공평한 게 아니에요?
다른 자식들은 빵빵 잘 밀어 주시면서 왜 나에게만 이러시는 거예요?"라고 대든다.
늘 하나님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시지만 지금 나에게도 말씀하심을 느낀다.
말라기의 구성은 서론에서 "말라기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시는 경고라"라고 시작하고
본론에 들어가서 여섯 가지의 논쟁을 통하여 질의문답식으로 말씀하시고
결론적으로 경고의 메시지로 마무리되어 있다.
말라기의 메시지는 우상에 대한 경고와 이혼에 대한 경고와 십일조에 대한 경고와
사회정의 실천에 대한 경고와
제사장과 지도계층에 대한 경고로 되어있다.
그중에 제사장에 대한 경고가 있는데 다소 파격적인 표현이 눈에 들어왔다.
2장 3절 "보라 내가 너희의 종자를 견책할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
성경에서 이런 적나라한 표현을 쓴다는 자체가 놀라웠고 이 표현을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도 놀라웠다.
그 속에 하나님의 분노가 느껴졌다.
왜냐하면 더러움을 일삼는 제사장들을 똥처럼 여긴다는 하나님의 분노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금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는 각자 하나님의 제사장들이다.
하나님 말씀 앞에 겸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고 우리의 입에서 율법을 구하여야 하고 우리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길을 지켜야 하고 율법을 행할 때 사람에게 치우치게 하지 말아야 하며 하나님의 언약을 깨트리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제사장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만군의 여호와시다.
그러므로 심판이 이뤄질 때까지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여호와께서 정하신 날에
4장 1절에서 2절 "용광로 불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예수님을 통해 치료받고 예수님을 통해 자유를 얻게 함을 배웠다.